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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답게 살고 싶어하는 당신에게

무려 100쇄를 찍은 에세이 작가를 만났다. 꼭 한 번 만나고 싶었던 작가다. 새벽 3시의 감성이 물씬 풍기는 그는 수십 만의 팬을 거느린 페이스북 운영자이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성실히 직장을 다닌다. 9월의 태풍이 거리를 휩쓸고 간 선릉역의 별다방에서 그를 만났다. 누군가에게는 로망이고 다른 어떤 이에게는 선망의 대상일 그가 대뜸 내게 이렇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스몰스텝 모임과 같은 팬덤을 만들 수 있을까요?"


갑자기 머릿속이 하얘져왔다. 이게 고작 4쇄를 찍은 책의 저자에게 할 질문인가 싶었다. 질문을 하러 간 자리가 대답을 하는 자리가 되어버렸다. 자랑 보다는 변명에 가까웠다. 없는 얘기를 지어내서 할 순 없었다. 첫 책을 낸 후 출간 강연회를 했다. 출판사 차원의 홍보는 그 뿐이었다. 어떻게든 사람들에게 책을 알리고 싶다는 일념으로 온오프믹스에 무료 특강 광고를 냈다. 5명이 신청을 했다. 심지어 특강 당일엔 비가 왔다. 어설픈 모임 안내로 한 분은 화가 난 채 강연에 참석했다. 그 5명이 이 모든 이야기의 시작이 됐다.



"그 중 계속 만나는 분은 몇 분이나 계시나요?"


대답하는데 1초도 걸리지 않았다. 단 한 명을 빼고 꾸준히 만나고 있다. 그 중 2분은 운영진으로, 한 분은 스몰 스텝  단톡방의 방장으로 활약?하고 있다. 그 6명이 몇 달 후 스무 명이 되었다. 그리고 서른 명이 되더니 1주년 정기 모임 때는 6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자리를 채워주었다. 온라인 단톡방은 500명에 가깝다. 개성 넘치는 단톡방이 스무 개 가까이 운영되는 중이다. 이 모임을 유지하기 위한 9명의 운영진이 따로 모였다. 그들의 칭찬과 격려가 사람 하나를 살렸다. 물론 늘 좋은 이야기만 오가는 것은 아니다. 오해도 많았고 불행한 일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만나고 있다. 운영진이 모이는 단톡방에는 특별한 주문이 하나 있다. 무슨 말이든 할 수 있다는 뜻의 이 주문은 바로 '운방이니까'이다. 100쇄 작가의 질문은 쉬지 않고 계속되었다. 진땀이 났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지만 여전히 불안합니다. 언제 흩어질지 모르는 온라인의 팬덤보다는 오프라인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요. 어떻게 하면 그런 모임을 만들 수 있을까요?"


솔직하게 답했다. 그런 모임을 만들려 애써 본적이 없었다. 5명의 참석자가 스무 명이 되기까지는 반 년의 시간이 걸렸다. 때로는 내가 나가기 싫을 때도 있었다. 주말 오후의 황금 시간은 언제나 하고 싶은 일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렵게 어렵게 모임을 나가면 또 한 번 환기가 되었다. 각양 각색의 사람이 모여 같은 주제로 이야기는 모임, 그 자체로 좋았다. 그러던 어느 날 이상한 사람들이 합류하기 시작했다. 내 책을 칭찬해주었다. 나를 지지해주었다. 함께 모인 모임에 열정적으로 참여해주었다. 그때는 그 이유를 잘 알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조금 알 것 같기도 하다.



"단톡방의 500명을 모두 만족시키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대신  9명의 운영진에 집중하려고 했어요. 감정평가사, 사진작가, 학원 원장님, 영어 강사, 대기업 직원까지... 개성 넘치는 이 분들을 돕고 세우는 데 집중했어요. 그들에 대해 글을 쓰고, 그들만의 모임을 만들고, 그들의 의지대로 활동할 수 있도록 응원했습니다. 제가 한 건 그게 전부입니다."


이 말은 진심이었다. 1주년 모임 때 내가 한 일이라고는 10분 간의 모임 소개가 전부였다. 모임의 기획과 진행 모두를 9명의 운영진이 자기 일처럼 도맡아 주었다. 간식 준비와 장소 안내, 모임 기획과 진행, 뒷풀이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한 몸처럼 움직이는 작은 기적이 일어났다. 그날은 축제였다. 신이 났다. 행사를 마치고 난 후의 뿌듯함의 우리의 유산이 되었다. 아주 작은 결정도 운영진의 동의를 얻었다. 만장일치까지는 아니어도 다수의 합의가 없으면 어떤 일도 진행하지 않았다. 9명의 운영진을 존중했다. 그들을 잃는 것은 전부를 잃는 것과 같았다. 다행히도 진심은 통했다. 여러가지 오해와 궂은 일들을 지나며 운영진 모임은 더욱 단단해졌다.


"책을 쓰기로 했어요. 가능하면 공저로 쓰고 싶었어요. 계약금도 인세도 모임을 위해 쓰기로 했죠. 함께 하는 즐거움을 나누고 싶었어요. 그들이 빛나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들이 주인공이 되었으면 했어요. 그들의 브랜딩을 돕고 싶었습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도 따라 올거라 믿었어요."



브런치를 통해 운영진의 이야기를 글로 연재했다. 10여 개의 짧은 글은 대단한 반응을 얻었다. 거의 모든 글이 수백 명에게 공유되고 수 만명의 사람들에게 읽혔다. 매일 두 쪽의 책을 읽는 석헌님에 관한 글은 800명 이상에게 공유되었고 1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읽었다. 순식간에 그만의 팬덤이 만들어졌다. 책을 함께 만들고 싶다는 꿈도 현실이 되었다. 공저는 아니지만 우리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쓰기로 한 것이다. 내가 잘 하는 일로, 아끼는 사람들을 세우고 빛나게 할 수 있다는 나의 꿈이 열매를 맺고 있었다. 의도하지는 않았으나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었다. 그가 진지한 얼굴로 다시 내게 물었다.


"100쇄의 책을 찍은 저지만, 솔직히 내가 누군지 잘 모르겠네요. 작가님은 어떠신가요?"


처음의 혼란은 가중되었다. 누구보다도 감성적인 글로 사람들과 소통해온 그가 내게 팬덤을 말하고 있다니. 4쇄 작가를 부러워하고 있다니. 겸손도 어느 정도지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는 진심이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조언은 달리 없었다. 나와 그는 다르다. 나에게 나의 방법이 있고 그에겐 그의 방법이 있을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한 가지였다. 내가 살아온 방식이었다. 늘 입버릇처럼 하고 다니던 말이었다.


"10년 이상 브랜드를 고민했어요. 글을 쓰고 컨설팅을 하면서 회의에 빠질 때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사실은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어요. 모든 성공한 개인과 기업은 '자기답게' 살고 있다는 겁니다. 저는 글을 쓸 때 가장 저답다고 생각해요. 어떤 모임엘 가도, 어느 누구를 만나도 새로운 '글감'으로 그들을 대하면 흥분되곤 합니다. 저 멋진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싶다는 열망에 빠지곤 해요. 오늘의 만남도 내일 새벽엔 한 편으로 글로 옮겨 쓸 수 있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신이 납니다. 작가님은 자신을 '누구'로 소개하고 싶으신가요? 어떻게 기억되고 싶으신가요? 어떤 일을 할 때 가장 흥분되고 보람을 느끼시나요?"


우리는 다시 만나기로 했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글로 옮겨보기로 했다. 그는 내게 베스트셀러 작가로서의 자신의 지식을 모두 전해주겠다고 했다.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나는 이미 다음 날 새벽에 쓸 이 날의 경험과 이야기를 고민하고 있었다.





* 이 멋진 운영진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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