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씨 유 레이러, 이안

그의 이름은 '이안'이다. 미국에서 왔다. 나이는 서른 살, 키는 어림 잡아도 190 이상이지만 얼굴만 보면 소년의 모습이 있다. 어려 보인다고 하니 구레나룻을 기른 사진을 직접 꺼내보여 주었다. 아이스 하키를 좋아한다. 하키는 캐나다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냐고 물었더니 자신이 사는 미시건 주가 캐나다 접경이라고 했다. 조카들이 BTS를 좋아한다고 한다. 그를 스몰 스텝 정기모임에서 다시 만났다. 다시 보니 반가웠지만 아무래도 언어가 걸린다. 알아듣는데 큰 지장은 없지만 대화는 주고 받는 것 아닌가. 첫 만남에서 한 시간 가까이 '말도 안되는' 대화를 주고 받았던 기억이 떠올라 아무래도 주춤거린다. 선한 의도가 오히려 스트레스를 줄까봐서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 모임에 나온 것부터가 그의 의지다. 한국인 여자친구인 에리카님의 증언이다. 그야말로 'Power of Love'다. 사랑하는 사람이 함께 하는 사람들, 그들을 만나러 어려운 자리에 온 것이다. 그러나 좀체 용기가 나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서로가 부담을 가지지 않으면서 대화란 것을, 소통이란 것을 할 수 있을까?



이안은 뒷풀이 자리에도 왔다. 사람들이 피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어떻게 하다보니 다른 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나자 이안의 목소리가 들린다. 뜻 밖에 도미니꼬님이 마주 앉아 열심히 대화를 하고 있다. 그제야 안심이 된다. 3각대화?라면 부담이 덜할 듯 싶었다. 마침 화장실을 다녀오니 내 자리가 사라지고 없다. 하늘의 계시인가 보다. 이안 옆에 앉아 본격적인 대화를 시작했다. 걱정은 기우였다. 첫 만남에서 한국인 만큼이나 낯을 가리던 이안은 사라지고 수다쟁이 이안이 그 자리에 있었다. 도미니꼬 님의 영어 실력도 다행히? 유창하지 않다. 세 명이 모여서 이런 저런 얘기를 주고 받는다. 그 중에서도 우리 마음을 하나로 모았던 건 보드 게임에 관한 내용이었다.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지만 꼭 한 번 해보고 싶었던 것 중 하나가 제대로 된 보드 게임이었다. 넷플릭스 영화 '기묘한 이야기'에는 주인공들이 수시로 모여 앉아 게임을 즐기는 모습이 나온다. 길고 어려운 소통 끝에 또 하나의 접점을 마침내 발견하는 순간이었다.



소통은 어려운 것이다. 같은 한국말을 쓰면서도 얼마나 자주 오해하고 얼마나 크게 좌절하는가. 하물며 말이 안 통하는 사람과 대화를 한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나는 이유가 있다. 나고 자란 곳이 달라도 사람은 비슷하다고 믿는다. 그들에게 내가 가진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이 먼 타국까지 와서 일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당신이 추구하는 삶의 가치는? 당신을 움직이는 가장 큰 힘은 무엇인가, 나답게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이라 생각하는가... 오랫동안 품어왔고 간절히 찾고 싶었던 질문의 다른 버전을 발견하고 싶었다. 굳이 유창하게 대화를 할 수 없어도 괜찮다. 내가 영어를 쓰려 애쓰는 만큼 그도 한국어를 이해하기 위해 애써야 한다. 그도 안되면 몸짓과 눈빛, 스마트폰의 번역기를 쓰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중요한 것은 도구가 아니라 목적이다. 유창한 대화가 아니라 진정한 소통이다. 그런 면에서 나와 도미니꼬님, 이안은 준비된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한참을 대화할 수 있었다. 이안은 내게 보드 게임을 배울 수 있는 카페를 알려 주었다. 스마트폰을 꺼내어 자세한 위치까지 상세히 알려준다. 닥터 스트레인지 의상을 입은 자신의 사진도 찾아서 보여준다. 우리는 그 지점에서 함께 '통'하고 있었다.



나는 '스몰 스텝'의 힘을 믿는다. 매일 지속하는 아주 작고 사소한 습관이 '나다움'을 찾아 주었다. 나는 잘 나가고 화려한 사람들보다 소외되고 약자인 사람들에 관심이 많다. 최근에 쓴 '스몰 브랜드의 힘'이란 책도 그런 이유로 쓸 수 있었다. 모두가 돈 되는 큰 기업을 지향할 때 작은 회사들을 찾아다녔다. 그 속에 진짜들이 많았다. 회사의 규모와 상관없는 수 많은 구루들을 만났다. 나는 그렇게 '작은 것들'의 가치를 찾아다니는 것이 너무도 즐겁고 신이 난다. 그런 면에서 내가 이안에게 끌린 목적은 순수하다. 적어도 한국 사회에서 그는 보이지 않는 약자인 셈이다. 그도 나처럼 혼자 노는 걸 좋아한다. 보드 게임을 즐긴다. 캐릭터 페인팅에 몰입할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도 조용하기만 할까? 천만의 말씀이다. 비슷한 사람들끼리 만나면 그보다 더 수다스러울 수 없다. 사람을 싫어하기 때문에 혼자 있는 것이 아니다. 각자 삶의 에너지를 비축하는 방법이 다를 뿐 그도 나도 사람을 좋아한다. 그 접점에 보드 게임이 있었을 뿐이다.



나는 조만간 카페 '깔깔 고블린(laughing goblin)에 갈 것이다. 거기서 어느 정도 보드 게임을 배우면 에리카와 함께 이안이 참여하는 모임에 참여할 것이다. 거기서 외국인 친구들을 만날 것이다. 영어를 잘하지 못해도 환영받을 수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문제는 없다. 도미니꼬도 나도 '열린' 사람들이니까. 짧은 영어로도 소통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진 사람들이니까. 스몰 스텝이란 이런 것이다. 거대한 목표를 위한 거창한 실행보다 아주 작고 사소한 첫 걸음을 뗄 수 있는 것, 그것이 내가 가진 '용기'와 '소통'이란 가치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영어를 잘하게 된다면 감사한 일이지만 그러지 않아도 괜찮다. 내가 정말로 바라는 것은 그들과의 진정한 교감이니까. 부디 그들이 나를 귀찮아 하지 않기를. 내가 조금은 더 뻔뻔해질 수 있기를. 그래서 이안과 좀 더 친해질 수 있기를. 보드 게임으로 그와 맞짱을 뜰 수 있게 되기를. (BTS의 노래 가사처럼) 작은 것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거대한 삶의 에너지를 함께 발견할 수 있기를. 그래서 뒷풀이가 끝난 후 헤어지는 자리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


"See you later, Ian"


우리는 곧 다시 만날 것이다.





* 스몰 스텝의 두 번째 이야기, '스몰 스테퍼'의 펀딩에 참여해주세요^^





매거진의 이전글 스몰 스텝, 그 두 번째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