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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에 가면 보리밥을 찾으세요

식당은 누가 봐도 외진 교외의 공터 위에 세워진 듯 했다. 청주시 외곽의 공장들이 즐비한 어느 샛길을 돌아 언덕을 올라갔다. 언덕길 위를 오르자 비로소 군데 군데 세워진 차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평일의 오후, 그것도 도보로는 접근이 힘들 것 같은 식당은 특별한 것이 없어 보였다. 이름은 대산 보리밥, 로고 위에 선명한 카피가 한 눈에 들어온다. '청주에서 엄마가 제일 행복한'... 무슨 뜻일까? 청주에 있는 엄마들을 위한 밥집이란 뜻일까? 하지만 식당에 들어서자 반전 있는 규모에 또 한 번 놀란다. 청주 사람들 모두가 점심을 여기서 먹고 가는 것 같았다. 내부는 왁자지껄하면서도 청결하고, 고즈넉하면서도 밝고 넓었다. 조그만 보리밥집의 시골스러움을 찾아볼 길이 없었다. 하지만 이 식당의 디테일은 거기서부터가 시작이었다.



식당 입구엔 사장님의 실패 스토리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양식 조리학과를 나온 그가 말아먹은? 식당만 여러 개다. 레스토랑과 파스타집, 김밥집, 한 때는 순댓국집을 하기 위해 친척의 식당에서 실습을 한 적도 있었다고 했다. 밤 10시에 잠자리에 들면 1시가 되어 불을 당겨야 했다. 그리고 나서 1시간 뒤에 다시 일어나 돼지 머리를 뒤집어야 했다. 여차저차한 과정을 거쳐 그가 결국 정착한 메뉴는 다름 아닌 보리밥이었다. 그는 정말 보리밥집은 하기 싫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메뉴로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에 쉬운 일은 없었다. 기껏 보리밥집이 자리를 잡으니 재개발 사업 때문에 식당을 옮겨야 했다. 이제 마흔을 조금 넘긴 나이, 스물 넷에 시작한 식당은 이제 월 매출 1억을 훌쩍 넘기는 탄탄한 식당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식사를 하기 위해 대기실로 갔다. 제일 먼저 들리는 소리는 뻥튀기 기계에서 나오는 경쾌한 파괴음이었다. 시장에서나 봄직한 기계가 쉴새 없이 뻥튀기를 튕겨내고 있었다. 보리로 만든 간식거리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미숫가루로 만든 슬러쉬가 무료로 제공되고 있었다. 대기자의 손도 입도 쉴 틈이 없게 만들었다. 대기자들의 공간은 생색을 낸 좁은 곳아 아니었다. 40인치는 되어 보이는 TV 한 대의 기다림이 무료한 손님들의 눈을 즐겁게 하고 있었다. 외진 공터에 세워진 식당의 장점이 유감없이 드러나는 장면이었다. 여유로운 공간에 마음까지 너그러워진 것일까. 입구에는 대산 보리밥의 공식적인 휴무일이 빼곡히 기록되어 있었다. 이 식당의 종업원들은 평일 하루를 온전히 쉰다. 직원들을 위한 사장의 배려다. 하루 매출을 생각하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그런데도 이 식당은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신기한 일이다. 그 비결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궁금해진다.



식탁으로 안내를 받았다. 그제서야 아이언맨 모자를 쓴 젊은 사장님이 우리를 맞이한다. 소쿠리에 담긴 고추와 상추, 양념장이 스테인레스 그릇에 익숙한 나의 시선을 사로 잡는다. 그릇 하나하나가 흔히 볼 수 있는 멜라닌 그릇이 아니다. 청국장은 직접 띄운다고 했다. 밥알은 질척이지 않고 고슬고슬함이 살아 있었다. 청주에서 엄마들이 제일 행복한 이유를 물었다. 이곳 식당에 임산부가 찾아오면 고등어 한 마리가 서비스로 나온다고 했다. 수험생 엄마들에게도 서비스가 뒤따른다. 나이를 막론하고 청주의 엄마들은 이곳을 사랑할 것이다. 적어도 이 식당에서만큼은 한끼 식사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테니 말이다.



물론 이 식당에도 위기는 있었다. 특히 요즘 같은 연말이 어렵다고 했다. 그는 지금도 매일 매일의 매출을 꼼꼼히 기록한다. 수 년간의 매출 데이터가 고스란히 쌓여 있다. 한정식집 마실의 박노진 대표를 만나 여러 번 수업을 반복해서 들었다고 했다. 그 결과 해마다 11월이 되면 식당이 보릿고개가 다가온다는 사실을 알았다. 김장 때문일 수도, 수능 때문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날씨가 경기를 핑계 대지 않았다. 단골과 신규 손님으로 구분해보니 11월은 신규 손님이 확연히 줄어든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막 추위가 시작되는 11월, 사람들은 굳이 차를 타고 가서 보리밥을 먹지 않는다. 대신 인근에 있던 단골들이 움직인다. 그는 손님이 많은 여름부터 단골들을 관리했다. 손님이 많다고 식당문을 일찍 닫지도 않았다. 그 결과는 고스란히 매출로 돌아왔다. 올해 11월의 매출은 전년 대비 50%나 성장했다.



왜 어떤 식당은 파리를 날리고, 같은 메뉴를 파는 다른 식당은 건물을 올리는 것일까? 그저 열심히만 일하면 식당은 잘 될 수 있을까? 식당을 잘 운영하는 비결은 일 잘하는 사람과 어떤 상관 관계가 있을까? 대산 보리밥은 청주에서는 이미 브랜드가 되어 있었다. 한끼 가벼운 식사를 위해 그가 들이는 보이지 않는 노력은 기대 그 이상이었다. 그는 보리밥이라는 메뉴를 탐탁치 않아 했었다. 하지만 그가 잘 하는 파스타 전문점은 한 달 만에 문을 닫았다. 어쩌면 식당에 중요한 것은 입지나 메뉴가 아닐지도 모른다. 지금도 그의 음식에 대한 집착은 보통 사람의 상상을 초월한다. 그의 입맛에 맞지 않는 음식은 식단에 오르지 못한다. 그는 오늘도 매일 매일의 매출을 기록하며 성장의 가능성을 가늠한다. 수 년간의 데이터를 살피며 메뉴를 바꾸고 손님을 연구한다. 옷깃을 여미고 작은 식당들에서 배운다. 나는 내 일에서 이들만큼의 열정과 연구를 불사르고 있는가. 한낮 밥집이라며 무시하지는 않았는가. 그들은 내가 무시하고 넘어가기엔 너무도 배울 것이 많은 '살아 있는' 브랜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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