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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를 기울이면...

나의 아버지는 가난했다. 그에 비해 친척들은 상대적으로 부유한 편이었다. 사람 좋은 아버지는, 그럼에도 시제가 있는 날이면 반드시 나를 그곳에 데리고 갔다. 그때마다 병원을 하시는 큰 아버지 자랑을 그렇게 했다. 때로는 굽신거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특별히 도움 받은 것도 없는데 그렇게 고마워하시는 아버지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중에 나이가 들어 그 병원엘 가보니 이미 폐업한 상태였다. 조금 큰 2층 집 만한 병원은 실제로는 작은 의원이었다. 도시의 병원에 익숙한 나로써는 마치 어린 시절의 신화 하나가 산산히 깨지는 느낌이었다. 이제 혼자가 된 나는 더 이상 시제를 가지 않는다. 1년 내내 연락 한 번 하지 않고, 가봐야 수십 년간 데면데면한 사이로 겉돌기만 하는 모임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서다. 대신 벌초비는 꼬박꼬박 챙겨 내고 있다. 아마 앞으로도 그 모임에 가는 일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



작은 아버지가 암으로 병원에 입원해 계실 때 였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병실로 들어오더니 그 중 유일한 양복 입은 남자 한 분이 다짜고짜 작은 아버지를 나무라기 시작했다. 예수 믿지 않아서 큰 병에 걸린 것이니 앞으로 교회에 나오라는 명령조의 꾸지람이 쉴 새 없이 이어졌다. 나도 교회를 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아픈 몸을 억지로 세워 앞니 빠진 초라한 모습으로 그 모든 말을 받아내고 있는 작은 아버지가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 없었다. 마치 암탉 무리를 끌고 다니는 수탉의 모습을 한 그 때의 그 목사의 얼굴을 잊을 수가 없다. 얼굴엔 기름이 흘렀고 임산부만한 배는 설교 내내 출렁거렸다. 뒤 따르는 한 무리의 여자 집사님들은 말끝마다 '아멘'을 외쳤다. 예수님의 조건없는 사랑은 털 끝 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다.



우리는 오랫동안 가족과 가문의 시대를 살았다. 그 안에서 수많은 위로와 격려와 염려와 걱정이 오고 갔다. 그 모임에서 빠지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었다. 실제로 시제에 나오지 않는 작은 아버지를 어른들은 모일 때마다 '호로자식'이라며 욕했다. 어떤 사정이 있는지, 무슨 어려움을 겪는지도 모르는채 단지 그 모임에 나오지 않은 사실만으로도 천하에 둘도 없는 나쁜 인간이 되는 사회이기도 했다. 그 자리를 대신한게 교회였다. 내 젊은 시절의 8할은 교회와 교회 친구들로 채워져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이유 없는 지지와 사랑'을 받았다. 내 삶의 반환점이 바로 거기서 시작됐다. 그러던 내가 지금은 새로운 교회를 찾아다니고 있다. 이전에 다니던 교회는 공중 기도 시간에 정치적 관점이 다른 한 쪽 편을 비난하고 있었다. 아이들 점심을 챙겨주려다 교회일도 안하며 밥만 챙겨 먹는다는 눈치를 받기도 했다. 댓가 없는 사랑이 사라지고 은연중에 정치 세력화한 교회에 더 이상 머물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모임과 공동체는 사람에게 있어 본능이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 가문과 교회를 떠난 사람들은 어디서 그 필요를 채우고 있을까. 나는 그 대안을 다양한 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독서 모임이 그 곳이다. 취미에 기반한 모임은 또 얼마나 많은가. 카카오톡 단톡방 사용자의 절반 이상은 동호회 때문일 것이라 확신한다. 심지어 최근에는 코워크(Cowork)가 아닌 코리빙(Coliving) 브랜드로부터 '스몰 스텝'에 관한 강의 의뢰를 받기도 했다. 글쓰기 교실은 또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고 쓰고 싶어한다. 소통과 교감에 관한 필요와 니즈는 인간에게 왜 그토록 절실한 것이어야 할까. 본능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는, 유전자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는 이해할 수가 없는 대목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가문도, 교회도 채워주지 못한 함께 함의 위로와 격려를 '스몰 스텝' 모임을 통해 얻고 있는 중이다. 스몰 스텝에 관한 책 한 권이 빌미가 되어 비슷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로부터 형언할 수 없는 사랑과 격려와 지지와 위로를 얻을 수 있었다. 나는 이 모임을 내 인생의 가장 큰 축복이라 감히 말할 수 있다.



얼마 전 나는 작은 프로젝트를 하나 시작했다. 스몰 스텝 모임에 계신 분들의 이야기를 직접 찾아가 듣고 글로 옮기는 'I Listen to You'라는 이름의 미니 자서전 시리즈를 기획한 것이다. 아이디어는 간단하다. 내가 가장 잘 하는 글쓰기로 스몰 스테퍼들을 격려하는 프로젝트를 하나 하고 싶었다. 이미 운영진을 포함한 10여 분의 이야기를 브런치에 소개해 폭발적인 반응을 얻은 적이 있었다. 나는 이렇게 작고 평범한 이야기를 전하는 작업이 말할 수 없이 즐겁다. 그들의 소박하지만 감동적인 이야기를 부족하나마 나의 글솜씨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것이다. 누구에게나 이야기는 있다. 꼭 유명하고 대단한 사람의 이야기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한 권의 책이다. 평범함 속에 깃든 작은 비범함이 더 큰 공감과 위로를 줄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때가 되면 이들이 이야기를 또 한 권의 책으로 펴내보려고 한다. 네버엔딩 스토리다. 내가 이 땅에 태어난 것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이유 중 하나를 발견하는 나는 지금 한없이 기쁘다. 그것이 내가 그토록 반복해서 말해온 '나다운' 삶임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한 미니 자서전, 'I Listen to You' 신청하기

http://bit.ly/2NamhM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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