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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의 맛

그야말로 빵빵 터졌다. 무슨 말만 하면 50여 명의 사람들이 쉴새 없이 자지러졌다. 적지 않은 강연을 다녔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약속한 듯 내 책을 들고 나타난 것도 신기했다. 덩달아 나도 신이 났다. 강연은 전원이 참석한 사인회와 기념 촬영까지 마치고서야  겨우 끝이 났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 굳이 역까지 태워주겠다고 나타난 분의 차는 생소한 외제차였다. 나를 태운 그분이 다음과 같이 말하고 난 후에야 비로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을 수 있었다.


"저희는 흔히들 말하는 다단계가 아니라 다이렉트 판매를 하는..."


아, 그랬구나! 이 모든 사태가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한 때 친구들 거의 모두가 다단계에 빠져 홍역을 치룬 적이 있었다. 땀 흘리지 않는 노동은 반드시 댓가를 치러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였다. 하지만 예의를 갖추고 차에서 내린 그 날 말고도 그들은 기어이 무리를 지어 다시 찾아왔다. 이 모든 과정들이 계획된 프로세스의 한 과정이라고 생각하니 뒷맛이 씁쓸했다. 그 모든 리액션과 뜨거운 강연장의 열기, 연예인이 된 것 같았던 팬 사인회와 꽃다발까지... 칼같이 내 의사를 밝히고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책이 나온 지 일년 반, 얼추 수십 번의 강연을 다니며 내공이 길러졌다. 그 중 압권은 해군 함대에서 있었던 30분짜리 짧은 강연이었다. 모니터가 연결이 되지 않았다. 보안 때문에 USB도 쓸 수 없었다. 갖은 방법을 다 써보았지만 연결에 실패하고 그대로 무대?에 섰다. 행사 차 면회 온 가족들 사이의 앳된 군인들 중 몇 명은 강연이 시작되기도 전에 졸고 있었다. 머리가 하얘졌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기억하고 있었던 군번까지 떠오르지 않았다. 아이스브레이킹을 위한 첫 시도가 도리어 나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식은 땀이 흘렀다. 하지만 오래도록 반복된 강연으로 인해 이야기의 실마리가 하나 둘 풀리기 시작했다. 어떤 환경에서도 강연을 할 수 있다는 확신을 그 때 얻었다. 돌아오는 길, 담당자의 얼굴은 밝았다.



약 600여 명의 청중 앞에서 강연을 한 적도 있었다. 강연 시작 직전까지 아무도 참석하지 않는 강연도 있었다. 연수를 온 3년차 선생님들은 강연 시작 전부터 졸았다. 신입 교장 선생님들을 상대로 한 강의는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다. 사장님이 주도해서 만들어진 강의는 냉소적인 직원들 때문에 힘들었다. 반면 대부분의 독서 모임은 언제나 보람 있었다. 그 날 강연의 반응은 내 컨디션에 의해 좌우되지 않았다. 내 강연을 듣는 사람들에 의해 반응이 판가름 났다. 그래서 요즘은 강연 전 한 사람 한 사람을 찾아가 너스레를 떨기도 한다. 1 대 다의 싸움?이 시작되기 전, 1 대 1의 대화를 통해 분위기를 선점하기 위해서다. 강연의 뒷맛을 결정하는 디테일을 고려하기 시작한 건 다른 그 무엇도 아닌 오랜 경험들 덕분이었다.



강연은 언제나 부담스럽다. 마치 판도라의 상자와 같다. 두껑을 열기 전까지는 어떤 결과를 낳을지 전혀 예측할 수가 없다. 하지만 한 가지 사실은 분명하다. 내가 하고 싶은 말과, 그들이 듣고 싶어하는 말의 접점을 찾아야 한다. 강연장에 오르면 적어도 100명 정도는 한 눈에 들어오게 마련이다. 그들의 눈빛과 표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들과 소통해야 한다. 유머는 도구일 뿐이다. 가장 큰 힘은 진정성이다. 스몰 스텝이 가진 힘은 '내가 해본 것'을 말한다는 당당함이다. 사람들은 기가 막히게 그것을 알아챈다. 그곳에서부터 불꽃이 튄다. 교감이 일어난다. 소통이 이루어진다. 물론 가장 무표정했던 누군가가 정말로 잘 들었다고 진심어린 피드백을 줄 때도 있다. 그러나 많은 경우 그들의 표정에서 읽을 수 있다. 내가 하고 싶은 얘기와 그들이 듣고 싶어하는 어딘가의 거기, 내가 강연을 통해 간절히 닿고 싶은 바로 그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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