매우 죄송하지만
어머니가 만든 음식은 맛이 없었다.
다소 오래된 일이다.
전라도 음식은 다 맛있다는데...
그래도 위로가 되는 음식이
미역국과 막 담은 김장 김치였다.
이 둘은 지금도 내 영혼의 음식이다.
그래서 나는 미역국을 끓일 줄 안다.
참기름과 질 좋은 쇠고기를 달달 볶아
최대한 고소한 육수를 뽑아낸 후에
불린 미역과 마늘을 함께 볶아 물을 부으면 끝이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국물은 다소 탁하지만
이 미역국 한 사발에 김치만 있다면
최소 한 달은 견딜 자신이 내게는 있다.
그런데 미역국이 라면을 만났다지?
이미 동네 아줌마들 사이에 소문이 파다했는데
잠깐 검색해보니 출시 두 달만에
천 만개 판매를 넘어섰단다.
이럴 때면 으례히 스토리가 붙게 마련인데
아니나 다를까 개발한 연구원이 임산부라나?
그래서 시식을 해본지 약 한 달째
새벽 일을 마치고 출출한 아침이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음식으로 등극했다.
진라면이여 안녕...
그동안 고마웠다우...
미역국 라면의 핵심은 방점의 차이다.
이 라면은 '라면'이 아닌 '미역국'에 올인했다.
와이프와 딸이 이 라면을 싫어하는 이유는
라면 특유의 MSG맛이 도무지 나지 않는다는 것.
그냥 미역국에 라면을 말아놓은 맛인데
나같은 사람이야 좋아하겠지만
라면의 참맛?을 좋아하는 이들은 실망할 만도 하다.
그러고보니 오뚜기네?
원래 미역국 팔던 회사지 않은가붕가.
하나의 제품이 세상에 나와서
원히트 원더를 넘어설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가벼운 히트 정도도 어려운 라면 시장에서
미역국 라면에 주목하게 되는 이유다.
꼬꼬면의 화려한 등장과 초라한 은퇴를 지켜본지라
이 라면의 미래를 점치기는 쉽지 않지만
일단 미역국 마니아들의 입맛은 사로잡을 것 같고
2분이면 완성되는 초간단 조리법에다
속풀이 해장을 원하는 간단한 아침이라는 점에서
감히 롱런을 기대해본다.
그러나 내가 이 라면을 애정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는데
그건 라면을 다 끓일때쯤 느닷없이 나타나
한젓가락의 신공으로 끝없는 절망감을 안겨주던
우리 둘째 딸이 싫어한다는 점이다.
비로소 라면의 맛을 음미할 수 있게 되었으니
나로서는 이보다 더 큰 기쁨은 다시 없다 하겠다.
안전한 아침 식사를 위하여,
부디 미역국 라면이여 장수할지어다.
p.s. 아참 밥 말아먹어도 딱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