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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식집 마실 이야기 (1), 더 비기닝

1500평의 거대한 고깃집이 한 순간에 무너졌다. 가게 오픈 후 1년 반 만에 터진 광우병 때문이었다. 달리 손 쓸 도리가 없었다. 나쁜 일은 함께 온다고 했던가. 함께 투자한 서너 개의 사업도 동시에 무너지기 시작했다. 10억 원 가량이 투자금도 함께 사라졌다. 한 때 100억 대의 매출을 올리던 회사의 대표였던 그에겐 견딜 수 없는 시련이었다. 마주하기 힘든 현실이었다. 고깃집을 정리하기까지의 매일의 시간은 지옥과도 같았다. 자리에 누워도 잠이 오지 않았다. 다음 날 새벽같이 가게로 나서는 일이 끔찍하기만 했다. 그나마 남아 있던 한 줌의 자존심, 자존감은 눈 녹듯 사라지고 없었다. 그는 마치 불타는 갑판 위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죽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어떻게 죽느냐가 문제였다. 갑판 위에 남아 불에 타 죽거나 바다로 뛰어들어 빠져죽든가 둘 중의 하나였다.



평범한 백반집, 마실을 인수하다


그런데 아직 그에게 감당할 시련이 남아 있었던 것일까? 그도 아니면 운명이었을까. 마실의 인수를 권유받은 때가 바로 그 즈음이었다. 식당 운영에 지친 가게 주인이 집요하게 따라 다녔다. 고깃집 실패로 워낙 크게 데인 그는 다시 외식업을 시작할 마음이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러나 주인의 고집과 인내심도 만만치 않았다. 그가 아니면 안된다는 식의 일방적인 권유가 계속되었다. 그러자 조금씩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자신만 생각하면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형제처럼 믿고 따르던 후배가 사업 실패 후 천안으로 내려왔다. 다른 일을 하던 형님 역시 함께 할 일이 없는지 그에게 물어왔다. 이상한 책임감이 그의 마음을 다시금 흔들어 놓기 시작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왠지 모르게 이들의 인생을 책임져야 할 것만 같았다. 은행 지점장인 친구와 전 주인을 앞에 두고 한 가닥 남은 실낱 같은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결국 지금의 식당에 전세권 설정을 하고 1억의 돈을 대출받기로 했다. 나머지 1억은 6개월 후에 갚는 조건이었다. 돌이킬 수 없는 배수의 진을 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마실과 함께 한 긴 여정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2006년 3월, 드디어 마실을 인수했다. 마실은 평범한 백반집이었다. 청국장을 기본으로 10여 가지의 반찬이 전부였다. 주 고객인 고령층의 재방문 기간이 현저하게 길었다. 한 마디로 손님이 자주 찾지 않는 스러져가는 식당이었다. 젊은 손님들의 반응은 더 시큰둥하기만 했다. 직원들의 사기는 바닥을 치고 있었다. 한 달 매출은 3000만 원 정도, 그럼에도 재료비는 무려 36%에 달했다. 식당 참모를 데리고 전국의 한정식 집을 찾아다녔다. 뭔가 변화가 없이는 유지조차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고민 끝에 요리 연구가를 찾아갔다. 퓨전 한정식 메뉴를 의뢰하기 위해서였다.


2000만원을 투자해 약 3개월 동안 새로운 메뉴를 개발했다. 생존을 위한 절박한 선택이었다. 이미 2억을 투자한 마당에 그 정도의 투자는 고민스럽지도 않았다. 어차피 모 아니면 도라고 생각했다. 2006년 5월, 드디어 새로운 메뉴가 마실의 메뉴판을 장식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손님들의 반응은 냉정하기만 했다. 어떤 손님은 상차림을 보고 바로 일어나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바뀐 메뉴에 호의적인 손님들도 있었다. 10명 중 2명, 주로 젊은 손님들이 좋은 점수를 주고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부정적인 평가였다. 가게에 머물러 있는 일이 두려워 견딜 수 없었다.



두려움이 만들어낸 창조적 단절의 시간


점심 시간이 시작되면 그는 식당을 나와 주변을 배회했다. 친구를 만나고 산을 찾고 절을 찾았다. 그마저도 지겨워지면 도서관을 찾았다. 그리고 2시간 정도가 지나면 식당에 전화를 걸었다. 매출이 좀 있는 날이면 콧노래를 부르며 식당으로 돌아왔다. 손님이 없는 날이면 세상 모든 것을 잃어버린 기분으로 하루 종일 우울했다. 그렇게 6개월의 시간이 다시 흘러 11월이 찾아왔다. 단풍놀이와 같은 나들이로 대부분의 식당은 비수기를 맞는 때였다. 그런데도 매출이 3000만 원에서 7500만원까지 오르고 있었다. 백반집을 퓨전 한정식으로 바꾼 선택은 그의 선택이 맞아떨어진 셈이었다. 무려 5년 만에 맞딱뜨린 첫 성과였다. 그는 불타는 갑판 위에서 바다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그 결정은 옳은 결정이었다. 그제서야 조금씩 시장이 보이기 시작했다. 손님들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우아하게 사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조금씩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이전과 같은 실패를 다시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 결심을 하나 둘씩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사실 그는 식당을 하면서도 장 보는 일이 싫었다. 손님 접대는 더더욱 귀찮았다. 가게를 찾아준 단골 손님이 청하는 한 잔을 거절할 수 없었다. 인사라도 나누고 나면 청첩장이 날아왔다. 그래서 선택한 일은 고객 응대를 전담하는 직원을 고용하는 일이었다. 메뉴 개발을 위해서 영양사를 고용했다. 조리사로도 충분한 일에 왜 돈을 쓰냐며 주변의 반대가 이어졌다. 하지만 이러한 내 결심의 배경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자고로 리더란 자신이 잘 못하는 일을 위임하는데 있다고 생각했다. 꼭 필요한 사람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일이 그가 생각하는 사장의 일이었다. 결코 자신을 돕지 않겠다던 와이프를 식당으로 불러 모든 돈 관리를 맡겼다.


하지만 보통의 식당 사장들이 해야 할 일을 위임하니 또 다시 수익이 나지 않았다.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알게 된 시점은 그 후로도 약 1년의 시간이 지난 후였다. 식당의 모든 일들이 전문가의 손길을 타기 시작하자 시스템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사장이 일일이 관리하지 않아도 저절로 식당이 운영되는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 대신 그는 정말로 중요한 일에 매진하기로 했다. 자신이 잘 할 수 있고 좋아하는 일이었다. 하면 할수록 신이 나는 일이었다. 조금만 해도 결과가 보이는 일이었다. 바로 매일의 매출을 일일이 체크하는 일이었다. 그는 어느 식당에나 자리를 잡고 있는 포스기에 집중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이 결정이 마실의 운명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곤 생각도 하지 못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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