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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9번입니다, 아니 그 이상의 사람입니다

조연화 강사님의 '에니어그램' 특강을 듣고...

나를 안다고 생각했었다. 착각이었다. 두부 자르듯 사람을 나누는 MBTI보다 에니어그램에 왠지 더 신뢰가 갔다. 그래서 살펴본 나의 유형은 5번 아니면 6번이었다. 전형적인 '머리형'이다. 그저 대충 그런 줄로만 알고 살았다. 그런데 '독깨비'라는 독서모임에서 만난 나의 진짜 유형은 따로 있었다. 전문가의 눈으로 바라본 나는 9번 쪽에 훨씬 가까웠다. 지식이나 안전보다 '평화'를 지향하는 유형이다. (5번인) 지식을 추구한다고 하기엔 머리가 너무 느리고, (6번인) 안전을 추구한다고 하기엔 빈틈이 너무 많은 나였다. 강사님은 에니어그램이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성공이다. 나도 몰랐던 나를 또 한 번 발견하게 되었으니. 그제서야 그동안 품었던 의문 몇 가지가 퍼즐 조각처럼 맞춰지고 있었다.



9번은 스트레스 상황에서 '불안'을 느낀다. 지난 세월이 주마등처럼 흘러갔다. 살아 생전 늘 취해 계시던 아버지 때문에 항상 불안에 떨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그 덕분에 나는 지나치게 예민한 사람으로 오랫동안 살아왔다. 직장에서조차 나와는 상극인 위, 아래 사람으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었다. 나는 그저 내가 그런 사람인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직장에서의 그 우유부단함이 사실은 9번이 가진 포용의 전형적인 모습이라는 사실을 알고 깊은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스몰 스텝을 통해 만난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 점을 칭찬하고 지지해주었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전혀 다르지 않다. 그저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각이 바뀌었을 뿐이다. 내가 나를 바라보는 안경을 새로이 쓴 셈이었다. 그 하나가 참으로 많은 것을 바꾸었다. 나는 전혀 새로운 내 모습을, 사람들과의 소통과 연결을 즐기고, 때로는 하나의 지향점으로 인도하는 서포터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나는 그런 지금의 그런 내가 그렇게 '평화'로울 수 없다.



하지만 이 날의 강의 주제는 전혀 다른 곳에 있었다. 어설픈 에니어그램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를 다양한 사례로 학습하는 시간이었다. 내가 심리 검사를 불편해했던 가장 큰 이유도 그와 같았다. 어떻게 한 사람을 몇 가지 유형으로 무우 자르듯 분류할 수 있단 말인가. 그렇게 생긴 선입견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나 역시 여러번 경험하곤 했다. 그 유형을 벗어난 사람들 앞에서 혼란을 겪은 적도 여러번이었다. 강사님 역시 4,5년 이상 에니어그램을 놓은 적도 있다고 했다. '부처를 만나려면 부처를 죽이고 가라'는 말이 떠올랐다. 안다고 생각할 때가 언제가 가장 모르는 법이다. 타인을 분류하고 분석하는 도구가 아닌, 상대방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방법으로서의 활용이 더 중요한 것은 아닐지. 무엇보다 나의 참 모습을 만나고, 외면하고 싶었던 내 모습을 직면하는 용도로 쓰이는 것이 아마도 옳은 방법이리라. 에니어그램을 제대로 배우고 싶은 생각이 불끈 솟아나는 저녁이었다.



스몰 스텝도 마찬가지였다. 좋은 습관이 목적이 아닌 '자기 발견'을 위한 솔루션으로 활용해왔다. 나도 몰랐던 나를 만나고, 그런 나를 이해하고 포용하고 종국에는 활용할 수 있는 방법으로 오랫동안 훈련해왔다. 지금 내가 매일 지키는 스몰 스텝은 서 너개에 지나지 않는다. 한때 서른 개에 달했던 스몰 스텝을 모두 놓아버린지 오래다. 그렇다고 해서 그 스몰 스텝들의 유용함이 사라지진 않는다. 그러나 그 필요를 깨닫고 놓아버리는 것과 처음부터 하지 않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나는 여전히 사람들에게 세 줄의 일기를 권한다. 매일의 침구 정리를 독려한다. 매일의 삶에서 작은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서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에너지를 얻기 위해서다. 그렇게 나를 '좋은 상태'로 만들 때 진짜 내 모습이 나온다. 같은 9번이라도 상태가 좋지 않으면 곧장 불안과 자기 비하의 나락으로 떨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좋은 상태에선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는 힘과 디테일이 솟아나온다. 나는 그런 과정을 통해 멋진 사람들을 만났고, 수없이 많은 일의 기회를 얻었으며, 작게는 4권의 책을 쓰는 작가도 될 수 있었다.



나를 알아간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나의 참모습과 조우하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가 않다. 그럼에도 그 작업은 엄청난 잠재력과 가치가 있는 일이다. 당신이 알고 있는 당신의 모습은 진짜가 아닐 수 있다. 타인의 기준에 따라 선택한 안전한 삶이 오히려 위험할 수 있다. 내가 5번, 6번이라는 잘못된 자기 인식을 바탕으로 직업을 선택한 결과는 재앙 그 자체였다. 지금의 나는 타인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서로를 연결하는 가슴 설레는 소통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내가 존재 그 자체로 받아들여지는 안전한 공동체에 둘러 싸여 일하고 있다. 그것이 주는 자유함은 얼마나 달콤한 것인가. 마침 강사님과 같은 방향이던 나는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마음껏 추가 상담을 받을 수 있었다. 지금 운영 중인 글쓰기 교실 '쓰닮쓰담'에 관한 더 멋진 아이디어들이 쉴 새 없이 솟아나던 지하철 퇴근길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또 한 번 성장한 '평화'로운 나를 다시 만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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