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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 꽃 배달부, 블루밍아워

독서 모임을 통해 플로리스트 한 분을 만났다. 모임이 한창이던 때, 그는 단톡방을 통해 종종 '꽃모닝'이라는 이름으로 꽃 사진을 보내오곤 했었다. 평소 꽃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던 나였지만 매일 보내오는 사진들이 싫지 않았다. 아침 나절의 상쾌한 산책과 견줄만 했다. 한없이 화려한 어려운 이름의 서양꽃도 있었고, 길 가에서 한 번쯤은 보았을 법한 수수한 꽃도 있었다. 때로는 꽃이 핀 야외의 풍경 사진을, 가끔씩은 배경과 어우러진 꽃 사진을 보내오기도 했다. 언젠가는 꽃꽂이 사진을 보내오기도 했다. 나는 조금씩 꽃들의 이야기에 매료되기 시작했다. 직접 그를 찾아가 만나기도 했다. 매장 안 테이블 위에는 전세계 곳곳의 차를 담은 포장박스들이 오롯이 쌓여 있었다. 그는 꽃 만큼이나 꽃을 말린 차도 사랑했다. 조금 과장하자면 꽃들에 둘러싸인 그런 기분이었다. 그러나 직업으로써는 쉽지 않아 보였다. 외국만큼 꽃이 우리의 일상에 들어오지 않은 탓이었다. 나는 이런 사람이 좀 더 많이 알려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선뜻 묘안이 떠오르진 않았다.


향기를 주머니 속에 가둘 수 없는 것처럼


꽃모닝은 계속 되었다. 계절의 흐름이 별도로 개설한 그녀의 단톡방을 통해 매일매일 전해지고 있었다. 꽃에 관한 상식도 함께 쌓이기 시작했다. 가끔은 작은 선물을 내건 퀴즈가 올라오기도 했다. 그런 날이면 지난 사진들을 찾아 열렬히 꽃의 이름을 복습하기도 했다. 꽃에 얽힌 슬픈 이야기를 듣노라면 숙연해질 때도 있었다. 브룬펠시아, 라넌큘러스 같은 어려운 이름의 꽃도 있었고, 수선화나 명자꽃 같은 친근한 이름의 꽃도 있었다. 하나 둘씩 벚꽃이 지던 어느 늦은 봄날, 그녀는 벚꽃 엔딩과 관련한 사진들을 보내주었다. 벚꽃 주간에 이뤄진 리추얼들을 정리한 내용이었다. 벚꽃 산책 총 6회, 벚꽃이 예쁘게 보이는 카페 방문 3회, 영화 봄날은 간다 다시보기 1회, 벚꽃 녹차 마시기 5회, 메인 꽃을 벚꽃으로 한 꽃꽂이 작업 3회... 그는 벚꽃과 충분한 데이트를 즐겼으므로 덜 슬프다고 했다. 이제 만개한 라일락, 아카시아, 장미와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의 꽃 사랑은 일상을 뒤덮을 만큼 진하고 강렬한 꽃향기와 같았다.


KakaoTalk_Photo_2019-04-20-14-36-34.jpeg 일반적으로 관상용으로 가장 많이 보는 왕벚꽃나무, 자랑스럽게도 제주도가 원산지다.


그는 '꽃'이라는 본질에 충실했다. 충실하다 못해 대상과 사랑에 빠져 있었다. 그리고 꽃들에 대한 사랑을 '구체적'으로 '실천'했다. 그리고 그 실천들을 '지속'하고 있었다. 매일 꽃사진과 그에 얽힌 스토리를 전달하는 ‘꽃 배달부’, 그것이 이 플로리스트의 ‘컨셉’이 됐다. 단순히 꽃을 ‘파는’ 사람이 아니라 꽃에 얽힌 사연을 전하는 ‘메신저’가 된 것이다. 꽃을 많이 아는 플로리스트는 많을 것이다. 그보다 기술이 뛰어난 플로리스트도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매일 아침 사진과 메시지로 꽃의 아름다움을 전하는 ‘꽃 배달부’는, ‘메신저’는 많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 분을 생각하면 행복한 꽃 배달부가 선명하게 떠오른다. 평범한 플로리스트를 비범하게 만드는 작업, 그러나 그 작업은 인위적이지 않았다. 오래도록 애정을 담아 꽃 사진을 찍었고, 그에 얽힌 스토리를 공부하고 경험했다. ‘단톡방’은 그저 도구였을 뿐이다. 그러나 그 단순한 작업을 ‘반복하는’ 과정을 통해 그만의 ‘컨셉’이 만들어졌다. 그런데 이 꽃 배달부는 꽃만 이야기 하지 않는다. 사람을 이야기한다.


"안 예쁜 꽃은 없어요. 장미가 아니어도, 저마다의 색과 개성이 있어 아름다워요. 사람도 마찬가지구요. 십년동안 플로리스트로 일하면서 느낀 점이 그거에요. 저마다의 다른 개성으로 모든 사람들이 아름답다는 거죠."


KakaoTalk_Photo_2019-04-20-14-33-59.jpeg 작년 4.16에 만든 추모 꽃다발, 노란 리본으로 묶어서 광화문 분향소를 다녀왔다고 한다.


꽃을 팔지 않는다, 행복한 아침을 배달한다


브랜딩은 어렵지 않다. 이 플로리스트의 꽃사랑을 이해할 수 있다면 더욱 그렇다. 그는 꽃만 사랑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사람을 더 사랑할 수 있다고 고백하고 있었다. 한 대상을 향한 애정과 관찰은 삶의 방식을 바꾸게 한다. 일하는 방식이 함께 바뀐다. 그것을 알아보는 나 같은 사람이 생긴다. 나처럼 주변에 입소문을 내기 시작한다. 좋은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 꽃향기를 주머니 속에 가둬놓을 수 없는 것처럼.


그렇다면 그 다음 작업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그 메시지를 관통할 ‘컨셉’을 고민해야 한다. 꽃을 배달하는 메신저를 형상화해보면 어떨까? 꽃의 원산지를 배경으로 한 우표를 스티커로 만들어보면 어떨까? 아름다운 꽃에 얽힌 스토리를 전달하는 뉴스레터 서비스를 시작해보면 어떨까?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마녀 배달부 키키'처럼 고유한 캐릭터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그 캐릭터가 입을 법한 개성 있는 유니폼을 만들어 입어보면 어떨까? 벚꽃이 피는 날은 함께 모여 버킷 리스트를 경험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벚꽃이 예쁘게 보이는 카페를 함께 방문하는 프로그램은 어떨까? 아예 네이밍을 꽃(Flower)을 배달하는(Deilivery) 'Flowery'로 바꿔보면 어떨까?


억지로 만들어진 컨셉은 꽃꽂이한 꽃처럼 결국 시들고 만다. 생화의 싱싱함은 흙 속에 단단히 뿌리를 박고 있기 때문에 온다. 진짜 ‘컨셉’은 생명력을 가진 것이어야 한다. 그 생명력이란 꽃에 대한 애정이다. 그 애정을 이어갈 수 있는 용기와 인내에 기반한 일상의 실천이다. 그 실천이 그녀만의 ‘노하우’로 축적이 될 때 비로소 그 브랜드는 ‘생명’을 얻게 된다. 그 생명력은 ‘컨셉’이라는, 즉 ‘꽃 배달부’라는 선명한 이미지와 메시지로 발견되어질 때 비로소 사람들에게 전해질 수 있다.


KakaoTalk_Photo_2019-04-20-14-36-05.jpeg 버터플라이 라넌큘러스, 꽃잎 수가 적어 나비가 날 때의 하늘하늘한 느낌이 들어 이름에 버터플라이가 붙는다.




Written by 브랜드 스토리 파인더, 박요철


* 브랜드 스토리텔링 문의

작지만 강한 브랜드의 생생한 이야기를 담고 싶습니다.

그런 브랜드를 알고 있거나 운영하고 있다면 언제든 연락주세요.

> E-mail: hiclean@gmail.com

> Mobile: 010-2252-9506

> Site : www.beavern.com





* 꽃모닝 단톡방에 참여해보고 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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