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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책 한 권 써보고 싶다구요?

은퇴하면 책이나 한 번 써봤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시간이 나면 책이나 한 권 써보고 싶다는 이야기는 자주 듣는다. 하지만 혹시 이런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주말에 프로 야구 선수로 한 번 뛰어봤으면 좋겠다. 가벼운 수술은 내가 직접 해보았으면 좋겠다. 언제고 시간이 나면 비행기나 한 번 몰아봤으면 좋겠다….  적어도 나는 들어본 적이 없는 말이다. 그런데 왜 글쓰기는 그렇게 쉽게 이야기하는 것일까?


15년 이상 글쓰는 일로 밥벌이를 하다 보니 이런 말을 들으면 보이지 않게 발끈하곤 했었다. 사실 글쓰기는 어려운 일이다. 퇴근 후 시간을 내어 걷는 산책과는 다른 일이다. 게다가 어느 직업에나 프로의 세계가 있지 않은가. 물론 일반적인 글쓰기와 프로들의 글쓰기를 구분 못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보통 사람들의 글쓰기의 로망을 이해 못해서도 아니다. 그저 글쓰기가 그렇게 쉽지 않다는 것을 누구 못지 않게 오래, 자주 경험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독립 출판에서 뜬 책이 베스트 셀러가 되는 경우도 있다. 돈만 있다면 출판사에서 책 한 권 만들어내는게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다. 전문 직업인임에도 불구하고 탁월하게 글 잘 쓰는 이들을 종종 만나곤 한다. 그러나 글 쓰고 책 쓰는 일을 가볍게 보는 풍토를 마주칠 때마다 불편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글쓰기 영역에도 엄연히 타고난 재능이 존재하며 프로의 세계가 있음을 강변하고 싶을 때가 있다. 세상 어디에도 쉬운 일은 없다.


나는 그중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가 글쓰기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눈에 보이는 완성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한 채의 벽돌집 처럼 완성의 척도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시작과 끝이 있는 수많은 일과 비교해 모호한 마무리 때문이다. 직접 쓴 저자조차 아침 다르고 저녁 다른게 바로 글이란 존재다. 하물며 타인이 평가하는 글이란 언제나 위태롭다. 벼랑 끝에 선 기분, 외나무 줄 위를 걷는 기분, 아마도 글쓰기를 직업으로 둔 많은 이들이 이런 기분을 느끼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글쓰기에 완성이란 없다. 글은 고치는 만큼 나아지게 마련이다. 그것이 글쓰기가 어려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한 번은 석 달 동안 도서관을 찾은 적이 있었다. 심각한 우울증으로 회사를 그만 두었을 때였다. 그때 내가 한 일은 한국에서 문학상을 탄 모든 작품을 섭렵하는 거였다. 읽다가 읽다가 지치면 하루키를 읽었다. 그래도 지치면 스티븐 킹의 공포 소설을 읽었다. 그리고 다시 김애란과 김영하와 김훈의 단편으로 되돌아오곤 했다. 나는 진심으로 그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수많은 마음의 상처들이 아물어가고 있었다.


도서관 사서가 놀랄만큼 거대한 책의 기둥을 쌓아두고 미친 듯이 읽어내려갔다. 역사, 문학, 스포츠, 신화를 가리지 않고 읽었다. 그때의 그 경험들이 지금의 내 글쓰기에 밑거름이 되어 주었다. 책과 글과 문장이 주는 거부할 수 없는 매력, 생계의 위험 신호가 목전에 다다랐을 때도 책을 놓지 않았다. 글을 놓지 않았다. 시간이 많고 한가로워 책과 글에 매달린 건 아니었다. 그것이 내 숨통을 틔워주는 유일한 통로였기 때문이었다.


회사에 다닐 때는 6시에 칼퇴근을 했다. 매주 찾아오는 월요병을 이기기 위한 극단의 처방전이 내게는 '독서'였다. 9시 반 영업 종료를 알리는 익숙한 노랫소리가 들릴 때까지, 나는 마치 걸신 들린 듯 교보문고 강남점의 책들을 읽어내려가곤 했다. 그때 만난 구본형 공병호, 스티븐 코비와 앤서니 라빈스의 책들은 자기구원의 책들이었다. 나는 그 독서의 기록들을, 서평들을 꾸준히 포털 사이트의 블로그에 올렸다. 결국 연말에는 파워블로거로 인정받아 이런 저런 혜택을 받았다. 온라인 서점에서는 수십 만원이 적립금을 받아가며 쉴새 없이 서평을 썼다. 그렇게 받은 적립금은 직장 동료들을 위한 책 선물로 선심 쓰듯 쓰곤 했다. 나는 책이 좋았고 독서가 좋았다. 글쓰기가 좋았다. 그 모든 경험들이 내 글을 완성하는 자양분이 되어 주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읽기의 기술이 쌓였다. 쓰기의 기술이 늘었다. 지금까지 수 없이 많은 글들을 여러 목적으로 써왔다. 약 7년 간 브랜드 전문지의 에디터로 수십, 수백 개의 아티클들을 읽고 쓰고 편집해왔다. 이후 약 5년 간은 크고 작은 기업들을 위한 네이밍, 카피, 스토리텔링 작업들을 감당해왔다. 이미 두 권의 책을 세상에 내보냈고, 다시 두 권의 책을 선보이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있는 중이다. 컨셉을 잡고, 자료를 정리하고, 온갖 흩어진 생각들을 하나로 모아 완성도 높은 글과 책으로 만드는 작업의 최선전선에서 일하고 있다. 이제 그 대단치 않은 지식과 경험들을 이 책을 통해서 나눠보고자 한다.


하지만 그 전에 이 말만큼은 해야겠다. 어느 영역에서든 프로가 되기 위해선 타고난 재능이 있어야 한다. 그에 상응하는 피나는 노력과 희생이 따라야 한다. 고작 한 권의 책을 낸 무명 작가인 나도 아주 오랫동안 글 잘 쓰는 사람으로 칭찬을 받아왔었다. 그 재능에 더한 쉽지 않은 노력들을 거듭해왔었다. 그래서 한 권의 책을 쓴 후 작가들을 향한 경외심 비슷한 감정을 지니게 됐다. 글 쓰는 일이 어렵다고? 그건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면 한 권의 책을 낸다는 일은 또 얼마나 더 어렵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많은 이들에게 글쓰기를 권한다. 이 쉽지 않은 책쓰기를 권한다. 글쓰기는, 책쓰기는 평범한 한 사람을 비범하게 만드는 가장 쉽고도 확실한 최고의 방법론이기 때문이다. 나를 가장 나답게 만드는 최고의 솔루션이기 때문이다. 진정성을 지난 한 권의 책은 사람의 인생을 바꾸기 때문이다. 그렇게 바뀐 인생은 또 다른 사람들을 바꿔가기 시작한다. 그만한 가치가 있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틈만 나면 글쓰기를 권한다. 도와주겠다고 말한다. 내가 경험한 변화들 때문이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들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글을 쓰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책 쓰는 일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 어려움을 겸허히 받아들인다면, 매일 공을 던지고 슛을 던지는 아마추어 선수들처럼, 자신의 삶에서 의미있는 기쁨과 보람을 충분히 누릴 수 있다. 그리고 아주 가끔은 제대로 된 작가의 길로 들어설 때도 있다. 그게 당신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벌써 네 번째의 책을 쓰게 된 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다음의 가이드들을 따라 이제 제대로 된 글 한 줄을 써보자. 글 한 편을 써보자. 책 한 권을 써보자.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삶이 달라질 것이다. 당신도 달라질 것이다. 지금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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