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달한 아침의 작당

오전 10시면 독서실 문을 열었다. 아이들이 몰려올 저녁 시간까지 독서설 안은 한가했다. 하루를 시작하는 늦은 아침의 여유로움이 참으로 좋았다. 나는 습관처럼 독서설 안에 있는 자판기로 향했다. 동전 서너 개를 넣고 버튼을 누르면 텅텅 거리는 소리를 내며 캔 커피 하나가 굴러 내려왔다. 나도 알고 있었다. 이 커피맛의 8할은 설탕맛임을. 그럼에도 그 달달함이 아침의 나른함을 깨워주었다. 외로움을 달래주었다. 두 번째 수능을 준비하던 그 해의 여름은 짧았다.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내가 내린 결정을 고집했다. 다행히 나는 그해 단 여섯달을 공부하고 원하는 학교에 합격했다. 그 달달함은 현실이 됐다.


많은 이들이 커피의 맛을 논한다. 나 역시 1년여 가량 핸드 드립 커피를 하루도 빼놓지 않고 내려 마신 때가 있었다. 커피향은 좋았다. 아침을 깨우는 의식처럼, 회사 사람들과 시작하는 하루의 그때가 가장 행복했다. 하지만 도무지 커피 맛은 구분하지 못했다. 가장 흔한 예가체프와 케냐 원두의 맛도 구분하기 힘들었다. 예가체프 쪽이 조금 더 ‘고소'하긴 했다. 그러나 원두의 상태 때문인지, 나 스스로의 주문 때문인지는 구별할 길이 없었다. 나는 커피 맛보다 그 시간을 즐겼다.


새벽 4시, 혹은 5시. 미라클 모닝을 시작하면서 기상 시간이 당겨졌다. 맨 먼저 일어나서 양치를 한다. 몸무게를 잰다. 침구를 정리한다. 그리고 가까운 편의점을 찾아 달달한 카페 라떼를 찾는다. 그렇게 커피 한 모금을 마시면 비로 몸의 감각이 깨어나기 시작한다. 세 줄 일기를 쓴다. 플래너를 정리한다. 그리고 한 편의 글을 쓴다. 이 시간의 행복이 주는 맛은 어떤 맛일까? 커피의 고소함일까? 설탕의 달달함일까?


맛은 혀끝에서 끝나지 않는다. 몸 속 깊숙히 숨은 기억 어딘가로 그 맛은 저장된다. 그리고 판도라의 상자처럼 그 맛은 잊혀진 기억을 깨운다. 맛과 기억은 하나다. 달달한 커피 맛을 느끼는 순간 나는 무려 30년 전의 그때로, 늦은 아침의 햇살을 받던 따뜻한 그때의 아침으로 다시 돌아간다. 나는 그때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 외로움을 마셨고 희망을 삼켰다. 꿈을 꾸었다. 하고 싶은 공부를 원없이 하겠다는 다짐을 되새겼다. 그해 수능은 달달했다. 시험을 즐겼다. 결과를 누렸다. 그 한 모금의 커피가 많은 것을 바꿔 놓았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달달한 커피를 찾는다. 커피 맛을 모르는 미맹의 습관이다. 그러면 어떤가. 이 아침이 그렇게 달달해질 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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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께 모여 글쓰는 즐거움, 쓰닮쓰담

(쓰면서 닮아가고, 쓰면서 담아갑니다, 참여코드는 write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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