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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특별한 유년시절로의 여행 by 나성재

쓰닮쓰담 1기 - 첫 번째 이야기, 나에 대하여

일주일에 한 번 나는 탈 일상의 순간으로 들어간다. 강동아트센터에서 연극 연습을 한다. 오늘은 어린 시절의 욕망, 채워지지 않은 욕구를 표현하는 수업을 했다. 즉석에서 4개의 팀이 만들어졌다. 각 팀 별로 자신의 이야기를 2분씩 소개했다. 우리 팀에서는 내 이야기를 연극으로 만들기로 했다. 대본 스토리 2분, 연극 각색 및 연습 15분, 총 17분만에 짧은 연극이 만들어졌다. 그야말로 초스피드,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연극이 완성되었다. 원작자는 연극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는다. 다만 마지막 부분에 내레이션을 담당 하기로 했다. 내 이야기를 연극으로 한다니 설레기도 하고 기대도 된다.


어린시절 한동안 나는 부모님과 떨어져서 지냈다. 내가 7살 때 부모님은 6남매를 모두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맡기고 서울로 가셨다. 아이들을 잘 돌봐달라고 쌀 몇 섬을 건네고 떠나셨다. 자리 잡히면 곧 데리러 오겠다는 말과 함께. 얼마 되지 않은 남은 돈을 가지고 30대 후반의 부모님은 상경을 하셨다. 아이들을 맡겨 놓고 최후의 배수진을 친 것이다.


나는 명절에 부모님이 오시기를 기다렸다. 가로등이 없는 시골의 밤은 더 무거운 것일까! 초저녁부터 어둠이 더 짙고 낮게 내려앉았다. 방안에서 평소에는 맛볼 수 없는 고기 냄새와 구수한 잡채 냄새가 밖으로 퍼져 나왔다. 사촌들은 갓 부쳐 낸 따뜻한 전을 거침없이 집어서 맛있게 먹었다. 나는 차마 다가가지 못하고 처마 밑에 쭈볐거렸다. 집안에서 옹기종기 모인 친척들의 웃음소리가 어둠을 뚫고 더 멀리 흩어졌다. 나는 형, 누나들과 1시간에 한 번씩 오는 버스 정류장에서 목을 쭉 빼고 차오는 쪽을 바라보았다. 벌써 몇 번을 오고 갔는지 모른다. 정말 안 오시는 걸까? 방안에서 쏟아지는 가족들의 화기애애한 웃음소리가 나를 더욱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지쳐서 무너져 내린 몸으로 눈을 비빌 때 부모님이 오셨다.


1년 만에 만남이었다.


그동안 튼튼해진 내 갈비뼈를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 어머니가 나를 힘껏 껴안았다. 엄마의 품은 따뜻했다. 할아버지가 늦잠 잔다고 방 문짝을 뜯어서 마당에 쌓아놓고 불지른다고 고래고래 소리질렀던 일도 엄마에게 이야기 했다. 우리는 순 꽁보리밥만 주고, 가마솥 가운데 한 줌 쌀밥은 할아버지만 먹는다고 이르기도 했다. 왼손으로 밥 먹는 나를 보고 할아버지가 호로 상놈들이나 왼손으로 밥을 먹는다며 등 뒤로 내 왼팔을 돌려 옷핀으로 묶은 일도 얘기했다. 모내기가 한참일 때였다. 할아버지가 나에게 논에 가서 일손을 도우라고 했다. 논에 갔더니 작은 아버지가 너무 어려서 못하니 집에 가서 놀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집에 갔더니 할아버지가 왜 일 안하고 오냐며 벼락 같은 호통을 쳤다. 나는 집과 논 중간 언덕길에서 오도가도 못하고 울어버렸던 일을 엄마에게 이르다가 억울한 마음에 그만 엉엉 울고 말았다.


시간에도 속도가 제각각 인가! 이별은 순간은 빛처럼 다가왔다. 떨어지지 않으려는 나를 차마 어쩌지 못해 어머니는 하염없이 울기만 했다. 팬티 안주머니에 지폐 몇 장을 넣어주고 황급히 버스에 올라탔다. 맛있는 것 사먹고 할아버지 술값으로 뺏기지 말라는 당부와 함께. 버스는 뿌연 황토 먼지를 일으키며 숲 속으로 난 구불구불한 흙 길 속으로 사라졌다.


나의 이 스토리를 3명이 멋지게 간이 연극 무대에 올려주었다.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마지막 정지 장면에서 내가 내레이션을 했다.


성재야!

1년 반이라는 시간 동안,

엄마 아빠 없이 지내느라 힘들었지.

그래 힘들었을 거야.

7살, 한참 엄마의 손길이 필요했을 텐데.

하지만 산과 냇가에서

친구들과 신나게 놀았던

행복한 기억도 잊지 말자.

살아가다 보면 슬플 때도 있을 거야.

하지만 그 일이 항상 너를

힘들게만 하는 것은 아니야.

때론 쓴 약이 병을 고치는 것처럼 말이야.

너도 곧 알게 될 거야.

사랑한다. 성재야.


나는 무대에 올라가 7살 성재를 꼭 껴안아주었다. 연극을 보면서 엄마와 헤어진 슬픔에 빠져있는 성재에게 다른 이야기도 해주고 싶었다. 친구들과 마음껏 뛰놀던 행복한 기억이 있었다는 것을. 논과 할아버지 집 사이 샛길로 빠져 친구들과 신나게 놀 수도 있었다는 것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사랑스런 아이들을 남에 손에 맡기고 거대하고 낯선 도시에서 홀로 서 있었던 30대 후반 젊은 엄마의 마음을. 아이들을 하루빨리 데리고 오겠다며 거친 인생의 도전에 맞선 그 필사적인 심정을.


우리는 모두 인생에서 여러가지 경험을 한다. 어떤 경험을 할지는 알 수 없다. 신이 우리에게 필요한 경험을 준비했을 수도 있다. 아니면 그저 무작위로 다가올 수도 있다. 어떤 경험을 하더라도 중요한 것은 우리가 받아드리는 자세이다. 같은 경험을 하더라도 사람마다 느끼는 것이 다르다. 그 경험에 어떤 해석을 하느냐에 따라 우리는 다른 삶을 살게 된다.


나는 경험과 그에 얽힌 감정이 마치 두더지 게임 같다는 생각을 했다. 때리려면 굴 속으로 쏙 들어가 버리는 길거리의 재미있는 게임 말이다. 우리의 경험이 슬프고 두려운 감정일 때면 그것은 마치 두더지 굴처럼 우리를 그 속에 계속 가두어 놓으려고 한다. 밖으로 나가서 그 경험의 다른 측면을 보고 다르게 해석을 할라치면 어김없이 굴속으로 잡아 당긴다. 굴 속에 갇혀 오로지 그 감정에 빠져 있게 만든다.


나는 소심하다. 어쩌면 그때 처마 밑의 쭈뼛거렸던 기억이, 한동안 엄마와 떨어져 있었다는 상실감이, 할아버지의 호통과 불호령이 나를 계속 굴속으로 계속 잡아당기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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