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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은 어떻게 서퍼들의 천국이 되었나?

어느 날 미용실에 들르니 헤어 디자이너가 없었다. 말이 통하는 남자 디자이너였다. 아쉬운 마음에 물어보니 '양양'으로 갔다고 했다. 그제서야 그와 나는 대화들이 하나 둘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는 쉬는 날 서핑을 즐긴다고 했다. 여자친구와 헤어진 그즈음은 더욱 자주 간다고 했다. 작지만 야무진 체구, 검게 그을린 그의 얼굴를 보며 재밌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가 진짜 양양으로 갔다. 낮에는 일하다가 밤에는 바로 뛰어나가 파도를 타고 싶어했던 그다. 나는 그에게서 이미 서퍼들의 '성지'가 되어버린 양양이란 도시를 알았다. 고속도로까지 새로이 뚫려 1시간 40분이면 갈 수 있는 그곳, 강릉과 속초에 끼인 인구 3만이 채 되지 않는 작은도시, 대체 그 도시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양양의 해변을 상전벽해, 서퍼들의 천국으로 만든 사람이 있다. 바로 서피비치의 박준규 대표다. 800m 길이의 허허벌판을 서핑 전용 해변으로 만든 사람이 바로 그다. 군사작전 지역을 임대해 컨테이너 두 개를 달랑 놓고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제 이곳은 연간 55만 명의 사람들이 찻는 힙한 플레이스가 되었다. 인스타그램에만 매일 1000여 건의 사진이 새로이 올라온다. 강원도 토박이인 그가 지금과 같은 성공을  하기까지는 적지 않은 고비들이 있었다. 스키장과 해수욕장의 경험을 두루 거치며 다양한 실패의 경험을 바탕으로 나름대로의 공간에 대한 철학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다음에 사업을 한다면 정말 콘텐츠가 아니라 플랫폼에 주력하겠다는 원칙을 세웠다. 공간은 누구나 철학을가진 사람이 만들 수가 있고, 일단 공간을 만들어놓기만 하면 그 철학에 공감한 아이템이 모일 수가 있기 때문이다. 공간을 찾아온 사람에게 만족감을 주고 사랑받을 수만 있다면 그곳에서 빛이 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했다." (박준규 대표, 동아비즈니스리뷰)



그는 이 이름 없던 해변을 '서핑 전용 해변'으로 새로이 정의했다. 주 타겟은 밀레니얼 세대였다. 이 세대의 가장 큰 특징은 다름아닌 '최선을 다해 놀고 싶어한다'는 것이었다. 피곤한 일상에 지친 이 세대들은 무엇보다 '단절'을 원한다. 루프탑 입매료가 1층 건물가 맞먹을 정도로 인기를 끄는 이유도 크게 다르지 않다. 주말 밤이면 홍대 인근이 마비가 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 때문이다. 박 대표는 고객이 원하는 것에 집중했다. 철저히 고객 중심으로, 도시에서 느낄 수 없는 감동적인 경험을 전달할 수 있어야 했다. 서핑이 바로 그 역할을 담당했다. 강습이 아닌 '체험'을 주기 위해 비용을 낮추었다. 한철 장사가 아닌 해마다 다시 찾고 싶은 곳으로 만들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물론 이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툭하면 인근 주민들이 경찰을 데려왔다. 답답하고 억울했지만 그는 진심을 전하기로 했다. 해마다 두 차례씩 관광버스를 빌려 주변 상권의 어르신을 모시고 여행을 다녔다. 매년 세 번씩 마을 잔치도 열었다. 번 돈의 일부는 마을 발전 기금이나 장학금 등으로 기부했다. 상권이 살아나자 마을 인심도 넉넉해졌다. 평당 70~80만원 하던 인근 땅값이 2000만 원까지 올랐다. 서울의 일부 지역에서나 경험할 젠트리피케이션을 걱정할 지경이 되었다. 이제는 김장철마다 동네 사람들이 박 대표에게 보낸 김치가 70통에 달할 정도다. 이제 서퍼비치와 박 대표는 로컬의 일부가 되었다.



오랫동안 즐겨 보던 일본의 어느 TV 프로그램이 있었다. 지역마다 특색 있는 라면 가게를 찾아 그릇을 받아오는 프로그램이었다. 출연자들이 하는 일이라곤 라면을 먹고, 감탄하고, 주인에게 부탁해 그릇을 받아오는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도 이 프로그램은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만큼 개성 넘치는 라면집들이 많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역마다 다른 재료와 레시피는 물론이고 그릇의 모양까지 특색 있었다. 어디 이 뿐인가. 기차를 타면 내리는 역마다 그 지역만의 고유한 도시락을 보여주는 프로그램도 있었다. 나는 그때마다 의문을 품었다. 왜 우리나라는 가는 곳마다 경치도 음식도 볼거리도 다 비슷한 것인가. 그 지역하면 한 번에 떠오르는 곳이 왜 이다지도 없는 것인가. 한 번은  지역마다 다른 막걸리를 소개한 지도를 페이스북으로 공유한 적이 있었다. 수천 수만 명이 그 지도를 퍼다 날랐다. 지역에 기초한 브랜딩의 가능성을 직접 경험한 순간이었다.



강릉의 커피 거리, 한국의 나폴리 통영, 전주의 한옥마을, 부산의 감천마을, 서퍼들의 천국 양양까지. 이제 우리도 지역마다 개성 넘치는 먹거리와 관광지를 가질만한 때가 도래한 것인지도 모른다. 브랜드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발견되는 것이다. 원래 그 지역이 가지고 있던 숨겨진 가치를 발굴하고 전파하는 과정이다. 이제 분위기는 무르 익었다. 밀레니얼 세대는 이기적이다. 다른 말로 개성 넘친다. 모두가 다 아는 곳, 모두가 좋아하는 것보다 '자신만의 가치'를 표현할 수 있는 곳들에 열광하는 세대인 것이다. 남녀노소가 다 가는 해운대보다, 자신의 힙한 개성과 취향을 표현할 수 있는 양양을 선택하는 것도 이같은 이유 때문이다. 양양이란 끼인 도시의 숨은 가치를 발견한 서퍼 비치 박 대표의 다음 인터뷰에 주목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우리에겐 더 많은 양양을 가질 권리가 있다. 의무가 있다. 이제 지역도 도시고 '브랜드'가 필요한 시대다.


"콘텐츠는 바뀔지도 모른다. 해변에 풀빌라 리조트를 만들 수도 있고, 스시 한 점을 1000원에 파는 스시 바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아직은 동남에서 배울 것도 많다. 그러나 강원도의 바다가 훨씬 깨끗하고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 바다를 오래도록 사랑받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








* 위와 같은 고민을 한 권의 책에 담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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