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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다 헤밀턴'을 좋아하세요?

와이프는 린다 헤밀턴이다. 겁이 없다. 그래서인지 단 한 번도 가스 밸브를 잠그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사시 사철 문을 열어두고 다닌다. 처음으로 면허를 땄을 때의 일이다. 스타렉스를 대절하더니 친구들과 아이들을 데리고 강원도로 캠핑을 갔다. 그 베짱은 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연애 시절 가장 괴로웠던 점은 함께 놀이공원에 갔을 때였다. 뭐든 하나를 타고 나면 나는 얼굴이 노래졌고, 와이프의 얼굴은 빨갛게 홍조를 띠었다. 나는 지금도 집을 나설 때면 반드시 가스 밸브를 잠근다. 잠들기 전에 문단속을 한다. 와이프와 나는 태생부터 다르다. 품성도 기질도 다르다. 밑그림이 다르다. 그래서 20여 년을 함께 살아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름이 공존의 조건이 된다. 그러나 이것으로 우리를 규정하는 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것이다.


품성과 또 다른 것은 어쩌면 결핍이 아닐지. 어린 시절 어머니를 여읜 와이프는 사랑에 목마른 사람이다. 아이들과 주고받는 대화를 보면 친구 그 이상이다. 10여 년 이상 보육원의 한 아이를 자식처럼 돌보고 있다. 생모가 살아있지 않았다면 입양을 했을지도 모른다. 명절 때도 데려갔다가 묘한 집안 분위기를 만들기도 했다. 방학 때면 아예 올라와 함께 산 적도 있었다. 내 생일은 못 챙기는 사람이 그 아이의 대회 날짜는 챙긴다. 서운할 정도다. 어디 그 뿐인가. '나만고양이없어병'에 걸린 나머지 고양이를 네 마리나 입양을 했다. 집안이 쑥대밭이 되어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하긴 어차피 와이프는 혼돈의 여신이다. 딸도 와이프를 닮아 '정리'에 대한 개념이 희박하다. 그러나 와이프에게는 사랑이 넘친다. 나는 생각한다. 아마도 어린 시절 어머니의 부재가 가져온 결핍 때문이 아닐까 하고.


격주로 이어지고 있는 자기 발견의 시간 '쓰닮쓰담.


그에 비하면 나는 할머니와 부모님의 전폭적인 사랑을 받고 컸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사랑이 없다. 와이프의 봉사? 활동을 막진 않지만 마음으로 동참하긴 힘이 든다. 보육원 아이의 핸드폰비를 매달 내면서도 툭하면 데이터를 오버하는 그 아이를 사랑한다고는 못하겠다. 다 큰 아이의 엉덩이를 툭툭 치는 애정 넘치는 스킨십은 흉내도 못내겠다. 내게 있어 결핍은 어쩌면 '안정과 평화'일지도 모르겠다. 살아 계신 내내 술을 사랑하신 아버지 아래서 하루도 마음 편하게 잠 든 날이 없었다. 집으로 돌아갈 때면 불이 꺼진지 확인하고 들어갈 정도였다. 언제나 불안이 그림자처럼 드리워져 있었다. 그래서 나는 평화롭고 안전하고 깨끗한 환경을 언제나 갈구해왔다. 그 안정이 깨어진 곳에서는 패닉이 찾아왔다. 내가 새벽 시간의 글쓰기를 즐기는 것도 아마 이 시간과 장소가 가장 '안전'하기 때문이리라.


자신에 대해 안다는 것은 여러 겹의 층위를 가진다. 가장 밑바닥에는 타고난 품성과 기질이 있다. 와이프는 태어날 때부터 위험에 대한 인지가 부족하게 태어난 사람이다. 나는 정반대로 과다하게 위험을 인지하는 유형의 사람이다. 이것은 마치 도화지의 밑그림처럼 바뀌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자라나면서 '결핍'을 경험한다. 사랑받지 못하거나 위협을 느끼면 이 결핍은 증폭되기 마련이다. 이 결핍이 바로 '욕구'를 만든다. 타인을 향한 와이프의 무조건적인 사랑은 자신이 겪은 결핍 때문일 것이다. 나의 어린 시절 경험이 만든 결핍은 '안정'을 희구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돌발 상황을 즐기지 않는다. 잘 준비된 시간과 안전한 공간을 희구한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우리를 '다르게' 만드는 또 한 가지 요소가 있다. 그것이 바로 성품과 욕구를 잇는 '가치'이다. 이것은 각 사람이 지향하는 삶을 다르게 만드는 결정적 이유가 된다.


서로가 가진 '가치'를 설명하고 그에 따른 실천을 공유한다. 그렇게 우리는 자신을 알아간다.


타고난 성품은 나를 내성적인 사람으로 만들었다. '안정'에 대한 결핍은 나를 소극적인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나는 거기에서 머무르지 않았다. 의도적으로 나를 위험에 빠트리는 '용기'라는 가치를 지향했다. 남들이 하지 않는 무모한 시도를 통해 '성장'을 경험했다. 군대를 제대한 후 수능 시험을 다시 치르고, 나이 서른 다섯에 완전히 직업을 바꾸는 도전을 감행했다. 이 모든 경험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그 시간에 와이프는 타고난 용기와 사랑에 대한 결핍을 더해 동네에서 사랑받는 걸 크러쉬가 되었다. 최근에는 학교에서 쫓겨난 아들 때문에 실의에 빠진 친구를 돕느라 새벽 3시까지 노래방에서 노래를 불렀다. 머리 끝까지 화가 난 나는 나랑 같이 살기 싫은 거냐고 물었다. 린다 헤밀턴도 그건 미안했던 모양이다. 와이프는 아직도 사랑에 목마른 사람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온전한 하루의 휴가도 주었다. 금일봉도 선물했다. 나는 이 사람을 더 사랑해주어야 한다. 그래야 더 나은 '가치'있는 삶을 살아갈 지향점을 찾을 것이다.


당신은 어떤 성품을 타고난 사람인가. 어떤 결핍으로 어떤 욕구를 가지게 되었는가. 그리고 어떤 가치있는 삶을 지향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이것이 우리의 삶을 결정하는 '나다움'의 실체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성품은 받아들여야 한다.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결핍은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선한 욕구로 그것을 채워야 한다. 스몰 스텝은 이 결핍을 채우는 가장 쉽고 간단하고 확실한 방법이다. 대단치 않은 매일의 실천(스몰스텝)을 타인과 함께 해보는 것이다. 그것이 주는 유익은 익히 이 곳 브런치를 통해 이야기해온 바 있다. 그리고 필요한 것이 '가치'있는 삶을 지향하는 것이다. 성품의 장점과 결핍에 따른 욕구를 통해 타인과 세상을 이롭게 하는 '가치'를 찾아야 한다. 이 세 가지를 발견한 후 내 삶은 달라졌다. 나의 용기없음을 탓하기 보다 도전하는 삶을 선택했다. 와이프의 결핍을 이해한 후 어떻게 사랑할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스몰 스텝을 통해 만난 사람들을 통해 내가 지향하는 '소통'의 삶을 지향하게 되었다.


진지한 얘기를 할 때는 언제나 '당'이 필요한 법이다.


스몰 스텝은 나를 찾아가는 여정의 그 첫 발을 내딛게 한다. 당신을 당신 자신을 제대로 이해해야 할 의무가 있다. 먼저는 스스로를 위해서고, 그 다음은 타인과의 공존을 위해서다. 나는 스몰 스텝을 통해 내 숨겨진 결핍에 따른 욕구(Driving Force)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욕구가 채워지자 비로소 내가 지향하는 삶의 정체가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평안'을 희구하는 성품, 안정에 대한 결핍이 만든 '용기'라는 욕구, 타인과 함께 성장하기를 지향하는 '소통'이라는 가치까지... 그러니 오늘 이 시간 당신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이 세 가지 기준에 따른 당신을 선명하게 설명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당신은 당신 자신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안심하자. 그것을 알악가는데 대단한 검사나 연구가 필요한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그저 우리와 함께 '스몰 스텝'을 밟으면 된다.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실천을 통해 당신 역시 달라질 것이다. 한없이 평범하고 부족한 내가 이렇게 웅변하는 확신을 얻게 된 것처럼. 그러니 당신도 이제 당신의 '자기다움'을 고민해보자. 그것이 당신의 삶을 생각보다 많이 바꿔버릴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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