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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도 브랜드가 될 수 있을까?

"아, 그 학교? 유명한 학교인데?"


강의 의뢰를 받았다. 사전 미팅 요청을 받고 학교 이름을 말했다. 주방에 있던 와이프가 돌아보며 놀란 표정을 짓는다. '이우학교'라는 중고등학교였다. 솔직히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검색해보니 기사가 줄줄이 뜬다. 다시 한 번 교육에 무심한 나를 조금 자책해본다. 학교는 집에서 가까운 곳에 있었다. 이 학교와의 연결 역시 스몰 스텝을 통해 이뤄졌다. 그즈음 '푸른보리'라는 아이디가 스몰 스텝의 단톡방에 자주 나타나기 시작했다. 10월의 정기모임에선 뒤풀이까지 함께 했다. 마침 집으로 가는 방향도 같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그저 평범한 중학교 영어 선생님인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그가 바로 이우학교의 교감 선생님이었다. 산 속 깊은 곳에 위치한 학교를 찾아 심사 같기도 하고 면접 같기도 한 미팅을 다른 두 분의 선생님과 함께 했다. 그 두 분 중의 한 분은 세바시에 나온 분이라 했다. 즉석에서 강의 일정이 만들어졌다. 이제 중학생들에게도 스몰 스텝을 이야기하게 된 것이다. 딸에게도 이 사실을 전했다. 그러자 중1인 딸이 차분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아빠, 초등학생은 관심은 있지만 생각이 없어. 고등학생은 생각이 있지만 관심이 없지. 그런데 중학생은 말야... 생각도 없고 관심도 없어."


비로소 내가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 알 수 있었다. 군부대 강의도 해보았고 교장 선생님들을 상대로도 강의해 보았다. 하지만 중학생을 상대로 한 강의는 처음이었다. 뭔가 알 수 없는 늪 속으로 한 발을 넣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글쓰기 모임에서 이 얘기를 했더니 다들 안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학생들을 상대로 강의 경험이 많은 나코리님은 한숨부터 쉬었다. 강의 인생의 마지막이 될 수도, 시작이 될 수도 있다고 친절히? 말해주었다. 그러다 학교 이름을 검색하더니 다른 표정을 짓는다. 이런 학교라면 다를 수도 있겠다고 말한다. 솔직히 나도 속마음은 두려움 반 기대 반이었다. 이들은 이미 '존재'의 의미를 찾는 액티비티를 하고 있었다. 일주일 동안 도전할 작은 프로젝트를 스스로 정하고 이를 직접 실천해 보는 프로그램이었다. 리스트를 보는 순간 스몰 스텝이 떠올랐다. 선생님들과의 사전 미팅 역시 훈훈했다. 말이 통하는 분들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내 아이가 이런 학교에 다닐 수 있다면 좋겠다는 사심이 들 정도였다. 학교의 설립 취지도 역사도 매력 있었다. 도전 정신이 불타올랐다. 강의 인생?을 걸만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이우학교는 사회 운동가, 기업가, 교육운동가, 시민, 교수를 비롯한 100명의 일반인들이 직접 만든 학교이다. 대안학교로 시작했지만 특성화학교로 인가도 받았다. 가장 큰 특징은 자기주도적 학습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학생 자치가 활성화되어있으며, 그에 따라 축제, 운동회, 기행 등등 역시 모두 학생들이 직접 기획한다. 심지어 수업의 시작을 알리는 벨소리까지 공모를 통해 정한다고 했다. 사교육은 전면 금지인 학교다. 입학시에는 학생들의 심층 면접은 물론 학부모 면접까지 본다고 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선생님들의 열린 마음이다. 왜 이들은 내게 강의를 맡길 생각을 했을까? 스몰 스텝을 작심삼일을 넘어 지속할 수 있는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나는 '함께'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중에 학교 로고를 보고 나서야 이 학교가 추구하는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신영복 선생님이 직접 쓰셨다는 학교 이름은 '우'자에 동그라미가 두개 그려져 있었다. 누가 봐도 그 의미가 선명한 글씨였다. 학교 로고는 말풍선이 꽃처럼 모인 형상이었다. '공존'의 '소통'의 의미가 분명했다. '21세기 더불어 사는 삶'이라는 슬로건이 이 모든 추측에 정답을 외치고 있었다.


그날 만난 김주현 선생님의 세바시 강연 '14일 간의 욕구 발견 프로젝트'


학교 같지 않은 건물을 한동안 배회했다. 뛰어오는 아이들을 유심히 바라 보았다. 왠지 어둡고 각진, 삭막한 운동장의 집 근처 학교 몇몇이 떠오른 것도 바로 그때였다. 왜 우리는 학교에서 경쟁만을 배워야 할까. 왜 아이들의 목표는 좋은 학교에 입학하는 것이어야만 할까. 답을 알면서도 가슴이 답답해왔다. 얼마 전엔 전교 1등을 하는 첫째의 친구 엄마로부터 와이프에게 전화가 왔다. 잘 아는 소아정신과가 있냐는 조심스러운 질문을 하기 위해서였다. 어쩌면 이게 우리나라 교육의 현실인지도 모른다. 이른바 '헬조선'의 시작인 것이다. 그런데 그 해답은 언제나 정시와 수시를 오가며 오락가락한다. 아이들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을 사람들이 모른다. 인간이 가장 인간답게 사는 방법은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그 속에서 자신만의 고유한 가치를 발현하는 삶이다. 자신이 가진 고유한 특장점으로 이웃과 사회를 이롭게 하는 삶이다. 한 마디로 가장 '자기답게' 살아갈 때 사람은 살아나는 법이다. 나는 그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었다. 나답게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나를 움직이는 힘이라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타인과 경쟁하지 않고, 자신만의 고유한 나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주변 사람들과도 어울려 살 수 있다는 것을 정말로 정말로 말해주고 싶은 것이다.



강의자의 무덤이래도 괜찮다. 어쩌면 내가 해온 모든 경험이 이 날을 위한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모든 편집자의 출간 원칙은 중학생도 읽을 수 있는 책이라고 한다. 활자화되어 전할 수 있는 지식은 모름지기 그렇게 쉬운 것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중학생도 알아듣고, 중학생도 실천할 수 있다면, 그것이 그야말로 '진짜' 지식이라고 믿는다. 스몰 스텝을 전하고 싶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다른 삶의 가능성이, 제 3의 대안이 있음을 말해주고 싶었다. 어쩌면 이번 강의는 내 삶의 작은 모멘텀이 될 것만 같다. 선생님들과 식당에서 식사를 하며, 그 선생님들의 소소한 질문에 함께 공감하며, 햇볕 따뜻한 학교를 걸어나오며, 지하철을 찾아 나오는 20여 분의 산책을 하는 동안 끊이지 않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나는 중학생들도 공감할 만한 선명하고 매력적인 삶을 살아왔는가. 12월의 어느 날, 스무 명의 학생 들 앞에서 나는 내 인생의 수능시험을 다시금 보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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