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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을 바꾼 하루 세 줄의 일기

아주 작은 변화의 시작, 스몰 스텝 (3)

영국 영국왕립소아병원에서 일하는 한 일본인 의사가 있었다. 그는 약 20년 간 스트레스로 지친 몸과 마음을 효과적으로 다스리는 방법을 찾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당시 일하고 있던 병원에서 쓰는 환자용 차트가 눈에 들어왔다. 그 차트는 환자의 모든 상태를 단 7줄로 매일 기록하고 있었다. 어떤 응급 상황에서도 한 번에 환자의 상태를 알아볼 수 있는 그런 차트였다. 그는 이 기록의 방법을 자신에게도 적용하기로 했다. 매일 세 줄의 일기를 써보기로 한 것이다. 그 세 줄은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쓰여졌다. 맨 첫 줄은 그 날의 가장 행복했던 기억을 썼다. 다음 줄은 가장 안 좋았던 기억을 기록했다. 마지막 한 줄은 내일의 각오를 다지는 내용으로 채웠다. 그런데 이 세 줄의 일기가 그의 삶을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그를 건강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 뿐 아니었다. 두통, 어깨결림, 불면증, 우울증, 자율신경실종 증상을 겪는 사람들이 하루 세 줄의 일기로 건강을 되찾았다.



나는 이 기록을 내게도 적용해 보기로 했다. 그리고 약 4년 이상 세 줄의 일기를 썼다. 예닐곱 권의 노트가 쌓였다. 세 줄 일기는 무엇보다 쓰는데 부담이 없다는게 좋았다. 바쁠 때는 5분의 시간으로도 충분히 기록할 수 있었다. 그렇게 노트가 쌓이던 어느 날 나는 지난 기록을 엑셀로 정리해 보기로 했다. 내가 어떨 때 가장 행복했는지, 어떨 때 가장 힘들어했는지를 한 번에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결과가 내게는 조금 뜻 밖이었다. 평소에 내가 알고 있던 내 모습과는 거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만남과 소통, 교감있는 대화 / 46

미루는 습관, 나태함 / 42

가족들에게 짜증, 화냄 / 25

관계, 소통의 불편 / 20

산책 등 스몰스텝 / 17

용기있는 도전 / 13

걱정과 염려 / 6


미루는 습관이나 걱정, 염려는 납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가족들에게 자주 짜증을 내고 있는지는 미처 알지 못했다. 1년에 25번이라면 거의 2주에 한 번씩은 가족들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평소 온화한 성격의 사람으로 인정받던 나는 스스로를 돌아보았다. 사람은 자신에게 유리한 것만을 기억하게 마련이다. 순간 불같이 화를 내놓고는 그 다음날 미안한 마음에 더 잘해주던 기억들이 새삼 떠올랐다. 그리고는 잊어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세 줄 일기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또 다른 발견도 있었다. 관계의 어려움, 소통에 불편을 겪고 있다는 것은 나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만남과 소통, 교감있는 대화를 통해 가장 큰 힘을 얻고 있다는 사실은 내게도 새로웠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마침 나는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한 '자기발견'에 관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제서야 이 프로그램의 강사로 처음 참여했던 기억이 새삼 떠올랐다. 나는 노트를 뒤져 그 날의 가슴 뛰는 기록을 다시 찾을 수 있었다.



나는 내향적인 사람이다. 때로는 소심하기도 하다. 약간의 강박도 있다. 집을 나설 때면 반드시 가스 밸브를 잠그는 사람이다. 모임을 가면 가급적 뒷풀이는 피하곤 했다. 회식 자리는 늘 불편했다. 그대신 금요일 밤 혼자 미드를 보며 맥주 한 캔을 마실 때가 가장 행복했다. 그런 내가 여러 사람들 앞에서 강의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 왔다. 새로 이직한 회사에서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했는데 파일럿 강사가 필요했다. 여러가지 이유로 내가 그 첫 강의를 시작해야만 하는 상황이 왔다. 지금도 그때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강의 전날은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강의 당일은 오만 가지 생각이 밀려 들었다. 사람이 안 오면 어쩌나, 반응이 좋지 않으면 어떻하나, 강의 중에는 식은 땀에 등줄기를 타고 흘러 내렸다. 어찌어찌 강의는 마무리 했지만 굳은 표정의 청중들을 보고 이미 나는 낙심해 있었다. 그러나 담당자가 가져다준 강의 평점은 5점 만점에 4.8을 기록할 만큼 엄청난 만족도를 기록하고 있었다. 신규 강의 개설자로서는 유례가 없는 높은 평가라고 했다. 강의를 마치고 집으로 귀가하던 버스 안에서 나는 일찌기 경험해보지 못한 엄청난 보람과 뿌듯함을 느꼈다. 내 존재의 이유를 찾은 것 같은 기쁨이 밀려왔다.



3년 여가 지난 지금, 나는 최소한 백여 회 이상의 다양한 강연을 다니고 있는 중이다. 주제도 다양하고 청중도 다양하다. 한 번은 해군 함대에 초청을 받았을 때의 일이었다. 군 규정상 USB 사용도 금지된 상황에서 화면을 띄울 수 없었다.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봤으나 모두 실패였다. 결국 나는 PPT 없이 강의를 해야만 했다. 지금까지 이런 일은 없었다. 하지만 수 년간 강의를 다니다보니 내용이 내 머릿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나는 한땀 한땀 기억을 되살려 그 날의 강연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그 뒤로는 강연에 대한 두려움이 완전히 사라졌다. 준비된 내용이 있다면 강의 중에도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가장 큰 보상은 가장 '나다운' 모습을 발견했다는 데 있었다. 세 줄의 일기는 가장 나다운 모습이 언제 발현되는지를 고스란히 알려주었다. 어떨 때 내가 에너지를 얻는지, 어떨 때 내가 에너지를 빼앗기는지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거기에 드라이빙 포스(Driving Force)라는 이름을 붙였다. 함께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했던 대표님이 지어준 이름이었다. 나는 그렇게 나의 드라이빙 포스를 찾아 다양한 도전을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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