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의 어느 고깃집을 찾았다. 입구에 크게 걸린 '격'이라는 글자가 흥미로웠다. 여기서 본 이미지는 디테일한 메뉴판으로 이어졌다. 신경 쓴 흔적이 역력했다. 6가지 소스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입맛을 돋운다. 아니나 다를까 상차림도 범상치 않다. 도마 위에 놓인 고기와 각각의 찬에 어울리는 플레이팅이 왠지 '격' 있어 보인다. 이들이 말하는 고기의 격이란 대체 어떤 것일까? 40년 가까이 고기를 다뤄온 이 집의 주인은 이제 대를 이어 장사를 하는 중이다. 그는 내게 새롭게 시작하는 갈비집의 스토리텔링을 요청했다. '갈비본질'이라는 프리미엄 갈비 전문점이었다. 갈비에서 본질을 만나다니 새롭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다. 브랜딩의 핵심이 그 제품과 서비스의 본질을 찾아가는 여행이 아니던가. 늘 거기서 거기던 고깃집에 어떤 스토리를 더할 수 있을까? 하지만 우리는 그 답을 고깃집에서 찾지 않았다. 인근에 있는 '카페 진정성을'을 찾았고, 이 고깃집의 역사가 시작된 인천의 '조양방직'을 찾았다. (사실 인천은 돼지갈비의 본고장이기도 하다.) 센스가 범상치 않다. 이런 주인이라면 뭔가 새로운 고깃집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지인의 소개로 서울 양재천 인근의 '강남그릴'을 찾았다. '모든 일은 고기 먹기'에 달렸다는 카피가 인상적이다. 아니나 다를까 주인장의 고기에 대한 부심이 유쾌한 수다로 이어진다. 제주산 돼지로 만든 샤브샤브, 기름이 튀는 것을 막아주는 불판의 디자인, 하나하나의 찬을 장식하는 놋빛 그릇의 은은한 컬러가 나도 모르게 입맛을 돋운다. 돼지고기를 1mm로 하느냐 1.5mm로 하느냐에 따라 '말림'의 모양이 달라진다는 그의 설명의 흥미롭다. 1mm로 말린 고기는 풀리지 않고 샤브샤브 속에서 그 모양을 유지한다고 한다. 세 가지 소스에 대한 설명도 그는 잊지 않았다. 땅콩소스에 올린 마늘맛이 문득 궁금해졌다. 불판의 모양과 높이 역시 오랜 고민을 거쳤다고 한다. 구이가 끝나면 돌려놓거나 치울 수 있는 불판 덕에 단 한 번의 기름 튐 없이 식사를 마칠 수 있었다. 일부러 찾아오지 않으면 힘든 양재천 깊숙한 곳의 작은 고깃집, 그곳에서도 생존을 위한 처절한 사투는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이런 작은 가게에도 '브랜딩'이 필요할까? 오랫동안 이어온 고민들이 현실의 문제를 만나 파도처럼 너울대고 있었다. 그것은 기대이기도 했고 우려이기도 했다.
'스몰 브랜드의 힘'이라는 책을 통해 나는 수 많은 인생의 선배들을 만났다. 각각의 분야에서 자신만의 생존과 성장의 비법을 터득한 작은 가게, 작은 회사의 구루 같은 사장님, 대표님들을 참으로 많이 만났다. 그리고 겸손해졌다. 10년 이상 브랜드에 관한 글을 써온 나의 지식도 결국은 책 속의 지혜일 뿐이다. 반쪽자리다. 반면 현장에서 수십 년간 자신의 '업'을 이어온 이들의 지혜는 전쟁터 같은 현실 속의 그것이다. 두 세달 동안의 컨설팅으로 그들을 '돕는다'는 것이 과연 가당키나 할까. 그래서는 나는 아무리 작은 가게, 아무리 젊은 사장님이라도 '존중'의 자세로 그들을 만난다. 한수 두수 혹은 인생의 지혜를 배운다. 광고로 급조된 로고와 카피 하나가 가진 무게와 비교할 수 없는 지혜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은 이미 책에서 말하는 '브랜딩'을 실천하고 있다. 아무리 작은 아이템이라도 '차별화'를 끝없이 고민하고 다양한 시도와 도전을 아끼지 않는다. 그들의 에너지는 생존을 향한 절박함에서 나온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그렇게 즐거울 수 없다. 나는 전사(戰士)가 아니다. 그 전쟁을 기록하는 '사관(史官)'이다. 시대를 바꾸는 거대한 전쟁이 아닐 뿐, 골목의 성패를 가늠하는 전쟁은 지금도 전국 곳곳에서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나는 거기서 시장을 배우고 인생을 배운다.
고깃집 하나를 하면서 이 유난을 떨어야 할까? 그래야 한다. 전후 생존을 위한 40여 년이 지나면서 2세들이 가게와 기업을 이어 받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이들은 배운 세대다. 규모 있는 가게나 기업들은 많은 이들이 자식들을 외국으로 유학 보냈다. 그리고 배우고 온 이들이 '브랜딩'을 고민하고 있다. 부산의 삼진어묵과 덕화푸드가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그리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전통에 더해진 다양한 시도들이 빛을 발하고 있다. 오래된 국민 간식이 고급 디저트로 새롭게 각광받고 있다. 명란젓의 오리진(Origin)이 한국에 있다는 사실을 덕화푸드로부터 배웠다. 세련된 디자인과 의미를 곱씹게 하는 그들의 브랜드 스토리에는 힘이 있다. 어묵의 본질을 생각하고 명란젓의 유래를 고민한 결과였다. 잠실역 지하, 롯데 백화점 입구에서 만난 삼진 어묵은 한 눈에 봐도 고급스러웠다. 나와 하등 관계 없는 기업이지만 그들의 성장이 반가웠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다양한 브랜드가 인정을 받는다는 사실이 괜히 뿌듯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더 많은 숨은 가게와 기업들을 자극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이 바로 '브랜딩'이라고.
브랜드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발견'되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대학을 나와 MBA 과정을 마쳤다 한들 그 지식은 죽은 지식이다. 나는 데이비드 아커의 책으로 브랜드를 배우기 보다 시장에서 진짜 브랜드를 더 많이 배울 수 있었다. 그들은 하루 하루의 삶을 연명하는 장사꾼의 마인드로만 일하고 있지 않았다. 끝없이 자신의 업을 고민하고, 기어이 그 해답을 찾아내고 있었다. 내가 가장 잘 하는 일은 그들의 그 노력을 '스토리'로 받아 적은 후 더 많은 이들에게 전파하는 것이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아이템이나 비법이 아니다. 이미 그들 속에 내재된 '차별화' 요소를 발견하고, 그것을 전파하기 쉬운 네이밍과 카피와 스토리텔링으로 정리하는 일이다. 내가 생각하는 브랜드 컨설팅은 '마법'이나 '마술'이 아니다. 거대한 돌덩이 속에서 '작품'을 볼 수 있었던 조각가에 가깝다. 나는 더 배워야 한다. 그리고 더 겸손해져야 한다. 모래 속에 숨은 보석들을 캐내는 기분으로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려고 한다. 나는 이런 브랜드들이 발견되고 인정받는 세상을 꿈꾼다. 그것이 어딜 가나 유니크한 가게로 가득한 진정한 브랜드 생태계를 만드는 일에 일조하는 것이라 믿는다. 그 여행은 이미 시작되었고, 나는 그 여행을 기꺼이 유쾌하게 즐기고 있는 중이다.
* 위와 같은 고민을 한 권의 책에 담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