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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다 더 뜨거운 주말은 없다, 독깨비 북카페 투어

아무도 모를 것이다. 주말이면 신사역 8번 출구에서 채 5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에 서점이 생겼다 사라진다는 사실을. 이름하여 'Twoday books', 말 그대로 이틀만 열리는 서점이다. 팔리는 책은 고작 30여 종, 그것도 모두 독립출판 형식으로 나온 책들이다. 그러니까 출판사에서 '찍어낸' 책이 아니라는 뜻이다. 자신이 쓰고 싶은 내용을, 원하는 크기와 모양으로 만들어진 책들이다. 손바닥만큼 작은 책도 있고, 비단으로 표지를 만든 책도 있다. 양말만 이야기하는 책도 있고, 1년 362일간 카레만 먹은 사람의 책도 있다. 어머니를 통해 할아버지의 삶을 추적한 인터뷰 책도 있고, 경찰관들의 생생한 일상을 담은 아주 작은 책도 여기서 만날 수 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천국, 그렇지 않은 이에게는 스쳐 지나갈 이 곳. 이곳에서 아주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이름하여 '북카페 투어'. 독서모임인 독깨비에서 독립 서점들을 투어하는 행사다.



행사의 순서는 간단했다. 독립서점 '투데이북스'의 실장이자 광고회사 '머쓰앤마쓰'의 김승열 대표가 이 곳 공간이 만들어진 이유와 독립서점, 그리고 이곳에서 팔리는 책들에게 대해서 이야기해주었다. 나는 두 번째 방문이라 그 충격이 덜했지만, 몇몇 사람은 이런 방식의 출판이 가능하다는 사실에 놀란 듯 했다. 보통의 출간 경로를 따르지 않고도 자신의 책을 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나온 책들로 가득 채워진 공간이 주는 힘은 컸다. '나도 책을 낼 수 있을까?'라는 물음표가 '나도 책을 낼 수 있겠다'라는 희망으로 바뀌는 임팩트 있는 강의였다. 그리고 바로 이 공간에서 40대를 위한 글쓰기 교실이 열린다고 했다. 이미 책을 한 권 써본 경험이 있는 나로써도 엄청나게 매력 있는 제안이었다. 팔리는 책이 아닌, 출판사의 검열?을 거치지 않은, 오롯이 내가 쓰고 싶은 글들을 엮어 낸다면 어떤 책이 나올 수 있을까? 강연 내내 나는 머리를 굴려야 했다. 아마 그 공간에 있었던 많은 이들이 그랬을 것이다.



그 다음엔 자유롭게 책을 읽었다. 서른 종의 독립 서적이 빼곡한 공간에서 장보러 나온 아줌마들처럼 금새 공간이 활기찬 에너지로 가득했다. 정말로 다양한 책들이 많았다. 나는 또 어쩔 수 없이(좋은 의미로) 지갑을 열어야 했다. 가장 먼저 고른 책은 '작고 확실한 행복, 카레'라는 책이었다. 디자이너로 보이는 저자가 도쿄의 카레 전문점 12곳을 투어한 이야기였다. 그는 일년에 362번 카레를 먹었다고 했다. 어린 시절 그 특유의 향 때문에 카레를 피했던 내겐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물론 지금의 나는 카레를 무지하게 좋아한다. 한 때는 라멘 집만 찾아다니는 일본의 어느 프로그램을 정주행한 적도 있었다. 기차에서 파는 벤또만 먹고 다니는 프로그램에도 열광한 적이 있었다. 낯선 공간과 낯선 음식, 하지만 좋아하는 음식들이 만드는 향연은 TV 프로이든, 책이든 모두 매력적이었다. 다행히 나의 선택은 탁월했다. 주말 동안 먹지도 않은 카레 냄새가 집안에 진동했다. 여기서 쉽고 간단한 책쓰기의 노하우가 하나 등장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건, 그것을 1년 동안 쉬지 않고 글이나 영상으로 남겨보는 것이다. 바로 이 책의 작가처럼 말이다.



두 번째 책은 '나이 먹방 에세이, 이렇게 많이 먹을 줄 몰랐습니다'라는 책이었다. 이곳 '투데이북스'를 운영하는 두 사람이 함께 쓴 책이다. 책은 앞뒤에서 동시에 시작한다. 한 쪽은 40대 남자인 김승열 대표의 이야기로, 다른 한 쪽은 이 서점을 함께 운영하는 30대 김혜진님의 이야기가 각각 다르게 시작된다. 먹방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나이'를 먹는 먹방의 컨셉이 선선하고 매력적이었다. 또 한 가지 다른 이유는 이미 책을 구매한 지인이 보여준 싸인 때문이었다. 김혜진 대표는 자신의 싸인을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하고 있었다.


"나이에 맞게 말고

나에 맞게 살아요."


김승열 대표는 이렇게 쓰고 있었다.


"오늘도 행복하고 맛있는

나이 드세요."



누가 카피라이터 아니랄까봐... 짧고 굵은 메시지는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로 가득했다. 나로 사는 법, 오늘 행복해지는 법, 이 모두가 내가 스몰 스텝을 매일같이 지속하는 유일한 이유이자, 거의 모든 이유였다. 내 책에 싸인할 때마다 쓸 문장을 고민하게 되는 계기도 됐다. 짧지만 인사이트 넘치는, '스몰 스텝'을 위한 싸인 문구를 무엇으로 하면 좋을까. 두 권의 책을 고르고 나서도 나의 욕심은 성에 차지 않았다. 몇 권의 책을 반복해서 들었다 놨다 했다. 장고 끝에 100여 켤레의 양말을 수집한 사람의 이야기는 다음에 사기로 했다. 나는 양말에 관심 없지만 사람엔 관심 있었다. 한 가지를, 지치지 않고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은 위험한 사람이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가 적잖이 궁금했다. 언제고 이런 책을 낸 사람들을 인터뷰해도 재밌지 않을까?



해마다 불황이라는 출판사와 서점들의 아우성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주변엔 책을 좋아하는 사람, 글을 쓰고 싶은 사람들로 넘쳐난다. 돈 안되는 일인 줄 뻔히 알면서도 기어이 자기만의 방식으로 책을 내는 독립 작가?들만 보아도 그렇다. 왜 우리는 주말의 이틀 중 하루를 이곳 북카페 투어에 쏟아붓고 있는가. 왜 우리는 글을 쓰고 싶어하고, 책을 내고 싶어하는가. 물론 그 이유는 사람마다 다르다. 자식에게 유서 대신 책을 남기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고, 출판사의 간섭과 갑질?이 싫어 자신의 뜻대로 책을 내고 싶어하는 개성 넘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걸 뭉뚱그려 한 마디로 얘기한다면 그건 아마도 '본능' 때문일 것이다. 자신이 이 세상에 존재했다는 사실을, 그래서 무언가를 남기고 갔다는 사실을, 그로 인해 세상이 조금 더 좋아졌다는 사실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것이리라. 그런 열망이 독립출판을, 독립서점을 꾸준히 만들어내고 찾게 하는 것은 아닐까.



독서가 고픈 이들에게 '독깨비'를 권한다. 책쓰기가 고픈 이들에게 '북카페 투어'를 권한다. 때로는 주말을 집안에서 빈둥거리는 것보다, 남들 다 가는 유원지에서 돈과 힘을 낭비?하고 오는 것보다, 때로는 이런 독특한 사람들의 틈에 끼여 나도 몰랐던 숨은 욕구들을 채워보는 것은 어떨까.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내 생각대로 살지 않으면 남의 뜻대로 살게 된다. 세상엔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그들을 만나는 것 만으로도 당신 삶은 조금 바뀔 수 있을 것이다. 하물며 그런 사람들이 무리로? 모인 곳이라면?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런 모임이 실재한다. 신사역 8번 출구에서 5분을 걸어가면 있는 만복국수, 바로 위 2층 '투데이북스'에서. 그 공간에 모인 '독깨비들' 때문에. 당신의 익숙한 주말이, 삶이, 조금 더 흔들렸으면 좋겠다. 그 흔들림이 당신 삶을 조금은 더 좋은 쪽으로 옮겨 놓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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