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너에게 고맙다, 작가 전승환

2016년, 그는 책을 한 권 썼다. '나에게 고맙다'라는 제목의 에세이집이었다. 교보문고를 포함한 종합 4대 서점에서 분야 1위에 올랐다(이 책은 결국 30만 부가 팔렸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그런가보다 했다. 대학 때는 레크레이션 강사까지 했던 그였다. 무대가 주는 묘한 흥분이 얼마나 쉽게 사라지는지 너무도 잘 아는 그였다. 평정심을 지키는게 어렵지 않았다. 그러던 3개월 후 통장에 인세가 찍혔다. 1년 연봉에 가까운 금액이 그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 주변의 사람들이 하찮게 보이기 시작했다. 사장님이 책 200권을 구매해 전 직원에게 돌렸다. 부러움의 눈길도 있었지만 시기와 질투의 시선도 적지 않았다. 그럴수록 마음은 괴팍해지기만 했다. 저들이 무언데 감히 나를 평가하는가. 괜한 분노가 일 때도 있었다. 그때였다. 상사 한 분이 그를 따로 불렀다. 역시나 책에 관한 얘기일거라 지레짐작한 그는 전혀 엉뚱한 이야기를 들었다.


"승환아 너 이거 했니? 이거 처리했어?"


그는 순간 뒷통수를 무엇으로 맞은 것 같은 깨달음을 얻었다. 책이 나온지 2주, 그가 서점가에서는 사랑받는 작가일지 모르지만, 적어도 회사 사람들에게만큼은 베스트 셀러 작가가 아니었다.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해야 할 일이 있는 샐러리맨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책을 쓰지 않고도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의 삶을 나름의 방법으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다. 회사 안에서 행복을 찾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감히 그들의 삶을 우습게 여기고 하찮게 여긴 스스로가 부끄러워졌다. 그렇게 연예인 병은 짧게 끝이 났다. 들뜬 마음을 내려 놓았다. 눈 앞에 주어진 일에 집중했다. 만일 그런 깨달음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타인의 삶을 함부로 대하고, 우쭐해하고, 사표를 던지고, 그렇게 삶이 망가질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에게 회사는 소중한 자산이었다. 무려 100장 이상의 이력서를 쓰고서야 겨우 인턴이 될 수 있었다. 최종 합격한 유일한 회사가 지금의 회사였다. 그는 입사 첫 날부터 한 시간씩 일찍 출근해 자신이 고르고 고른 문장을 포스트잇에 옮겨 적었다. 그리고 같은 사무실 사람들 앞 모니터에 붙여놓기 시작했다. 셋째 날이 되자 직속 선배가 그를 불렀다. 그렇게까지 하면서 입사를 하고 싶냐는 핀잔이었다. 쓸데 없는 짓 하지 말고 일이나 열심히 하라는 충고였다. 그러나 그는 멈추지 않았다. 그에게 좋은 문장을 고르고 나누는 일은 익숙한 일이었다. 끈질기게 이 일을 반복했다. 한 달이 지나자 부장님의 쓰레기통 속으로 들어가던 포스트잇이 달력으로 옮겨 붙기 시작했다. 그의 작은 수고와 실천이 비로소 받아들여지는 순간이었다.


그는 책 읽기를 좋아했다. 에세이와 소설 속 문장을 수집하는 일이 그렇게 즐거울 수 없었다. 책 속 문장들이 일상에 지친 그를 위로하고 새 힘을 주었다. 2012년 12월, 그는 페이스북 페이지 하나를 열었다. '책 읽어주는 남자'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혼자만의 위로를 타인에게도 나누고 싶었다. 이후로 8년 가량 그는 거의 매일 같이 책 속 문장을 퍼다 날랐다. 어느 날인가는 연애 소설 속 한 문장을 사람들과 나누었다. 그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았다. '다 힘내라고 아우성치는 세상인데, 힘내라는 말 만으로는 힘이 나지 않는다. 옆에서 어깨를 내어주는 것만으로도, 말을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눈빛만으로도 응원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책 속 문장을 나누자 페이지가 폭발하기 시작했다. 그는 지금도 컨텐츠의 힘을 믿는다. 영상은 다시 보기 힘들지만 글은 반복해 읽고 다시 감동할 수 있다. 그렇게 차곡 차곡 쌓은 문장들을 보던 와이프가 출판을 권유했다. 평소 보아둔 에세이 전문 출판사를 찾아갔다. 원고는 한 번에 통과되었다. 그의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한 번은 드라마를 보았다. 회사 이사가 세 명의 부장들 중 한 명의 어깨를 붙잡고 그동안 수고한 A부장을 축하해달라며 갑작스런 선언을 했다. 그만 두기로 했다는 말이었다. 거짓말임에 분명했다. 앞으로의 회사 전략을 논의하던 회의 중이었기 때문이다. 어리둥절한 A부장을 앞에 두고, 나머지 부장들은 안면을 바꾼채 수고했다는 인사를 남기며 이사와 함께 사라졌다. 그때 그는 깨달았다. 회사에 목을 메는 샐러리맨으로서의 삶이 얼마나 불안한 것인지를 절감했다.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나답게 사는 일일까. 당장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그가 본 드라마의 한 장면이 무언가를 해야할 필요성을 강렬히 느끼게 했다. 그즈음 우연히 차인표가 나오는 TV 프로그램을 보았다. 그는 매일 1,500개의 푸쉬업을 한다고 했다. 그 비결을 묻는 그에게 차인표는 무심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하나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좋은 문장을 찾아 포스트잇을 붙이는 수고는 그런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페이스북 페이지 '책 읽어주는 남자' 역시 그렇게 8년을 이어올 수 있었다. '나에게 고맙다'라는 책도 출판 기획서를 다운받아 기입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래서 그는 스몰 스텝의 힘을 믿는다. 물론 그에게도 책 쓰는 일은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항상 갈증을 느낀다. 지금껏 수 없이 많은 좋은 문장들을 찾고 전하는 일을 해오면서 스스로의 부족함을 절감하곤 했다. 그들은 어려운 문장을 쓰지 않았다. 누구나 쓸 수 있는 단어와 표현으로 사람의 가슴을 뒤흔드는 문장을 만들어냈다. 작아질 수 밖에 없었다. 끝없이 배워야 할 필요를 느꼈다. 그러나 100쇄 이상을 찍은 그의 책은 그에게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기회와 기회들을 끊임없이 열어 주었다. 그것이 작가로서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이라고 했다. 그는 겸손의 삶을 지향한다. 기대와 기준을 낮추는 대신 그 안에서 행복을 찾는다. 그래서 다른 이의 삶을 부러워하거나 시샘하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그가 쓴 책 역시 어느 날 다가온 '선물'처럼 받아들인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에 만족한다. 나를 어루만지고 내 마음을 다잡는 문장들을 나누는 일이 그의 평정심을 지켜주는 원동력이 되어 주었다.



"소란스럽지 않은 진심을 쓰는 작가로 남고 싶어요."


그는 스스로를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이 말을 할 때의 그가 가장 그답다고 생각했다. 글을 쓰고 싶어하는 예비 작가들에게도 조언을 부탁했다. 그가 말했다. 일단 쓰세요. 자신의 글을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무라카미 하루키도 편집자가 자신의 글을 고치는 걸 보고 있어야 했어요. 피드백을 받는 일을 당연히 여기세요. 그리고 그는 덧붙인다. 글은 채우는 것이 아니라 비우는 것이라고. 글을 예쁘게 만들거나 지식을 보여주는 도구로 쓰지 말라고. 그는 퇴사자들에게도 말한다. 스티브 잡스도 빌 게이츠도 회사를 다니면서 자신의 일을 준비했다고. 확실한 계획이 세워질 때까지는 가능하면 회사를 붙잡고 있으라 말한다. 이미 세 권의 책을 낸 그가  10년째 회사를 다니는데는 이유가 있다. 회사가 주는 안정감이 글을 쓰는 자신에게도 큰 힘이 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미래에 대해 세부적인 계획을 따로 세우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대신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들을 만나는 일에는 열심을 낸다. 라디오 출연자로, 컨텐츠 기획자로, 북큐레이터로 사이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즐겁게 살아가고 있다. 지금처럼 꾸준히 가치있는 일을 하다보면 언젠가 또 다른 기회가 열릴거라 굳게 믿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이 닮은 사람을 만나는 일은 언제나 행복하다. 평일 오후에 그를 만나고 오면서 나는 나직히 이렇게 혼잣말을 말했다. 그가 동년배의 친구라면 이렇게 말했을 것 같았다.


"나에게 고맙다. 그리고 그런 깨달음을 준 너에게도..."













매거진의 이전글 당신 안의 아름다움을 찾아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