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나의 알맹이 by 김지은

쓰닮쓰담 1기 - 첫 번째 이야기, 나에 대하여



서른 중반,
살아보고 싶은 지역으로 독립을 했다.

태어나고 자란 고향, 서울에서 난생처음 서쪽에 둥지를 틀었다.

가족도, 친구도, 지인도 없는 곳에서 집을 구하고, 일자리를 구했다.

이사하기 전 페인트와 시트지로 집에 그림을 그렸다.

벽을 깨끗이 바르고, 나뭇결 모양으로 꾸몄다.

베이지 톤으로 가구를 들이고, 따뜻한 빛으로 방안을 가득 채웠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와 닮아 있는 곳이 하나둘 늘어간다.

휴식이 필요한 날엔 특급 호텔로, 나른한 오후엔 아늑한 카페로, 집중해야 할 땐 조용한 도서관이 되어주었다.

피치 향으로 짙게 물들어간 방은 그렇게 내 일상에 안식처가 되어주었다.


핸드폰


아제르바이잔에서 용병 생활을 마치고 귀국해서 원시인 딱지를 떼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마침 아이폰 3세대가 출시되었고, 평소 전자기기에 박식한 친구가 추천해 주어서 바로 사게 되었다. 2010년, 나의 첫 세크리터뤼~ 를 고용했던 해이다.

만 3년이 되었을 때 기술이 업그레이드된 경력자로 전환시켰다. 역시나 만 3년이 되었을 때 즈음 예상치 못한 방전으로 인수인계 없이 지금에 매니저로 급! 교체되었다.
금수강산이 한 번 변하는 동안 이 똑똑한 녀석과 함께 여행하며 가슴 뛰는 추억을 담아냈다. 우울하거나 힘든 일이 있을 때는 음악으로 위로해 주었고, 길을 잃었을 때는 나침반이 되어 주었다.

기억력이 그다지 좋지 않은 나 대신 하나부터 열까지 기록해 주었고, 멀리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언제든지 들을 수 있게 해 주었다.

장소를 가리지 않고 배울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주었고, 복잡한 머릿속을 비워 낼 수 있게 노트와 영상 스튜디오가 되어 주었다.

깔끔하게 일 잘하고 24시간 언제 어디서든 문제를 해결해 주는 고마운 파트너이자 벗.

이름 참 잘 지었다. ‘스마트 폰.’




“읽고 또 읽고, 앞으로 가서 다시 읽고, 졸다가 깨서 읽고...”
그렇게 난독증 아닌 난독증이 있던 나는 매일 책을 들고(?) 다닌 지 6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숙독’ 하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지난 6년 동안 내가 찾은 책들은 타임머신을 타고 세상에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게 해 주었고, 선인들에 지혜를 생생히 보여 주었다.

호기심이 넘치고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았던 나.

재밌는 이야기로 지루할 틈 없이 웃었고, 식상함으로 굳어 버린 생각을 깨부수어 진짜 겸손과 순수한 행복을 새로이 알려 주었다.

어디에서도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명쾌한 대답으로 열이 나면 해열제로, 불이 나면 해독제로 아픔을 낫게 해 주었다. 

책은 이제 나에게 세상에서 가장 매력적인 사치이고 섹시한 자극제며 완전한 즐거움이자 평생에 단짝이 되었다.


운동


땀을 흘린다는 것.
물리적인 한계를 극복해 낸다는 것.
척추를 바로 세운다는 것.

이렇듯 운동이란 내가 얻는 모든 것을 위한 합당한 지급에 의미이고, 인내해내겠다는 실천이며, 나에 선택에 책임과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지이다.
여자아이들이 소꿉놀이할 때 우상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군 모자를 쓰고 장난감 장총을 가지고 폼을 잡았다.

초딩들이 쉬는 시간에 공기놀이할 때 흙먼지 날리면서 발재간을 부렸고, 운동회 상품과 상을 싹 쓸었다.

학창 시절 10년 동안 펜이 아닌 하키채를 잡았고, 사회에 나와서는 정장이 아닌 유니폼을 입었다.

평생 달리다 보니 태극 마크도 달아 보고, 평생 공부만 하다가 급하게 운동화를 산 사람들에게 부러움을 한 몸에 받기도 했다.

사람을 제외하고 친한 물건들이 몇 가지 있는데 그 중 열 손가락에 꼽히는 것이 공과 라켓이다.

부모님이 물려주신 움직임 쪽으로 발달한 뇌와 뛰어난 신체 능력, 사랑 듬뿍 넣어 만들어 주신 건강한 음식을 먹으며 자란 덕분에 마음껏, 마음대로 뛰어놀 수 있었다. (부모님의 노고에 깊이 감사드린다.)
100세 시대, 노후 대비 필수 아이템을 하나만 꼽으라면 단연 건강이다. 숫자가 늘어날수록 타고, 물장구치고, 달리고, 치면서 땀 흘리기를 더 열심히 해야 하는 이유이다.


먹거리


세상은 넓고 맛은 경이롭다.


 맛에 향연
 맛에 깊이
 맛에 새로움
 맛에 행복
 맛에 조화


맛을 잘 표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맛은 그 나라의 문화이고, 사람들에 정서가 담겨 있다.

무엇을 즐겨 먹는지, 누구와 함께 먹는지, 식사하는 시간은 얼마나 걸리는지, 매년 같은 시기에 먹는 음식은 무엇인지, 음식을 만드는 방법에는 어떤 이유가 있는 건지, 전통 음식에 관한 이야기가 듣고 싶다.

하루하루 목숨을 연명하기 위한 에너지원 따위로 치부되는 재료가 아닌 오감을 깨워주는 즐거움이 되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나에게 이름을 선물하다: Re:Bom by 이보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