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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몰랐던 나를 만난, 다섯 번의 여행기

1.


어느 날 아침이었다. 출근을 할 수 없었다. 사흘간 병가를 냈다. 그래도 갈 수 없었다. 회사를 그만 둔 뒤 나는 동네 도서관을 매일 다녔다. 대표님이 찾아와 다시 출근할 때까지의 3개월... 그 기간 동안 나는 동네 도서관의 책을 원없이 읽었다. 10권씩 쌓아놓고 읽었다. 영혼이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책을 읽다가 지치면 무라카미 하루키와 스티븐 킹의 소설을 읽었다. 그러면 또 다시 새로운 책을 읽고 싶은 욕구가 용솟음쳤다. 한 번은 우리나라 문학상을 모은 작품집을 섭렵하기 시작했다. 그때 김영하와 김애란 같은 내 마음 속 최고의 작가들을 만났다. 우리 글의 아름다움을 만났다. 그리고 주저앉은 나를 일으키는, 나를 움직이는, 나도 몰랐던 내 속의 숨은 힘을 만났다.



2.


여느 날 같이 평범한 퇴근 길이었다. 하지만 그 날은 마을 버스를 타지 않았다. 대신 정류장을 내려와 탄천 옆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집까지 걸어가는 시간은 약 30분. 조금은 돌아가는 길이지만 새로운 경험이었다. 고요한 퇴근길이 하루 동안 상처 입은 내 영혼을 정화해주었다. 음악을 듣고 팟캐스트를 들었다. 묘한 행복감이 밀려왔다. 마치 스마트폰의 배터리가 충전되듯 새 힘이 솟아났다. 고작 30분이었다. 하지만 그 한 번의 산책이 이후의 나를 바꿔 놓았다. 매일 반복할 수 있는, 내게 새로운 힘을 주는 습관들을 하나 둘씩 늘려가기 시작했다. 내 인생의 바꾼 스몰 스텝의 시작이었다.



3.


식은 땀이 흘렀다. 도망 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용기도 없었다. 수십 개의 눈이 나만 바라보고 있었다. 누가 봐도 버벅거리는 내 인생 첫 강의가 그렇게 시작되었다. 직감할 수 있었다. 이 강의는 망했구나. 하지만 중간에 멈출 수는 없었다. 그렇게 한 시간쯤 지났을 무렵, 나는 마음 속 깊은 곳의 호흡을 되찾을 수 있었다. 간간히 사람들이 웃었다. 내 강의에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이론이 아닌 경험이었으므로 내용만큼은 자신이 있었다. 그렇게 내 인생의 첫 공식 강의가 끝이 났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문자를 받았다. 평소 한없이 까칠하던 이사님으로부터의 칭찬 메시지였다. 내게도 잘 할 수 있는 무엇이 있었구나. 해놓고 나면 이렇게 뿌듯한 에너지를 주는 그 무엇이 있었구나. 나는 그 발견의 기쁨으로 그 날 제대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4.


스몰 스텝을 출간 한 후 어느 날, 문득 이 내용으로 무료 강연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실천으로 옮겼다. 신기하게도 신청이 이어졌다. 그렇데 대여섯 분의 스몰 스테퍼를 그 때 만났다. 그렇게 몇 달 동안의 모임이 이어졌다. 참여자 수는 그만그만했다. 그런데, 그래서 그 모임을 멈출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평소보다 늦게 모임에 참석한 나는 얼어붙고 말았다. 참여자가 조금은 많아졌다 깊어 더 넓은 장소를 섭외한 날이었다. 모임 장소가 가득 차 있었다. 어안이 벙벙했다. 나 좋자고 시작한 스몰 스텝이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나 혼자가 아니었다. 동일한 필요,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는 기쁨은 참으로 놀라웠다. 그들을 만나는 것만으로 마음 속 빈 곳이 꽉꽉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그런 종류의 행복감은 난생 처음이었다.



5.


글쓰기 모임을 시작했다. 10여 년 이상 글을 써왔지만, 나도 그 뾰족한 방법은 모르겠다. 하지만 함께 한 첫 날, 그리고 합평이 시작된 둘째 날, 그 무엇을 했을 때보다도 기분 좋은 만족감으로 하루 종일 행복했다. 나는 글 쓰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과 함께 하니 더 기쁘고 더 즐거웠다. 기대감이 솟았다. 이들과 함께 책을 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진 것도 그 날이 처음이었다. 가능할 것 같았다. 같은 시간을 다르게,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를 읽고 듣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행복할 수 있다니. 나를 찾아 떠나는, 그들의 참모습을 찾아 떠나는, 진짜 여행이 바야흐로 시작되고 있었다.





* 이 모든 이야기의 시작, 스몰 스텝 단톡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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