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다쟁이 내 친구

21년 동안 함께 일한 두 사람을 만났다. 회사에서는 대표와 이사 직함이지만 사석에서 만난 그들은 그야말로 친구 사이였다. 모름지기 친구와는 동업을 하지 않아야 하지 않는가. 그 비결이 궁금해 요모양 조모양으로 여러가지 질문을 던졌다. 서운한게 없었는지 넌지시 떠보기도 했고, 단서가 될 만한 에피소드를 추궁?하기도 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점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한다는 점이었다. 한 사람은 예민하지만 우직하다. 다른 한 사람은 붙임성 좋은 성격이지만 무던함을 가졌다. 대표는 창업자인 아버지의 뜻을 따라 자신의 권한을 위임하기 위해 애썼다. 다른 한 사람은 그러한 믿음에 화답하기 위해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하지만 과연 그것 뿐일까? 나는 의외의 곳에서 두 사람은 관계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수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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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은 술을 입에도 대지 않았다. 다른 한 사람은 만나자마자 폭탄주부터 말았다. 하지만 둘은 그렇게 아무 일 없이도 예닐곱 시간을 함께 이야기할 수 있다고 했다. 두 사람의 가장 큰 위기는 바로 그 수다가 끊어진 시기로 기억하고 있었다. 같은 공간에서 일하면서도 6개월 간 말을 섞지 않은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그 6개월은 21년 간의 6개월이었다. 대부분의 시간을 그들은 '수다'와 함께 했다. 서로의 생각이 같을리 없고, 서로의 취향과 입맛이 동일할 수 없는 법이다. 동업에 관한 거창한 책 한 권이 쏟아내는 여러가지 말보다, 나는 이 두 사람의 관계를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다름아닌 이 수다에서 더 많은 생각들로 뻗어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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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도 그런 친구가 있다. 얼마 전 그 친구는 수년 간 다니던 회사를 퇴사했다. 요즘은 낚시에 재미를 붙여 매일 자신이 잡아 올린 물고기 사진을 올린다. 감성돔에 돌돔을 잡은 이야기, 너무 커서 꺽어서 넣었다는 송어에서부터 잡어는 버렸다는 은근한 자랑을 섞은 사진이 수시로 올라온다. 그닥 말이 없는 편인 나는 가끔씩 그의 수다에 추임새를 넣을 뿐이다. 그런데도 친구는 벌써 십 년 이상 이 수다를 반복하고 있다. 타워 크레인을 탈 때는 매일의 점심상 사진을 찍어 올렸고, 리조트의 관리자로 일할 때는 일몰과 일출의 사진을 하루가 멀다 하고 올렸다. 하지만 친구는 대답을 바라지 않았다. 바쁜 와중에 확인만 하고 답을 하지 않을 때도 부지기수였다. 하지만 친구의 톡수다는 끝없이 이어졌다. 나는 그런 그가 고마웠다. 물론 그 대상이 나만은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하지만 그 수다야말로 서울과 부산으로 떨어진 그와 나의 관계를 이어준 튼튼한 동아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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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관계는 말이 많은 관계이다. 그 말이 꼭 의미있을 필요는 없다. 어떤 말을 던져도 받아줄 것이라는 믿음, 무슨 말을 듣더라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신뢰, 심지어 별 말을 하지 않아도 나눌 수 있는 교감, 그런 사이는 어느 날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 않기에 더욱 소중한 것 아닐까? 이런 관계가 만들어지기까지는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했다. 툭 하면 그의 집을 찾는 날이 있었고, 함께 먹는 동네 마늘닭집에 대한 추억과 시시덕거리며 새벽 시간을 보냈던 심야 영화관이 있었다. 나는 형편이 어려운 그를 위해 더 이상 필요 없어진 컴퓨터를 말없이 가져다 주었고, 친구는 어떤 상황에서도 오해 없이, 한결 같은 마음으로 나란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었다. 몇 달 씩 보지 않아도 어제 만난 듯 익숙하고, 무슨 얘기를 나누어도 밤을 샐 수 있을 만큼의 함께 했던 경험들. 그런 사람을 만나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삼 깨닫는 요즘, 친구의 무심한 톡과 사진을 보며 나직히 읊조려 본다.


'내게도 좋은 친구 하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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