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아리 글쓰기 과제 #01.
1.
여름이었다. 태양빛이 뜨거웠다. 나는 바다에서 수영을 연습하고 있었다. 통나무에 매달려 열심히 물장구를 쳤다. 그러던 어느 순간, 휘청하고 통나무가 몇 바퀴 돌아버렸다. 순식간에 물에 빠진 나는 곧 정신을 잃었다(아니 그러했으리라 추정할 뿐이다). 바닷 속에서 의식이 돌아왔던 것일까? 저 멀리서 태양빛이 바다 속에서 희미하게 어른거리고 있었다. 그 순간 문득 억울하단 생각이 들었다. 너무 일찍 세상을 뜨는게 아깝다는 생각을 했다. 이상하게도 숨쉬기기 힘들지 않았다. 주변은 평화로웠다. 그 순간 몸이 들리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바다 밖으로 나왔다. 너무 일찍 죽음 가까이 갔던 것일까?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 어린 나이에 벌써 알아버렸다. 나는 한동안 바닷가에 앉아 오래오래 '죽음'을 생각했다.
2.
시골에서 도시로 전학을 왔다. 전학하는 동안 몇 주를 쉬었다. 성적이 곤두박칠 쳤다. 이제는 교무실의 그 누구도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나는 평범해졌다. 영재 소리를 듣고, 1등을 놓치지 않았던 내가 30등짜리 평범한 학생으로 강등되어 있었다. 성적을 확인한 후, 아이들도 선생님도 더는 나를 염두에 두지 않았다. 지독한 소외감이 찾아왔다. 출구는 보이지 않았다. 집과 반대 방향으로 버스를 타곤 했다. 종점에서 내려 다시 집으로 왔다. 달라진 건 없었다. 이 세상에서 평범함은 평균 이하를 의미했다. 나는 그 어디에도 마음을 두지 못하고 방황에 방황을 거듭했다.
3.
군대를 다녀온 후 수능 시험을 다시 쳤다. 소주 한 병과 땅콩 한 봉지를 사들고 아버지를 설득했다. 2년만 더 뒷바라지하면 대학을 졸업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 아버지는 긴 한숨을 쉬셨다. 그래도 나는 고집을 꺽지 않았다. 독서실에서 알바를 하며 6개월을 공부했다. 다행히 성적은 기대 이상이었다. 원하는 학과는 아니었지만 대학 생활은 즐거웠다. 하고 싶은 공부를 원없이 했다. 발표 수업은 도맡아 했다. 조금씩 자존감이 회복되고 있었다. 여섯 살 어린 동기들과 잘도 어울렸다. 원하는 것을 얻은 결과는 달콤했다. 인생의 단 맛을 제대로 느끼던 시절이었다. 입학한 그 다음 해에 IMF가 찾아왔다. 늦은 두 번째 대학생활이 오히려 안전을 보장해주었다. 최고의 시절이었다.
4.
퇴근길 지하철에서 '그 분'이 찾아왔다. 갑자기 숨이 막히고 손발이 저릿해왔다. 간간히 찾아오던 어지럼증과는 차원이 다른 경험이었다. 죽음이 코 앞에 와 있었다. 계단을 뛰어올라 약국을 찾았다. 우황청심환을 먹고 나서야 간신히 한 숨 돌릴 수 있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공황발작'이었다. 일에 집중할 수 없었다. 회사 생활은 평탄치 않았다. 일만 잘한다고 인정받는 곳이 아님을 깨닫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추락에 추락을 거듭했다. 주말이면 넋나간 사람처럼 TV 앞에만 앉아 있었다. 월요일이 다가오는 주말엔 공포심마저 느꼈다. 결국 회사를 그만 두었다. 석달 만에 회사에 복귀했으나 나는 예전의 내가 아니었다. 나는 어느 한 곳의 루저가 아니라 인생 전체의 루저가 되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5.
우연히 책 한 권을 만났다. 그 책에 나온 '스몰 스텝'을 시작했다. 매일 세 줄의 일기를 쓰고 다섯 개의 영단어를 외웠다. 산책을 하고 음악을 들었다. 자그마한 성취의 경험들이 조금씩 쌓여갔다. 그 경험들을 브런치를 통해 글로 옮기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열광했다. 출간 의뢰를 받고 책을 썼다. 모임이 만들어졌다. 여섯 명이던 그 모임이 지금은 600명을 바라본다. 18개의 스몰스텝을 실천하는 단톡방이 생겼다. 10여 명의 운영진을 만났다. 함께 스몰 스텝을 실천하며 경험을 나누었다. 내 삶의 이유를 찾았다. 내가 바로 서고, 타인을 바로 서게하는 스몰 스텝의 힘을 만났다. 지금은 우울에 빠질 시간도, 공황에 빠질 여유도 없다. 나를 포함한 타인의 변화를 함께 공유하고, 그 경험을 글로 옮기느라 하루가 부족하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런 경험들이 가장 '나다운 삶'을 완성해가고 있다는 것을. 타인의 자기다움을 돕는 것이 나다워지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는 사실을. 그래서 지금의 나는 더없이 행복하다. 매일 작은 걸음을 내딛는 내 자신이 자랑스럽다. 그 길을 함께 걷는 사람들이 사랑스럽다. 나는 지금 나답게 살고 있다.
내 삶의 화두를 뒤늦게 찾았다. 그것은 바로 '나다움'이었다. 스몰 스텝은 매일 성취하는 삶을 경험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 작은 성취들이 모여 자존감을 높여 주었다. 내가 달라지자 주변의 사람들도 함께 달라졌다. 크고 작은 기회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 경험들을 글로 쓰고 책을 쓰고 모임으로 이어갔다. 그래서 나는 그 어느 때의 나보다 지금의 내가 좋다. 이런 변화를 함께 나누는 건강한 사람들에 둘러싸인 지금이 좋다. 나의 경험을 더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다. 인생의 어느 한 장면에 갇혀 절망하지 않도록, 인생은 충분히 살아볼만한 가치가 있는 훌륭한 여정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다. 매일 조금씩 확인하고 경험하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 나로 인해 이 세상이 조금은 더 좋아졌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좋겠다. 그래서 오늘의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그것이 내게 삶을 허락한 그 누군가를 향한, 가장 훌륭한 화답임을 알고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