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부로 애틋하게, 엄마와의 집밥

간만의 부산 출장으로 찾은 엄마집, 3시간의 인터뷰를 마치고 찾아든 허기에 조금 일찍 저녁을 먹었다. 솔솔 풍기는 불고기 냄새에 다이어트는 무장 해제. 순식간에 두 그릇을 비운 나는 엄마와 함께 삼시세끼를 보고 있었다. 이서진과 차승원이 사라진 자리를 염정아와 윤세아의 수다가 열심히 화면을 메운다. 그날 저녁은 만두 전골인가 보다. 박소담이 한참을 치댄 동글동글 만두 반죽을 보던 엄마가 이렇게 말했다.


"저거 니 닮았다"


불의의 일격을 당한 나는 말 없이 복숭아를 먹었다. 두 개중 하나는 식감이 인절미 같았다. 쫀득쫀득하다. 나머지 하나는 물이 가득한게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이게 맛있네. 그러면서 생각해본다. 도대체 뭐가 닮았다는거야? 내 얼굴? 아니면 내 배? 포만감에 빈둥거리던 나는 아주 일찍 잠이 든다. 늘 보시던 드라마를 함께 볼 용기가 없다. 가뜩이나 새벽형 인간이 된 요즘엔 9시면 졸음이 올려온다. 그런데 8시도 되기 전에 잠이 들어버렸다. 편해서 그럴 것이다. 그냥 집이니까.


나는 오랫동안 할머니 손에 자랐다. 같은 집에 살지만 할머니 품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 그래서 엄마의 존재가 묘하게 데면데면할 때가 있다. 가뜩이나 말이 없는 나는 엄마 집에 와서도 벙어리가 된다. 뭐라도 말해야 될 때쯤에서 이렇게 한 마디 뱉는다.


"엄마, 밥은?"

"복숭아 맛있네"

"동생은 왔다 갔고?"


하지만 그런 나도 자식은 자식인 모양이다. 내가 먹는 속도에 엄마도 덩달아 보조를 맞춘다. 몇 개의 반찬 중 두 개는 사온 것이라 한다. 그러면 그렇지. 엄마 음식 솜씨를 내가 아는데. 아들이 와서 저녁을 먹는 것일 뿐인데, 묘하게 달뜬 엄마의 모습을 묵묵히 바라본다. 이상하게 신이 난 엄마가 바퀴벌레 한 마리를 기어이 손으로 잡아낸다. 애꿎은 벌레 한 마리가 제 명에 못살고 비명횡사한다.


"그래도 마누라 밥이 맛있는갑지? 살 좀 빼라. 아프기 전에"


이렇게 말하는 엄마의 팔뚝을 힐끗 살핀다. 최근에 폐암 수술을 받으신 엄마가 몰라보게 수척해졌다. 엄마 얼굴도 많이 달라졌다. 정면으로 바라보면 미안해진다. 애들이 크는 만큼 엄마는 빨리 늙는다. 그래도 내가 해드릴 수 있는게 별로 없다. 이렇게 와서 집밥이나 먹고 가는 것도 효도라면 효도일까? 아들 둘에 딸 하나인데, 효자는 아니어도 제 몫들은 하고 있는데, 그래도 엄마의 좁은 집은 좀처럼 쉽게 채워지지 않는다.


"내일 언제 가노?"


"새벽에 가야지"


"밥은 묵고 가나?"


"밥은 묵고 가야지"


밥은 먹고 갈 것이다. 11시 반 미팅 때문에 서둘러야 하지만, 그래도 엄마가 차려준 밥은 먹고 갈 것이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함부로 대할 수 있는 사람, 그러면서도 언제나 애틋한 이름. 나는 오늘도 엄마의 집밥을 먹고 서울로 올라갈 것이다. 이 좁은 집은 다시 텅 비게 되겠지. 함부로 애틋하게 텅 비어 있겠지. 다음 주에도 오겠다는 말은 굳이 하지 않기로 했다. 약속이 또 어찌될지 모르는데 실망하실까봐서다. 그러나 웬만하면 내려와 또 집밥을 먹을 것이다. 여전히 나는 말없이 밥이나 축내고 가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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