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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쓰지 않는다, 조합하는 것이다

글은 쓰는게 아니다.

수집하는 것이다. 조합하는 것이다.

글쓰기의 어려움은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전에 없던 문장을 새롭게 창조해야 한다는 부담감.

그러나 우리는 소설가가 아니다.

시인도 아니다.

우리가 쓰는 글의 대부분은 창작의 영역과는 거리가 멀다.

우리가 경험한 한 움큼의 사실에

기존에 존재하는 수많은 생각들을 조합하는 작업이다.

카피하거나 표절하라는 말이 아니다.

기록과 자료 수집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이다.


예를 들어 한 권의 책을 쓴다고 가정해보자.

출판사가 요구하는 것은 이 책을 쓴 의도와 다듬어진 목차,

한 두편의 샘플 원고다.

일단 필요한 것은 쓰고 싶은 글들의 목록이다.

이 목록들이 결국은 목차가 된다.

그러나 목차는 섹시해야 한다.

책을 고르는 사람들은 흔히 서문과 목차, 표지를 본 후

이 책을 읽거나 구매할지를 결정하기 마련이다.

이럴 때면 나는 온라인 서점으로 목차 여행을 떠난다.

비슷한 주제의 책을 찾아 매력적인 목차를 별도로 메모한다.

정말 마음에 드는 목차가 많다면 소목차도 섭렵한다.

같은 말이라도 무릎을 치게 만드는 단어와 문장들을 만난다.

이렇게 하는 이유가 있다.

저자와 편집자가 가장 많은 공을 들이는 작업이 바로 목차 작업이기 때문이다.


어느 대기업으로부터 중국 사업 30년사를 정리해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기획 의도에는 컨셉도 포함이 된다.

그 컨셉이 가장 명확하게 드러나야 할 곳은 바로 제목과 목차이다.

긴 고민 끝에 나온 제목은 '거인의 대장정',

중국스러운 느낌과 30년의 역사를 두 단어에 담아야 했다.

거대함과 긴 여정,

그 주인공 역시 거인임을 의미하는 중의적인 표현이었다.

컨펌을 받은 후에는 목차를 고민했다.

그때 떠오른 것이 바로 이문열의 삼국지,

10여 권의 책에서 마음에 드는 목차를 모두 뽑아보았다.

그리고 내용에 맞게 변형하는 작업을 했다.

그렇게 중국스러움이 한껏 묻어나는 제목과 목차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분명히 말하지만 표절이나 카피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더 정확히는 영감을 얻자는 말이다.

내가 쓰고자 하는 글을 사람들은 어떤 단어로 이해할까,

어떤 문장으로 소통하고 있을까?

어떤 질문을 가지고 내가 쓴 책을 고민하고 있을까.

이런 생각은 독불장군처럼 혼자 생각한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독서가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쓰고 싶은 글, 쓰고 싶은 책은 누군가 한 번은 고민하고

수많은 책으로 이미 세상에 나와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목차 여행은 차별화를 위한 작업이기도 하다.

오히려 표절과 카피를 피하기 위한 목적이다.

그러니 글을 쓰고 싶다면, 책을 쓰고 싶다면

이미 나와 있는 책들의 목차를 마음 잡고 여행해보자.

생각지도 못했던 아이디어와 영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나만의 멋진 목차와 표현, 차별화된 제목들을 뽑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글은 쓰는 것이 아니다.

수집하고, 조합하고, 압축하는 작업이다.

세상은 당신에게 세상에 없는 생각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러니 괜한 부담감으로 두려움에 빠지지 말자.

기억하라.

앞선 저자들도 이미 비슷한 과정들을 거쳤다는 사실을.





* '쓰닮쓰담', 평범한 사람들이 작가로 다시 태어나는 글쓰기 오프 모임입니다 :)

(참여코드: wr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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