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체르노빌이 알려준 스토리 텔링의 첫 번째 공식

어느 젊은 소방관 부부가 있다. 아내는 임신 중이다. 어느 날 새벽, 입덧 때문에 잠에서 깬 와이프가 화장실에 나와 잠든 남편을 넌지시 바라보고 거실로 나올 때였다. 한 줄기 섬광이 비친다. 그리고 커다란 폭발, 이어지는 거대한 폭발음과 진동, 잠에서 깬 소방관 남편은 아내의 이름을 부르며 방을 뛰쳐나온다. 그리고 두 사람은 창 밖의 풍경을 아연실색하며 바라보고 있다. 체르노빌 사고의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가장 먼저 사고 현장으로 출동하는 남편, 그리고 임신한 아내, 출산까지. 원전의 위험에 대한 어떤 공포보다도 현실적인 비극이 이들 젊은 부부 앞에 거대한 산처럼 놓인다.


올해 미드 중 최고의 작품은 역시나 '체르노빌' 아닐까. 용두사미로 끝난 '왕좌의 게임'을 대신해 HBO라는 전통의 제작사를 살린 뜻밖의 역작이었다. 가공의 스토리가 아닌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을 복기했을 뿐인데도 엄청난 흡입력이 있었다. 하지만 스토리의 관점에서도 이 미드는 연구의 가치가 있다. 화려한 배우나 스펙터클한 액션 장면에 기댄 미드가 아니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내가 드라마의 스토리 작가라면 이 비극적인 사건을 어떻게 풀어갈까. 어떤 이야기를 어디에 배치할까. 어떤 순서로 원전 사고의 진실에 다가갈 수 있을까. 나는 그중에서도 첫 장면에 주목했다. 이 방대한 이야기의 첫 시작을 어떻게 풀어냈을지가 너무도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이 미드를 미리 보신 분이 있다면 의아할지도 모르겠다. 사실 이 미드의 진짜 시작은 어느 노인의 독백으로 시작한다. 체르노빌의 비밀을 담은 녹음테이프를 외부로 전달하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 장면은 프롤로그, 인트로에 가깝다. 체르노빌의 진짜 이야기는 누가 봐도 이 젊은 소방관 부부에게 일어난 어느 새벽의 기록이다. 임신한 부부, 평온한 새벽, 하나의 섬광, 거대한 폭발, 이어지는 화재, 화재 진압 현장으로 떠나는 소방관 그리고 이어지는 참혹한 현장의 모습들... 이 매력적인 이야기의 시작은 이렇게 '그날'로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이 플롯은 특히 미드에 있어 새로운 것이 아니다. 최근에 재미있게 보고 있는 '내가 사랑한 남자들에게'도 같은 구성을 따른다. 사랑했지만 고백하지 못한 남자들에게 써놓은 연애편지들. 이 편지를 동생이 실제로 부쳐버리는 작은 '사고'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굳이 문장 형식으로 보자면 '두괄식'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많은 이들이 글을 쓸 때 자신의 관점에서 사건을 서술한다. 자서전을 쓰라고 하면 어릴 적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글은 '읽히기' 위해 존재하는 법이다. 좋은 글은 계속 읽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만든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와 그들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의 접점, 바로 그 지점에서 좋은 글, 읽고 싶은 글, 감동적인 글이 시작되기 마련이다. 누가 나에게 자서전을 쓰라고 하면 나는 내 생애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의 이야기로 글을 시작하겠다. 어느 날의 퇴근길, 갑작스러운 공황발작으로 약국으로 뛰어들어갔던 그 날의 이야기로 글을 시작하겠다. 사람들은 궁금할 것이다. 왜 젊은 남자가 죽음의 공포를 느꼈는지, (지금은 많이 알려졌지만) 공황이 무엇인지, 그 어려움을 어떻게 이겨냈는지, 그에 대한 호기심으로 다음 장을 기대할 것이다. '체르노빌'도, '내가 사랑한 남자들에게'도, 그 밖의 수많은 영화와 미드들이 이 공식을 따른다. 아니 이야기의 형식을 가진 거의 모든 것들이 그렇다.



사실 좋은 이야기의 구성에 관한 원칙은 수 천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그 옛날 그리스 시절, 연극이 성행했던 그때부터 좋은 이야기의 플롯은 이이 완성되어 있었다. 주인공에게 위기가 닥치고 그를 돕는 현인이 나타난다. 현인의 도움을 받은 주인공은 갖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전보다 성숙한 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다. 또는 복수에 성공한다. 나는 아주 짧은 글이라도 이 공식을 따르려 애쓴다. 사람들이 궁금해할 만한 내용, 어려움 또는 문제의식, 질문으로 글을 시작한다. 읽을거리, 볼거리가 넘쳐나는 세상이다. 서두에서 읽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한다면 아무리 좋은 글이라도 끝까지 읽힐 수가 없다. 글의 존재 목적은 '읽히는' 것이다. 제품이나 서비스의 존재 의미가 '팔리는' 것이듯이.



사실 이 글의 첫 번째 단락은 원래 두 번째 단락이었다. 즉 두 번째 단락으로 이 글을 시작했다는 의미이다. 아마 그 순서로 이 글을 읽어도 전혀 지장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글을 쓰면서 두 단락의 순서를 바꾸었다. 설명조의 시작보다는 하나의 사건으로 시작하는 편이 훨씬 이 글의 취지에 맞을 것 같아서였다. 글쓰기는 테트리스를 닮았다. 퍼즐과도 비슷하다. 가장 적절한 구성을 찾기 위해 문장과 단락을 수없이 이리저리 바꿔본다. 정답은 없다. 하지만 써보면 안다. 읽어보면 안다. 잘 읽히는 글들은 이유가 있다. 좋은 글은 훌륭한 플롯을 가진 글들이다. 그런데 이 구성은 이미 셀 수 없이 수많은 작가들에 의해 완성된 원칙이 있다. 물론 변칙과 변형이 통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건 대가가 된 다음에 시도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여러분은 궁금하지 않은가. 체르노빌이란 거대한 사고는 우리가 익히 들어서 아는 바다. 하지만 이 젊은 소방관 부부는, 그리고 그들의 아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바로 여기에 '체르노빌'이란 미드의 엄청난 성공의 비밀이 있다고 믿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