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에서 전주로 가는 기차에 오른 건 오후 4시가 조금 지난 시간이었다. 한 달만의 두 번째 강의로 초대를 받았다. 남원 지역의 화장품 회사를 대상으로 한 브랜드 강의 때문이었다. 다행히 반응은 좋았다. 20여 명 남짓한 참가자들은 ‘브랜드’라는 다소 어려울 수 있는 주제를 흥미롭게 들어주었다. 이럴 때면 비로소 내가 살아았다는 것을 느끼곤 한다. 내가 가진 지식, 정보, 경험이 누군가의 공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기쁨이다. 설레는 가슴을 안고 전주행 기차에 올랐다. 전주에 사는 스몰 스텝 운영진 분의 다음 한 마디가 주저 없이 기차표를 예매하게 만들었다.
“남원이면 전주 근처네요?”
바로 송사장 부부였다. 모임 참여를 위해 늘 전주에서 서울을 오가는 두 분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던 터였다. 아무런 지원도 없이 수시로 열리는 스몰 스텝 모임들에 가장 열심히 참여하는 두 사람이다. 이 참에 새로 나온 책도 선물하고 싶었다. 전주역에 내린지 얼마 되지 않아 송사장 부부가 나를 픽업하러 왔다. 그리고 도시를 가로질러 보리굴비와 비빔밥, 그리고 각양각색의 산해진미 가득한 멋진 저녁을 대접받았다. 그러고보니 이들 부부와 긴 이야기를 나눈 적이 거의 없었다. 나는 큰 맘 먹고 나서는 이 거리를 이들은 거의 매달 잊지 않고 찾아와 주었다. 벌써 1년이 훌쩍 넘은 시간이다. 그렇게 함께 유쾌한 수다를 떨다가 송사장의 와이프, 맹꾸미님이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여기에는 사연이 있었다.
“레이디 가가도, 세레나 고메즈도 이 병에 걸렸는걸요.”
그렇다. 이 부부의 서울행이 특별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맹꾸미님은 루푸스 병으로 투병 중이다. 루푸스는 몸의 면역 체계에 이상이 있어 다양한 합병증이 나타나는 희귀한 병이다. 수시로 병원을 찾아야 한다. 모임에 참여하려다 돌아가거나, 모임 중에도 엎드린채 쉬어야 하는 이 병은 난치병이다. 그러나 이들 부부를 만나면 투병 중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곤 한다.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에 가장 행복해 보이는 부부다. ‘1+1’이라는 별명이 생길 만큼 이들은 매 시간, 매 순간을 함께 시종일관 함께 한다. 결혼한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을 터인데도 신혼 부부같다. 서로를 아끼고 위하고 사랑한다. 그것이 눈에 보인다. 누군가가 투병생활과 어려움에 직면에 낙담을 선택했다면, 이들은 어떤 건강한 부부도 부러워할만한 행복을 선택했다. 그리고 자신들의 아픔과 극복의 기록을 나누기 위해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내가 아는 어떤 디자이너는 창의적인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의도적으로 환경을 제한하곤 한다고 했다. 부족한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고, 한정된 시간 속에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것이 오히려 더욱 크리에이티브한 아웃풋을 만들어낸다고 했다. 나는 이들 부부를 보면서 삶에도 창의적인 결과물이 있다면 이들의 하루하루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루푸스라는 희귀병이 오히려 이들 부부의 사랑을 더욱 깊게 만든 것인지 모른다. 그 병을 일부러 선택할 사람은 없지만, 이미 주어진 환경에서도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이들의 삶은 웅변한다. 나는 그 모습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삶을 응원하고 지지하고 싶었다. 그래서 와이프에게 카톡을 보냈다. 전주에서 만난 수제 초코파이를 먹고 싶냐고 사진을 찍어 보냈다. ‘그렇다’는 대답이 바람처럼 날아왔다.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차를 마시고, 함께 수다를 떨었다. 오후 강의의 피로가 씻은 듯 사라졌다. 이번 주말에 있을 송사장은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을까? 주제는 성인들을 위한 공부법이지만, 그 속에는 자신만의 행복을 만들어가는 지혜가 오롯이 담겨 있지 않을까? 몸은 건강하지만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마음이 건강한 사람을 만나면 내 마음도 건강해진다. 좋은 사람과 함께 하는 시간은 그 자체로도 행복하다. 스몰 스텝이 인연이 되어 이들을 만났다. 한 달에 한 번, 고작 대여섯명이 모이는 그 모임에 오기 위해 이들 부부는 전주에서 서울까지 왕복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다섯 명을 상대로 한 강의도 사심없이 해주었다. 그래서 미안하고 그래서 감사하다. 이번 돌아오는 토요일에는 더 많은 분들이 함께 하기를. 그래서 이 행복한 기운을 마음껏 가져가시길. 지금도 전주에는 송사장 부부가 있다. 그래서 나는 전주가 좋아졌다. 비빔밥 만큼이나, 보리굴비 만큼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