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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라는, 사람책을 읽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죽음에 초연한 그를 축제처럼 보내드렸다. 그 뒤를 이어 강아지가 죽었다. 8년 동안 가족처럼 지내던 강아지였다. 갑자기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 암 재발을 선고받은지 19일 만의 일이었다. 그리고 상담을 받던 수강생마저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삶은 완전히 무너졌다. 이보다 더 힘들 수 있을까 싶을 때마다 바닥이 무너지는 경험이었다. 그렇게 2년 동안 5번의 죽음을 맞딱뜨려야 했다. 조용한 고백이었지만 마음이 먹먹한 이야기였다. 우리는 마치 한 권의 책을 읽는 듯한 마음으로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쓰닮쓰담이라는 글쓰기 모임의 평일반, 첫 번째 시간이었다.



첫 번째 과제는 '자서전'이었다. 정해진 양식에 따라 빈 칸을 채우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막상 그 칸을 채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나에게 가장 소중했던 친구, 멘토, 내 삶에 찾아왔던 고통스러운 순간, 인생의 좌우명... 그렇게 14개의 질문에 답하는 동안 '나'라는 존재를 진지하게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되묻게 된다. 나는 지금까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가. 나를 움직이는 힘은 무엇인가. 내게서 에너지를 빼앗아가는 존재는 누구인가.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나같이 묵직한 질문이다. 그래도 답해야 한다. 내가 누구인지 알기 위해서. 그런데 타인의 진솔한 이야기가 부싯돌이 된다. 아, 저 사람은 나랑 이래서 비슷하구나. 나와 같은 상황인데 저렇게 다르게 반응했구나. 그런 깨달음이 막연했던 내 답들에 한 줄기 빛이 되어준다. 다섯 번의 죽음 앞에서 자신을 지킬 수 있었던 J님의 이야기가 우리의 마음을 움직인 건 그 때문이었다.


많은 이들이 '나답게' 살기를 원한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아는 사람들은 의외로 많지 않다. 지난 10년 간 같은 주제로 고민해온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지금은 답할 수 있다. 나답게 살기 위해선 우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매일 세 줄의 일기를 썼다. 거기에는 내게 힘을 주는 것들, 내게서 힘을 빼앗가는 것들이 리스트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나는 글을 쓸 때 힘을 얻는 사람이었다. 강연으로 사람들과 소통할 때 비로소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글쓰기 과정을 열었다. 어설프게 시작했던 1기 모임에서 보석처럼 빛나는 사람들을 만났다. 난독증으로 읽기도 힘들어했던 L님이 연달아 멋진 글들을 써낼 때면 탄성이 터져나왔다. 그때 나 역시 가장 나다워지고 있었다. 쓰닮쓰담은 사람을 글로, 책으로 만나는 곳이었다. 이보다 더 진솔할 수 없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1기 멤버 대부분이 2기로 이어졌다. 할 수 없이 2기 평일반을 새로이 만들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다시 '사람'이라는 책을 만나고 있다. 어제가 바로 그 첫 시간이었다.



N님은 아침에 의자를 만들다가 오후엔 커피를 내릴 수 있는 포트폴리오 인생을 원한다. 그에게 호기심이라는 드라이빙 포스(Drivig Force)가 있다. 그를 움직이는 이 힘은 다양한 취미로 이어졌다. 바쁜 직장 생활 가운데서도 타로를 배우고 사진을 배우고 강연을 한다. 지금은 대기업을 휴직하며 열심히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중이다. 그는 한 마디로 경험주의자이다. L님은 아무런 편견 없이 자신을 도우려 했던 독일인 친구를 기억했다. 누군가의 작은 도움이 어떻게 한 사람을 살릴 수 있는지를 배우는 순간이었다. 어떻게 하면 상처나 배신 없이 타인을 도울 수 있을까? 그녀를 움직이는 힘은 바로 이런 질문에서 시작하고 있었다. S님은 운동을 통해 아이들을  가르친다. 한 쪽 귀가 잘 들리지 않는 불편함이 특수 교육의 길로 그를 이끌었다. 그는 돈보다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해야 행복하다고 믿는다. 아이들을 가르치고 사람들을 연결하는 삶이 그를 움직이는 가장 큰 동력이다.


3시간이 모자랐다. 나머지 이야기는 글로 쓰기로 했다. 모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이야기는 이어졌다. 조용한 줄로만 알았던 K님은 행글라이더 타던 이야기를 했었다. 적당한 기류를 만나면 새도 행글라이더도 하늘에 떠 있을 수 있다. 그렇게 자연과 하나가 되는 순간, 그 하늘을 내려오기 싫어서 난기류에 구토를 하면서도 하늘을 날았다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떤 이야기를 글로 쓰고 싶냐고 다시 물었다. 유기견 보호소에서 만난 주먹 만한 강아지를 떠나보낸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했다. 오직 새끼를 낳기 위해 길러지다가 뒷다리가 퇴화된 강아지, 그 이야기를 다시 할 때는 K님의 눈가가 촉촉히 젖어 있었다. 이 사람을 움직이는 힘을 발견하는 순간이었다. 드 넓은 하늘과 강아지, 자연과의 교감이 그녀를 움직이는 힘이었다. 그녀는 지금도 그런 삶을 살고 있을까?



아침에 읽은 이오덕 선생님의 이야기가 문득 떠올랐다. 아이들은 글쓰기를 통해서 자신을 발견하는 기쁨을 얻는다고 했다. 그리고 그런 글은 위안으로 이어진다고 했다. 마냥 철 없을 것 같은 아이들도 글을 통해 자기를 알아갈 수 있다는 말이다. 하물며 어른들은 어떻겠는가. 우리는 절대로 우리답게 살아야 한다. 다른 누군가와의 비교나 경쟁이 아닌, 세상에 단 하나뿐인 유일무이한 존재로서의 삶을 살 수 있어야 한다. 나는 그것이 우리에게 삶을 허락한 누군가를 향한 예의라고 믿는다. 그러니 한 시간의 삶도 허투로 살 수 없다. 그러니 이제 나를 알아야 한다. 나를 발견해야 한다. 나를 움직이는 힘(가치)을 따라 살아갈 때 우리의 삶은 비로소 나다운 것으로 변화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그 도구로 '사람책'을 만나고 있다. 다음 모임 땐 또 어떤 책을 만날 수 있을까. 부디 나만의 기대가 아니길 간절히 바래본다. 적어도 그 날의 나는 나답게 살고 있었다.





* 저희와 함께 글을 쓰며 자기운 삶을 발견하고 싶으시다면... :)

(참여코드: wr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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