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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펀딩'하면 일어나는 일

생전 처음 펀딩을 시작했다. 방식은 이렇다. 판매자는 자신의 제품의 스펙이나 개발 배경이 되는 스토리를 와디즈와 인디고고와 같은 펀딩 전문 사이트에 올린다. 소비자는 구매를 '예약'한다. 판매자가 목표로 하는 100%가 달성되어야 결제가 되는 구조다. 일정 시간이 지나 후원 금액이 차면 소비자들에게 배달이 된다. 나는 '텀블벅'이란 사이트에 스몰 스텝의 두 번째 이야기, '스몰 스테퍼'란 책을 펀딩했다. 사실 출판사에서 이야기할 때만 해도 책을 판매하는 또 다른 방법인 줄로만 알았다.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미처 알지 못했다.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하루만에 100%를 달성하고 사흘만에 250%를 넘어서고 있다. 스몰 스텝 단톡방의 힘이 컸다. 사이트에 전혀 노출되지 않았는데도 스몰 스테퍼들만의 힘으로 100%를 달성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이 책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알리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때 생각난 것이 지인들이었다.



카톡창의 리스트를 훑었다. 과연 나의 세 번째 책을 기꺼이 축하해줄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한동안 연락이 뜸해던 사람들에게 후원 링크를 보내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두렵고 떨리는 기분이었다. 그렇다. 나는 지금 '책'을 파는 것이 아니라 나에 대한 '평판'을 판매하는 셈이다. 리스트를 따라 한명 한명에게 조심스런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반응은 뜨거웠다. 월요일 오전에만 200%를 초과달성할 수 있었다. 가장 감동적인 반응은 카톡을 보냈는데 전화를 준 사람들이었다. '기획자의 습관'을 쓴 최장순 대표는 와이프가 '스몰 스텝'의 팬이라며 당장 다음 주에 만날 약속을 잡을 수 있었다. 회사 다니던 시절 인턴으로 함께 일했던 J 역시 직접 전화를 걸어 축하의 인사를 전해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갑작스런 카톡에도 기쁜 마음으로 응대해주었다. 진심어린 축하를 느낄 수 있었다. 예전에 다니던 회사의 동료들 반응이 제일 뜨거웠다. 후원 금액이 쌓일 수록 감동은 커져갔다. 그러고보니 한 화장품 회사의 대표가 펀딩의 절반은 친구, 친척이나 지인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라던 말이 새삼 떠올랐다. 펀딩 이거 위험한 것이었구나. 나란 인간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거울 같은 것이었구나. 그 아찔함은 상상이 아닌 현실이 되었다. 그것도 가장 가까운 친척으로부터 말이다.



평소에 허물 없이 이야기한다고 생각했던 친척에게 후원을 요청했다. 축하의 말이 짧았다. 누가 봐도 건성어린 대답임을 알 수 있었다.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됐다. 사실 책 한 권의 후원은 격려와 응원의 성격이 짙다. 내가 이런 카톡을 받았다면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를 가정해 보았다. 아주 이상한 관계가 아니라면 아주 작은 금액으로 축하하는 일이 부담스러울 것만 같지는 않았다. 짧은 톡이 걱정이 되어 배경 설명을 좀 더 해주었다. 그러나  그가 뜻 밖의 서운함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자신이 10년 전에 50만 원의 돈을 빌려 주었으며, 빌린 사실을 모르고 있어서 서운하고, 게다가 책을 후원할 만한 여유가 없다는 짧은 대답이었다. 바로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았다. 10년 전에 내가 돈을 빌렸다니 전혀 기억에 없었다. 물론 추정되는 일은 있었다. 회사를 옮긴 지 1년 만에 공황 발작으로 회사를 그만 두었던 때였다. 1년이 되지 않은 퇴사라 퇴직금도 없었다. 친동생들에게 큰 맘 먹고 전화를 걸던 기억은 생생했다. 하지만 친척에게까지 손을 벌린 줄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당혹감과 난처함, 서운함이 주마등처럼 내 머릿속을 휙휙 지나갔다. 의문도 끊이지 않았다. 그 10년 동안 한 마디 하지 않은 배려에 고맙기도 했지만, 왜 하필 이 타이밍에 그 얘기를 꺼내는지 서운한 마음도 함께 일었다. 바로 계좌를 묻고 송금을 했다. 얼굴이 화끈거려 견딜 수 없었다. 노트북을 닫고 한 동안 멍하니 생각에 잠길 수밖에 없었다.



나라면 어땠을까? 나라면 그 50만 원을 10년 동안 기억하고 있었을까? 왜 진즉에 얘기하지 않았을까? 이런 저런 일로 함께 만난 적이 몇 번은 있었는데... 대뜸 돈 갚으란 얘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알아서 갚기를 바랬을 것이다. 그런 사람에게서 책을 후원해달라는 달뜬 카톡이 왔을 때 그 친척의 기분은 어땠을까? 나라면 그 상황에서 축하보다 돈 갚기를 요청할 수 있었을까. 머릿 속이 복잡해졌다. 잘 못 살아온 기분이 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10년이나 가슴에 담아둘 금액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서운함을 미처 말하지 못하고 끙끙 앓았을 녀석이 안스럽기도 했다. 미안한 마음은 이루 헤아릴 길이 없었다. 그래서 더 속상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진즉에 말해주었더라면, 좀 더 적당한 타이밍에 말해주었더라면, 적어도 축하는 하고 넌지시 그 말을 했더라면 화들짝 놀라긴 해도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그 돈을 갚았을 것인데... (물론 그 이전에도 그 후로도 개인에게 돈을 빌린 경우는 거의 없었다.)



'스몰 스테퍼'는 나 혼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 1년 반 동안 함께 스몰 스텝을 실천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래서 이 책이 판매되는 모든 인세는 '스몰 스텝'을 위해 쓰여진다. 운영진을 통해 관리되고 좀 더 좋은 쓸모를 함께 고민하기로 한 상태이다. 이유는 한 가지였다. 이 책의 주제가 '함께 함'의 가치를 말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스몰 스텝을 혼자 하는 것도 충분히 유익한 일이었다. 하지만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모일 때 만들어지는 에너지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깨달음을 내게 가져다 주었다. 그들을 통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 그들의 격려와 지지가 나를 춤추게 했다. 나의 작은 재주 하나가 그들을 기쁘게 할 수 있는 사실은 또 얼마나 큰 보람을 주었는가. 각각의 사람이 자기다움을 발견하고, 그에 따라 성장하고 변화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일은 감동 그 자체였다. 글을 쓴 사람은 나지만, 이 책의 주인공은 그들이어야 했다. 인세를 함께 나누는 일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앞으로 함께 할 우리의 관계를 더욱 튼튼하게 만들어줄 것이라는 굳건한 믿음 때문이었다.



흔들리는 정신을 다잡고 카톡의 메시지들을 하나 하나 훑기 시작했다. 앞선 친척의 코멘트처럼 짧게 답한 경우는 두 세명 정도였다. 나머지 사람들은 진심으로 이 펀딩을 축하해주고 있었다. 이미 발간된 내 책을 사들고 가는 친구의 사진은 또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가까운 곳에 있어도 몰랐던 친구들은 곧바로 만나기로 했다. 그렇게 약속을 잡은 친구들만 서너 건을 넘는다. 아찔할 하루였다.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과연 내가 이 책을 쓸 자격이 있는지를 되묻는 시간이기도 했다. 요즘 펀딩 사이트는 홍역을 치르고 있는 중이다. 중국에서 버젓이 팔리는 제품을 직접 개발했다며 펀딩에 올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어쩌면 나도 그들 사례처럼 평가를 받는 과정일 수도 있다. 직접 쓴 책이니 중국산으로 오해받을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란 사람, 나와의 관계, 내가 지향하는 가치는 이 펀딩을 통해 아주 냉정하게 평가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이 하루의 경험으로 온전히 경험할 수 있었다. 펀딩 사이트에 올라온 제품들을 하나 하나 둘러 본다. 이들의 이야기는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그 진실을 확인할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 나 역시 그 수많은 상품들 중 하나를 펀딩하는 사람으로써 어떤 답을 할 수 있을까? 답은 한 가지다. 내가 살아온 인생이다. 내가 만들어온 관계들이다. 나는 지금 그렇게 펀딩이라는 이름으로, 내가 살아온 삶을 평가받고 있는 중이다. 이 한 달 간의 여정이 두렵고 떨리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 함께 써 내려간 스몰 스테퍼들의 진솔한 변화와 성장의 이야기에 귀기울여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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