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부처를 죽이고 가는 법

아주 오래 전, 당시만 해도 아주 잘 나가던 조그만 기독교 관련 잡지사의 편집장을 교회 화장실에서 우연히 만난 적이 있었다. 마치 연예인을 보는 듯한 경외심으로 말도 못 붙이고 그 자리를 나왔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런데 이후 그분과 함께 일했던 사람을 회사에서 만나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그분에 관한 숨은 이야기 몇몇을 알게 되었다. 좋은 얘기였으면 했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그 잡지사의  소유권과 관련한 내부 분쟁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 편집장은 회사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건 내꺼야!"


유독 이 외침이 크게 들렸던 건 아마 일반 회사가 아니라 기독교 잡지사였기 때문이었으리라. 그 잡지에 뻬곡했던 글들이 주는 메시지와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었으리라. 사람의 욕심이 가진 민낯을 본 건 그 이후로도 여러 번 있었다. 오랫동안 몸 담았던 브랜드 전문지에서는 에디터의 이름(byline이라고 한다)을 글에 싣지 못하도록 했다. 그럴 경우 에디터들이 자신의 글에만 집중한다는 이유였다. 그래서 호평을 받았던 그 글이 어떤 에디터의 글이었는지 사람들은 지금도 알지 못한다. 오직 편집장의 이름만 선명히 기억될 뿐이다.




얼마 전 이안이라는 미국인이 여자 친구와 함께 스몰 스텝 모임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벌써 두 번째다. 짧은 영어로 1시간 이상 대화를 이어가자니 난감했던 기억이 지금도 기억에 선하다. 그런 그가 12월에 있을 송년회 때도 참석할 거라고 한다. 스몰 스텝이 궁금해서 내게 물어보고 싶다고 한다. 다시 한 줄의 식은 땀. 그런데 그의 눈에 비친 모임의 모습은 컬트(cult)스러웠다고 한다. 마치 어떤 종교의 모임 같은 이미지로 비친 모양이었다. 그 중심에 내가 있었음은 물론이다. 아, 그렇게 보일 수도 있었겠구나... 묘한 책임감과 반성의 감정이 교차했다. 다. 내 의도과 상관없이 그렇게 보였을 수도 있겠다는 자각을 한 것이다.


스몰 스텝이란 모임을 한 지 1년을 넘어간다. 스무 개 가까운 단톡방들이 저마다의 색깔을 가지며 조금씩 성장해가고 있다. 사진방에서는 전시회를 준비하고 있고, 낭독방에서는 연극을, 글쓰기방에서는 60일 간의 시즌4를 마치고 쫑파티를 준비중인 요즘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내가 이 모든 모임의 주인인양 행세를 하고 다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마치 내가 이룬 성과처럼, 그들의 바이라인을 지우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이 모든 멋진 모임의 중심에 내가 있다고,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어쩌면 그런 생각이 이 모임의 건강한 성장에 해를 끼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 것도 그 즈음이었다.


자기 발견과 브랜딩을 위한 글쓰기 모임 '쓰닮쓰담'


모임 시작 때만 해도 운영진의 모임 개설에 대한 기준은 몹시도 엄격했다. 동일한 주제의 방은 개설을 금지하고 메인 방에서는 일체의 외부 광고를 금지했다. 덕분에 모임 '청정'하다는 평까지 들을 정도였다. 하지만 500명 정도의 규모를 한계로 더 이상 성장하지 않았다. 나는 그제서야 그것이 나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이 운영진의 결정이건 무슨 이유건 간에, 나는 이 작은 모임의 맹주처럼 성장의 열매를 혼자 독차지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되었다. 과연 이 스스로의 한계를 어떻게 뛰어넘을 수 있을까?


 

석헌님이 운영하는 '2쪽 읽기방' 관련 기사, 글쓰기방의 성재님이 쓴 글이다.



이제는 어떤 식으로든 각각의 방을 스몰 스텝이란 이름에서 자유롭게 하려고 한다. 나만 열매를 독차지할 수 없다. 16개에 달하는 모든 방이 스몰 스텝처럼 성장하기 원한다. 그 방의 방장들이 나처럼 또 하나의 브랜드를 만들 수 있기 바란다. 어쩌면 그 방들 중에는 스몰 스텝 보다 더 커지는 방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어떤가. 그 모임들이 스몰 스텝이란 그늘 아래 머물러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원래의 목적은 이 모임이 커지길 바란 것이 아니었다. 모임에 참석한 사람이 각각의 자기다움을 발견하고 성장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였다. 원래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라도 이제는 '스몰 스텝'이라는 모임의 이름을 허물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부처를 만나려면 부처를 죽이고 가라고 했다. 그 말이 어쩌면 이런 뜻은 아니었을지. 이제 기쁘게 그들을 풀어줄 때가 되었다. 적어도 내 마음 속에서만큼은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학교도 브랜드가 될 수 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