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황홀한 글감옥'으로의 초대

어느 평일의 오후 4시 무렵, 나는 강남교보에서 다음 날 있을 클라이언트 미팅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때 스마트폰이 가볍게 울렸다. 저녁 7시에는 '황홀한 글감옥'의 번개가 있는 날이었다. 하지만 약속 시간을 착각한 멤버 한 분이 근처에 와 있었다. 일을 접었다. 그리고 지하의 폴 바셋에서 지상의 스타벅스 리저브로 자리를 옮겼다. 그렇게 두 시간 빠른 모임이 시작됐다. 속속 다른 멤버들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신기했다. 이렇게 두 시간 일찍 모임이 시작되는 경우는 난생 처음 보았다. 100일간의 글쓰기를 위해 온라인에서 처음 만난(전부는 아니지만) 얼굴들이다. 방장인 나도 낯선 사람들이 많았다. 톡방의 프로필 네임과 실명과 얼굴을 대조하고 확인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그렇게 시작된 모임은 10시가 되어서야 끝이 났다. 모임의 50번 째 되는 날이었다.


'황홀한 글감옥'은 100일 동안 온라인으로 함께 글을 써보자는 취지에서 시작되었다. 톡방의 이름은 조정래 작가의 에세이집 제목에서 따왔다. 이 글감옥은 하루 한 편 글을 써야만 탈출이 가능하다. 우리는 그것을 '탈옥'이라고 부른다. 한 줄 이상의 글이라면 무엇이든 상관이 없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블로그, 브런치 등 글을 쓰는 플랫폼도 제각각이다. 단톡방에 직접 한 줄의 글을 올리기도 한다. 하지만 목적은 단 하나다. 매일 한 편의 글을 완성하는 도전을 즐기자는 취지다. 진짜 글이란 내용만큼이나 '지속 가능성'에 있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들의 모임인 셈이다. 그러니 그 방법은 쉬워야 했다. 어느샌가 '인스타 보험'이란 말도 생겨났다. 저녁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인스타그램에 한 줄이라도 적어두는 것을 말한다. 글을 완성한 사람들은 자신이 쓴 글의 웹주소를 단톡방에 올려야 한다. 그렇게 하루 스무 편에서 서른 편에 가까운 글들이 매일 올라온다. 그날의 회식은 그렇게 50일을 달려온 사람들이 모여 회포를 푸는 자리였다.



도대체 왜, 무엇 때문일까. 그 날 하루의 일을 쳐내기도 바쁜 성인들이, 매일 한 편의 글을 써야만 하는 무모한 도전에 뛰어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시간이 많은 날은 글감이 없고, 대개의 경우 우리는 시간이 없다. 직장인은 직장인 대로 시간이 없고, 나같은 자영업자(1인 기업가, 프리랜서 포함)는 혼자 일하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그런데 매일 밤 12시가 되면 진풍경이 펼쳐진다. 어떻게든 탈옥을 하려는 사람들의 뒤늦은 러시가 이어지기 때문이다. 11시 59분에 한 편의 글을 올리고 한숨을 내쉰다. 그러나 방심은 금물이다. 12시가 되면 다시 감옥에 갇히기 때문이다. 탈옥과 함께 바로 재수감인 셈이다. 그래도 이들의 글쓰기는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쓰는 글의 의 분량이 점점 더 늘어난다. 내용들이 시리즈의 형태를 띠기 시작한다. 그 사람의 생활이 안개 걷히듯 선명해진다. 자신의 일상에서의 감동을 기록하려는 자들의 열심, 그것은 '감동'이라고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나는 글쓰기를 업으로 하는 사람이다. 무려 10년 넘게 전문적인 글쓰기를 계속해왔다. 지금도 내 책을 포함 총 4권의 책을 기획하고 직접 쓰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이들의 '글쓰기'를 향한 위와 같은 열심이 낯설 때가 있다. 세상에 돈 안되고 어려운 일이 글쓰기, 책쓰기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글을 쓰기 위한 모임들은 생겨나고 없어지기를 멈추지 않는다. 이들을 만나고 나서야 알았다. 사람들은 원래 그렇게 '설계'된 사람들임을. 우리는 뭔가를 쓰고자 하는 '본능'을 안고 이 세상에 태어났다. 그것이 대단치 않은 일상일지라도, 평생 평범함에 머무를 범인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우리는 어떻게든 뭔가를 기록으로 남기고자 한다. 이유는 한 가지다.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는 본능을 안고 태어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뭔가 찜찜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평일 저녁 5시간 수다의 이유를 설명하고 싶었다. 우리는 왜 글을 쓰는가. 왜  한 권의 책으로 자신을 기록하고 싶어하는가.



'나답게' 살고 싶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내 삶의 주인공이 나임을 확인해가는 과정이다. 우리는 대부분 타인에 의해, 타인을 위해 재단당하며 하루를 살아간다. '어떻게 너 하고 싶은 대로만 다 하고 사냐'라는 말을 우리는 숱하게 들어왔다. 부모님의 만족을 위해, 배우자의 인정과 사랑을 갈망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자녀들의 행복을 위해 거위의 간처럼 나의 행복을 포기하며 살아가는 것이 이 시대의 미덕이 아니었는가. 그런데 이제 사람들이 그 '미덕'에 지치기 시작했다. 주부도, 취준생도 워라밸을 외치는 이유다. 심플 라이프는 쉽게 뜨고 사라지는 일회성 트렌드가 아니다. 우리는 지금 매우 지쳐 있다. 누군가의, 혹은 사회의 기대에 '부응해야만' 하는 삶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숱하게 많은 독서 모임이 생겨나고, 한 발 더 나아간 책쓰기 모임이 붐을 일으키고 있다. 취미와 리추얼을 도와주는 앱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스몰 스텝'이란 책이 매개가 된 일명 '스몰 스테퍼스들'의 활약도 눈여겨 볼 만하다. 이들의 자발적인 실행력을 옆에서 지켜보면 놀라울 정도다. '황홀한 글감옥'도 그렇게 한 번 말해본 것이 실행된 경우이다. 한 번 해볼까 하는 제안으로 시작된 단톡방이 무려 예닐곱 개에 달한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한 가지다. 한 번 뿐인 내 인생, '나답게' 살아보고자 하는 열망이다.


그렇다면 '나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매일 한 편의 글을 쓰는 것과 나다운 삶 사이에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한 편의 글을 쓰는 순간 나는 그 글의 주인이 된다. 어느 누구도 내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 없기에 그렇다. 글을 쓰는 과정은 삶을 복기하는 과정이다. 누구나 1년에 한 번은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계획한다. 그래서 연초에 다이어리가 불티나게 팔리는 것이다. 가끔씩은 친구 부모님의 장례식장에서 내 삶을 평가한다. 나는 잘 살고 있는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 과정들이 자각을 불러온다. 다른 누군가의 기대에 부응하는 삶이 아닌, 내 삶을 살고 싶어하는 욕심이 비로소 들불처럼 이는 것이다. 하지만 일상으로 돌아오면 그 감흥은 연기처럼 사라진다. 휘발된다. 하지만 그 과정을 '매일' 해볼 수 있다면? 글감옥의 수감과 탈옥이 매일 반복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다른 누군가가 1년에 한 번 할 일을, 이 곳에 글감옥의 수감자들을 매일 반복한다. 그것이 다른 점이다. 그냥 이대로 살아도 되는 것일까?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일까? 내 인생의 주인이 되기 위해 당장 무엇을 해야 할까? 매일 다른 이들이 올리는 글들은 이런 질문과 자극을 던진다. 마치 영화 '매트릭스'에 나오는 '붉은 알약'과도 같다. 자신이 살아가는 세상의 주인이 되기 위한 첫 번째 관문인 셈이다.



우리는 누구나 한 번의 삶을 산다. 그것은 변함 없는 진리다. 그러나 모두가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 살아가진 못한다. 우리가 매일 출근하는 이유는 즐겁고 행복해서가 아니다. 그러지 않으면 나의 가족들이 굶을 것 같고, 타인의 손가락질을 받을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다. 누군가는 그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몇몇의 돌연변이?들은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일탈을 시작한다. '나답게' 살고 싶다는 신음소리가 '아우성'이 된 요즘이다. 눈치 빠른 광고계 사람들이 매일 같이 카피로 써먹는 바람에 다소 식상하기도 한 표현이지만, 그 의미만큼은 선명하다. 한 번 뿐인 내 인생, 내가 주인으로 살고 싶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삶을 가능케 하는 첫 출발이 바로 기록이다. 글쓰기다. 책쓰기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글감옥에 수감된다. 12시가 되면 문이 닫히고, 다시 자유를 얻기 위한 글쓰기의 전쟁이 매일 같이 계속된다. 뭔가 쓸 거리를 찾기 위해 주변을 두리번 거린다. 사람을 만나도, 사고를 쳐도, 기막힌 노을을 보아도, 이 모두가 글감옥의 수감자들에겐 '쓸 거리'가 된다. 그런데 혹 알고 있는가? 그런 삶이 바로 '주인공의 삶'이란 것을. 내 인생의 주체가 되어 사람을 만나고, 일을 하고, 주변을 돌아보게 된다. 그러한 기록들을 몇 십 편 엮으면 한 권의 책이 된다. 자기 인생의 주인공으로 살지 못한다면 결단코 불가능한 일이다.


5월 부터는 온라인 글감옥이 오프라인으로 옮겨 온다. 이제는 아예 한 자리에 모여서 글을 쓰기로 한 것이다. 목표는 한 권의 책쓰기다. 한 달에 한 두 번, 한 곳에 모여 '주제'를 제비 뽑는다. 그 주제로 가볍게 토론을 한다. 1시간 동안 실제로 글을 쓴다. 그리고 서로의 글을 피드백(합평)한다. 그렇게 몇 달을 지속하며 한 권의 책을 만드는 '소스'들을 모은다. 다람쥐가 모아놓은 도토리처럼, 그 글감들은 인생의 주인공으로 살기를 원하는 이들의 에너지원이 된다. 매일의 글쓰기는 그렇게 조금씩 확장의 과정을 거친다. 그 변화는 하루 아침에 놀라운 변화를 만들어내진 못할 것이다. 하지만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고 다시 5년, 10년이 지나면 어떤 일이든 반드시 벌어지고 말 것이다. 자기 인생의 주인공으로 살아가는 사람에게만 일어나는 특혜다. 나는 그렇게 3쇄를 찍은 '스몰 스텝'이라는 책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 이후로 참으로 많은 것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글감방은, 글쓰기 모임은, 그렇게 자신의 인생을 바꿔가려는 사람들이 필연적으로 겪어야 하는 영광의 상처다. 나는 지금 그 놀라운 변화의 시작 앞에 서 있다. 매일 한 편의 글쓰기로 시작된, 가장 '나다운' 삶들이 지금 막 시작되려 하고 있다.




'황홀한 글감옥' 단톡방

(비번 prison)


매거진의 이전글 아주 낯선, 토요일의 흥분을 만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