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사람들이 있다. 한사코 자신의 세계를 벗어나려는 사람들이다. 욕심보다는 본능에 가깝다. 나코리란 사람이 그랬다. 그는 대기업 전략기획실에서 일하던 사람이다. 느닷없이 휴직을 했다. 일이 힘들어서 그런가보다 했지만 착각이었다. 휴직자의 하루가 직장인보다 바빴다. 한 번에 전화 통화가 되는 일이 없었다. 늘 어딘가에서 무슨 강연인가를 하고 있던 참이었다. 아이들에게 독서 교육을 하는가 하면, 성인들에게 생산성 툴을 강의한다. 직장인들에게 워크플러위를 강의하고, 대학생들에게 엑셀을 가르친다. 그 중 압권은 다름아닌 '사람책'이었다. 평범한 사람들 너댓을 모아 주제를 정한 후 강연회를 열었다. 참가비는 커피 한 잔 값, 그런데도 벌써 네 번째를 맞는 이 행사에 사람들이 끝없이 모여든다. 호기심에 강연을 들으러 갔다가 다음 강연회의 연사가 되기도 했다. 그제서야 알았다. 얼마나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지. 그런 간절함이 모이는 곳은 뜨거울 수밖에 없었다. 강연에서 못들은 이야기는 뒷풀이에서 듣는다. 이제 나는 저도 모르게 깐부치킨의 열렬한 팬이 되었다. 강연이 아니라 치킨을 먹으러 간다. 사람 이야기를 들으러 간다. 그 폭발하는 에너지를 느끼고 싶어서 찾는다. 거부할 수 없는 그 페로몬의 중심에 나코리가 있다. 그는 이야기 덩어리다. 혼자 있기 좋아하는 내가 모임에 빠지지 않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액터정이란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 역시 대기업에서 교육 기획을 담당한다. 그런데 일하지 않는 날은 여행을 간다. 모임을 한다. 안주를 모르는 사람이다. 이 글의 연재도 바로 그녀 때문이다. 새벽 4시에 일어나는 리추얼의 희생양이 바로 지금 쓰고 있는 이 글들이다. 미라클 모닝 때문이다. 새벽 6시 전에 일어나 사진으로 인증하는 단톡방에 들어선 후 노예가 되었다. 즐거운 노예다. 견제와 경쟁이 반쯤은 섞인 의욕으로 새벽을 시작한다. 그녀의 제안 때문이다. 일주일에 한 번은 한 주를 리뷰한다. 그 주에 있었던 가장 특별한 10개의 기억을 꼼꼼히 기록한다. 삶이 풍성해졌다. 그러나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오지랖 넓은 그녀가 정부 지원 사업으로 따낸 북카페 투어에 사람들이 몰린다. 북쎄즈, 투데이북스, 맥심 플랜트, 스틸 북스... 그녀의 설계에 따라 찾은 북카페만 대여섯 개를 헤아린다. 이 모임은 언제나 몇 시간 안에 매진을 달린다. 그러나 이건 그녀의 삶을 구성하는 아주 작은 일부에 불과하다. 작년엔 호주의 섬을 다녀오더니 올해는 뜬금없이 몽골을 다녀왔다. 내년엔 스페인의 순례길을 다녀올거라 한다. 그녀는 이야기 보따리다. 영양이 과해 보이는 에너지바 한 덩어리다. 나코리와는 또 다른 페로몬을 사방에 뿌린다. 그런 그녀의 유쾌한 선동은 언제나 무죄다.
글을 쓰고 싶은 사람들이다. 책으로 옮겨보고 싶은 사람들이다. 매력이 넘치는 사람들이다. 건강한 페로몬을 뿌리는 사람들이다. 만일 이 글을 읽고도 그들을 만나보고 싶은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면, 더 깊은 이야기를 듣고 싶은 생각이 들이 않는다면 실패한 글이다. 내 역량 부족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사람들을 매일 같이 만나고 있다. '스몰 스텝'이란 책이 인연이 되었다. 앞서 말한 이들은 모두 그 모임의 운영진들이다. 공식적인 운영진만 9명에 달한다. 하지만 매력적인 이야기를 가진 사람들은 운영진에 그치지 않는다. 이 모두가 책 한 권 때문이다.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나 역시 저도 모르게 페로몬을 뿌리고 다녔음을. 유유상종이라 했다. 비슷한 사람들끼리는 모이게 마련이다. 에너지 넘치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나도 덩달아 흥분하기 시작했다. 유쾌한 흥분이다. 건강한 중독이다. 행복한 설렘이다. 나는 그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훔친다. 아름다운 절도 행위다. 의적을 넘어 행복한 도둑이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가 너무도 좋다. 그들은 아낌없이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그러면서 한 가지 공통점을 찾는다. 그들에겐 나름의 삶의 방식이 있다. 제품으로 따지자면 컨셉이고, 신문 기사로 치자면 '야마'이다. 브랜드로 치면 아이덴티티이며, 한 단어로 말하자면 매력이다. 우리를 잡아당기고 끌어당기는 페로몬의 정체다. 그들의 이야기가 책으로 팔린다면 셀링 포인트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책 한 권' 써보고 싶다는 사람을 자주 만난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의 매력을 찾는다. 시간을 내어 듣고 싶은 이야깃거리를 찾는다. 그럴 때면 나는 아주 독한 비평가가 된다. 잘 나가는 쇼핑몰의 점주가 된다. 어쩔 수 없는 직업병이다. 인격에 대한 평가와는 다르다. 그저 한 시간 떠들고 싶은 새로운 이야기에 굶주린 결과일 뿐이다. 그의 생각은 어떻게 다른가? 그 생각대로 살아온 결과는 무엇인가? 그 과정에 어떤 실패를 겪었는가? 그는 왜 그런 삶을 살아왔는가? 그 이야기에는 재미와 정보, 감동 중 어떤 것이 담겨 있는가. 그것이 내가 한 사람을 만났을 때 취하는 또 하나의 태도다. 그러나 안심하시라. 자신만의 이야기를 가지지 않은 사람은 세상에 없다. 매력의 정도가 다르거나 노출의 정도가 다를 뿐이다. 그런 마음으로 사람을 대한다. 아무리 자신은 평범하다고 우겨대도 믿지 않는다. '당신은 무언가 특별한 존재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려 한다. 그리고 대개는 내 생각이 맞았다. 그런 시선으로 사람을 바라보면 글감이 나타난다. 나는 신이 나서 집으로 돌아온다. 펜을 끄적이고 키보드를 두드린다. 그때부터는 그들이 아닌 나의 시간이다. 나의 펜 끝에서 그들은 또 다른 주인공으로 다시 태어난다.
최근엔 일주일에 세 번 클럽을 찾았던 사람을 만났다. 강남을 사랑했던, 클럽을 애정했던, 주말을 흠모했던 그의 필명은 다름아닌 '토욜'이었다. 토요일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아이디가 된 것이다. 머리숱이 살짝 부족한, 도톰한 볼살에 안경을 쓴 그가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그에 대해 써보고 싶어졌다. 너무나 클럽을 사랑한 나머지 학고를 받아야 했던, 그 결과 어쩔 수 없이 군대를 가야했던 그를 움직인 클럽의 매력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글쓰기 수업에서 만난 그의 글은 그렇게 언제나 재미있었고 매력적이었다. 때로는 감동이었다. 그런 경험은 지금의 그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궁금해진다. 좀이 쑤신다. 나는 원래 혼자가 좋던 사람이다. 금요일 밤을 기다렸다. 한 편의 미드로 만족하고 맥주 한 캔으로 행복했던 사람이다. 그러나 매력 넘치는 사람의 이야기를 만나며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그들의 흥분이 전이되는 순간의 전율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게으르고 안일했던 고정 관념이 판판이 깨지는 그 시점이 절정의 순간이다. 그래서 나는 사람을 만난다. 귀를 기울인다. 뜻밖의 매력을 발견한다. 글을 쓴다. 페로몬을 뿌린다. 그게 당신이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약속을 잡는다. 모임을 만든다. 그런 매력적인 당신의 페로몬에 가까이 가기 위해서다.
* '쓰닮쓰담', 평범한 사람들이 작가로 다시 태어나는 글쓰기 오프 모임입니다 :)
(참여코드: wri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