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하늘의 별은 이름이 없다. 그러나 별과 별을 이어 별자리를 만들 때 비로소 그들만의 이름이 만들어진다. 그 뿐 아니다. 모든 별자리는 나름의 스토리를 가진다. 나는 이것을 '나다운' 삶과 연결지었다. 자기답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점과 점을 이어 스토리를 만들 줄 안다. 당시에는 무의미해보였던 사건, 기회, 만남들이 결국엔 서로 연결되어 놀라운 변화들을 만들어내는 경험을 나 역시 여러 번 했다. 문제는 이 점을 이을 수 있는가의 여부다. 사람에겐 누구나 평생 3번의 기회가 온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이 말이 주는 교훈은 그 숫자에 있지 않다. 어떤 기회든 준비되지 않은 사람, 그 점을 이어갈 줄 모르는 사람에게는 무의미하다는 의미다. 아마 이 점을 스티브 잡스도 잘 알고 있었던 듯 하다. 그 유명한 스탠포드 대학 졸업식 연설에서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우리는 현재의 일(사건)들을 미래와 연결지을 수 없습니다. 오직 과거와 연결지을 수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은 현재의 일(사건)들이 미래에 어떤 식으로든 서로 연결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여러분들은 자신의 배짱, 운명, 삶, 카르마(업) 등 무엇에든 간에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접근법은 나를 결코 낙담시키지 않았고, 내 인생의 모든 변화를 만들어냈습니다."
(you can’t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you can only connect them looking backwards. So you have to trust that the dots will somehow connect in your future. You have to trust in something — your gut, destiny, life, karma, whatever. This approach has never let me down, and i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in my life.)
내가 만일 군대를 다녀온 후 두 번째 수능을 치르지 않았다면, 내가 만일 나이 서른 다섯에 직업을 바꾸지 않았다면, 내가 만일 퇴사 후 어떤 대표님을 찾아가지 않았다면, 내가 만일 '아주 작은 반복의 힘'이라는 책을 읽지 않았다면, 그래서 스몰 스텝을 실천하지 못했다면, 그 경험을 브런치에 글로 써내지 않았다면, 오늘의 내 모습이 만들어졌을까? 내가 만일 매일 세 줄의 일기를 쓰지 않았다면, 1년 간 쓴 세줄의 일기를 통계내 보지 않았다면, 그 통계를 통해 진짜 내 모습을 만나지 못했다면, 나는 지금도 여전히 내게서 힘을 빼앗아가는 것들에 둘러싸여 평생 루저로 살아갔을 것이다. 이건 결코 과장이 아니다. 15년 이상의 직장생활 가운데서 지금과 같은 만족과 성취를 경험본 적은 거의 없었으니 말이다.
스티브 잡스는 스티브 잡스일 뿐이다. 그는 시대가 낳은 천재였다. 그를 존경할 수 있는 있을지언정 그를 따라 살겠다는 헛된 꿈은 일찌감치 버려야 한다. 5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전기를 읽고 내가 느낀 소감은 '나쁜 놈'이었다. 아무리 백번 양보한다 해도 그는 직접 낳은 딸을 내칠 만큼 차가운 사람이었다.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불꽃처럼 자신을 태운 '그만의' 삶을 존중할 따름이다. 우리는 다르다. 나는 다르다. 나는 나다운 삶을 살 수 있어야 한다. 그 시작은 자신을 움직이는 힘(Driving Force)이 깨닫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하면 할수록 힘이 나고 신이 나는 일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아무리 작고 사소한 것이라도, 돈이 되지 않는 일일지라도 놓치지 않아야 한다. 일상에 에너지를 주기 때문이다. 돈 되는 일, 생계를 위한 일을 견디고 버텨낼 힘을 주기 때문이다.
축적의 힘은 무섭다. 그렇게 내가 좋아하는 일들이 쌓이고 쌓이면 우리는 스스로를 긍정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된다. 자존감이 높아진다. 자기 통제감이 생긴다. 나도 무엇을 할 수 있구나 하는 자신감이 생긴다. 그 자신감만으로도 이미 그 사람은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갈 수 있다. 그리고 그 다음은 세상과 소통하는 일이다. 에너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비슷한 사람들을 만난다. 자신의 역량과 맞닿은 다양한 기회들이 찾아오기 시작한다. 내게는 그것이 스몰 스텝이고 글쓰기였다. 돈벌이와 하등의 관계가 없는 일이었으나, 나를 이해하고 지지해주는 사람들에 둘러싸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경험들을 기록으로 남겼다. 그 기록들을 엮어 브런치에 글을 썼다. 점과 점이 이어지는 순간이었다. 어느 날 밤 브런치 글 하나가 폭발해 3,000명 이상의 독자가 생겼다. 7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내 글을 읽고 갔다. 책을 쓰고 강연을 하는 기회가 자연스럽게 찾아왔다. 그렇게 나는 하나의 브랜드가 되어가고 있었다.
우리는 밤하늘에 수놓아진 이름없는 별들 중 하나다. 아무리 유명하다 한들 그 별들 속에선 무의미한 존재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하나의 삶, 한 사람의 인생만큼 소중한 것도 없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난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리의 삶은 그 이유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일지 모른다. 내가 살다감으로 해서 세상이 조금 더 좋아지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단 한 번의 유일한 삶을 향한 최소한의 예의이지 않을까? 그래서 우리는 '우리답게' 살아야 한다. '나답게' 살 수 있어야 한다. 밤하늘의 별을 이어 스토리를 만들 줄 알아야 한다. 내가 만난 어떤 사람도 무의미한 존재는 없었다. 각기 다른 모양으로 충분히 빛날 수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기회가 찾아와도, 그것을 이어갈 줄 모르는 사람에게는 무의미할 뿐이다. 오늘도 당신은 수많은 점을 찍을 것이다. 그러니 이제라도 그 점을 잇는 일에 관심을 기울여 보자. 매일 세 줄의 일기를 써보자. 우리가 누린 경험들에 점을 찍어 보자. 밤하늘의 별자리처럼 그 점들에 이름을 붙이고 의미를 연결해보자. 그 점들이 가장 자기다운 삶으로 당신을 인도할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밤하늘의 별자리처럼 당신을 찬란히 빛나게 할 것이다.
<원문>
The first story is about connecting the dots.
I dropped out of Reed College after the first six months, but then stayed around as a drop-in for another 18 months or so before I really quit. So why did I drop out?
It started before I was born. My biological mother was a young, unwed college graduate student, and she decided to put me up for adoption. She felt very strongly that I should be adopted by college graduates, so everything was all set for me to be adopted at birth by a lawyer and his wife. Except that when I popped out they decided at the last minute that they really wanted a girl. So my parents, who were on a waiting list, got a call in the middle of the night asking: “We have an unexpected baby boy; do you want him?” They said: “Of course.” My biological mother later found out that my mo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and that my fa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high school. She refused to sign the final adoption papers. She only relented a few months later when my parents promised that I would someday go to college. This was the start in my life.
And 17 years later I did go to college. But I naively chose a college that was almost as expensive as Stanford, and all of my working-class parents’ savings were being spent on my college tuition. After six months, I couldn’t see the value in it. I had no idea what I wanted to do with my life and no idea how college was going to help me figure it out. And here I was spending all of the money my parents had saved their entire life. So I decided to drop out and trust that it would all work out OK. It was pretty scary at the time, but looking back it was one of the best decisions I ever made. The minute I dropped out I could stop taking the required classes that didn’t interest me, and begin dropping in on the ones that looked interesting.
It wasn’t all romantic. I didn’t have a dorm room, so I slept on the floor in friends’ rooms, I returned coke bottles for the 5 cent deposits to buy food with, and I would walk the 7 miles across town every Sunday night to get one good meal a week at the Hare Krishna temple. I loved it. And much of what I stumbled into by following my curiosity and intuition turned out to be priceless later on. Let me give you one example:
Reed College at that time offered perhaps the best calligraphy instruction in the country. Throughout the campus every poster, every label on every drawer, was beautifully hand calligraphed. Because I had dropped out and didn’t have to take the normal classes, I decided to take a calligraphy class to learn how to do this. I learned about serif and san serif typefaces, about varying the amount of space between different letter combinations, about what makes great typography great. It was beautiful, historical, artistically subtle in a way that science can’t capture, and I found it fascinating.
None of this had even a hope of any practical application in my life. But ten years later, when we were designing the first Macintosh computer, it all came back to me. And we designed it all into the Mac. It was the first computer with beautiful typography. If I had never dropped in on that single course in college, the Mac would have never had multiple typefaces or proportionally spaced fonts. And since Windows just copied the Mac, it’s likely that no personal computer would have them. If I had never dropped out, I would have never dropped in on this calligraphy class, and personal computers might not have the wonderful typography that they do. Of course it was impossible to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when I was in college. But it was very, very clear looking backwards ten years later.
Again, you can’t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you can only connect them looking backwards. So you have to trust that the dots will somehow connect in your future. You have to trust in something — your gut, destiny, life, karma, whatever. This approach has never let me down, and i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in my life.
<번역문>
첫번째 얘기는 인생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관련성에 관한 내용입니다.
나는 리드 대학이라는 곳을 첫 6개월 다닌 후 그만 뒀습니다. 그 후 18개월 가량은 정규 학생이 아닌 채 학교를 다녔고 그 후 진짜로 그만두었습니다. 내가 왜 대학을 그만두었을까요?
이 얘기는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시작됩니다. 내 생모는 미혼의 젊은 대학원생이었는데, 나를 낳으면 다른 사람에게 입양을 시키기로 돼 있었습니다. 생모는 내가 대학을 졸업한 부부에게 입양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강하게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태어나면 바로 어떤 변호사 부부에게 입양되기로 돼있었고, 그것으로 모든 것이 다 끝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내가 태어났을 때 나를 입양키로 한 부부는 마음을 바꿔, 자신들은 여자아이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내 생모는 한밤중에 입양대기자 명단에 있는 다른 부부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가 예기치 않은 사내아이를 갖게 되었는데 아이를 원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이들 부부는 “물론”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내 생모는 나중에야 내 어머니(양모)가 대학을 나오지 않았고, 내 아버지(양부)는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생모는 이 때문에 최종적인 입양동의서에 서명을 하지 않다가, 몇 달 후 내 양부모가 나를 나중에 대학에 보낼 것이라는 약속을 하고서야 마음을 바꿨습니다. 이것이 내 인생의 첫출발이었습니다.
17년이 지난 후 나는 정말 대학에 갔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때 순진하게도 스탠포드와 거의 맞먹는 수준의 학비가 드는 대학을 선택했고, 노동자였던 내 부모(양부모)는 저축한 모든 돈을 내 대학등록금에 써야 했습니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난 후 나는 그만한 돈을 쓰는 데 대한 가치를 느낄 수 없었습니다. 나는 내가 내 삶에서 무엇을 하길 원하는지 알지 못했고, 대학이 그것을 아는 데 어떤 도움을 줄 것인지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내 부모는 전 인생을 통해 저축해놓은 모든 돈을 내 학비를 위해 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자퇴를 결심했고,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 당시 그런 결정은 다소 두려운 것이기도 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것이 내가 지금까지 한 가장 훌륭한 결정중의 하나였습니다. 내가 학교를 그만두는 그 순간, 나는 내게는 흥미가 없었던 필수과목을 들을 이유가 없어졌고, 내게 흥미롭게 보이는 다른 과목들을 수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 낭만적인 얘기는 아닙니다. 나는 (자퇴로 인해) 더 이상 기숙사에서 지낼 수 없었기 때문에 친구들의 방바닥에서 잠을 잤습니다. 음식을 사먹기위해 되돌려주면 5센트를 주는 콜라병을 모으는 일을 했고, 해어 크리슈나 사원에서 일주일에 한번 주는 제대로 된 식사를 얻어먹기 위해 일요일밤마다 7마일을 걸어가 예배에 참석하곤 했습니다. 나는 그걸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나의 호기심과 직관을 따라 가다가 부딪힌 것들 중 많은 것들은 나중에 값으로 매길 수 없는 소중한 가치들로 나타났습니다. 한 가지 사례를 들어보이겠습니다.
내가 다녔던 리드대학은 그 당시 미국에서 최고의 서예 교육을 제공하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캠퍼스 도처에 붙어있는 포스터, 서랍마다 붙어있는 라벨들은 모두가 손으로 그려진 아름다운 글씨체로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나는 정규과목들을 더이상 들을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에 이런 글자체들을 어떻게 만드는지를 배워 보려고 서체과목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세리프나 산세리프 활자체를 배웠고, 무엇이 훌륭한 활자체를 만드는 지에 대해 배웠습니다. 그것은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아름답고 역사적이며 예술적인 미묘함을 갖고 있었습니다. 나는 거기에 매료되었습니다.
당시 나에겐 이런 것들 중 어느 하나라도 내 삶에 실제로 적용될 것이란 어떤 희망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10년 후, 우리가 최초의 매킨토시 컴퓨터를 만들 때 그 모든 것이 내게로 되살아 났습니다. 우리가 설계한 매킨토시에 그 모든 것을 적용했으니까요. 매킨토시 컴퓨터는 아름다운 글자체를 가진 최초의 컴퓨터가 되었습니다. 내가 만일 대학의 서체과목 수업을 듣지 않았다면 매킨토시 컴퓨터의 다양한 서체기능이나 자간(字間) 맞춤기능은 없었을 것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즈(Windows)는 매킨토시 컴퓨터를 단지 베낀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매킨토시 컴퓨터가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어떤 개인용 컴퓨터도 그런 아름다운 서체를 갖지 못했을 것입니다. 만일 내가 대학을 자퇴하지 않았다면 서체과목을 수강하지 못했을 것이고, 따라서 개인용 컴퓨터는 지금과 같은 놀라운 서체를 갖지 못했을 것입니다. 물론 대학시절에는 그러한 일(사건)들을 미래와 연결지울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후 과거를 되돌아 보니 모든 것이 분명히 보였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현재의 일(사건)들을 미래와 연결지울 수 없습니다. 오직 과거와 연결지울 수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은 현재의 일(사건)들이 미래에 어떤 식으로든 서로 연결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여러분들은 자신의 배짱, 운명, 삶, 카르마(업) 등 무엇에든 간에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접근법은 나를 결코 낙담시키지 않았고, 내 인생의 모든 변화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 원문 출처: http://bit.ly/2WkjaD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