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의 한 벽면이 꽃으로 가득했다. 테이블 보의 작은 꽃 무늬, 식당 곳곳을 장식한 다양한 종류의 식물들, 심지어 쌈야채들을 키우는 수경재배 코너까지 일관된 메시지가 식당 안을 흐르고 있었다. 꽃을 사랑하자. 꽃길을 걷자. 꽃보다 아름다운 나를 사랑하자. 문득 사진을 찍을 때면 항상 꽃가지 하나를 들고 찍는 우리나라의 어머니들 특유의 포즈가 뇌리에 떠올랐다. 그렇다. 이곳 식당의 타겟은 그렇게도 선명했다. 4,50대의 아주머니들이 모여 삼삼오오 수다를 떨 수 있는 곳. 좁지도, 그렇다고 크지도 않은 식당이지만 테이블 배치가 눈에 띄게 여유 있었다. 종업원들의 동선은 물론, 고객들을 위한 배려라고 했다. 목청 높은 아주머니들의 목소리가 상상 속에서도 선명했다. 고개가 끄덕여졌다. 하지만 이곳을 특징 짓는 가장 큰 이벤트는 따로 있었다. 바로 식당에서는 생각하기 힘든 연주회를 한다는 이야기였다. 클래식 연주자들을 불러 이문세의 노래를 연주한다. 어느 날인가는 트롯트를 연주했다. 그 날은 아주머니들이 일어나 춤을 추었다. 그림이 그려졌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모두를 위한 이벤트는 아닐 것이다. 아직도 앳된 모습이 남아 있는 젊은 사장님의 센스가 놀라워보였던건 바로 그 지점이었다. 자신의 기호보다는 고객을 이해하려는 모습, 겉멋이 아닌 진짜 '장사'를 하는 상인의 모습을 만난 건 바로 그 지점이었다.
'청년'자가 들어간 식당은 가지 않는다는 격언이 있다. 겉멋을 부리는 젊은 사장님들을 빗댄 말일 것이다. 장사가 장난인가 하는 준엄한 메시지도 함께 들어 있었다. 모두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손님이 아닌 자신의 기호, 자신의 센스가 과하다보면 문제가 생기곤 한다. 그러나 이곳 한정식집 '밥상 편지'의 주인에게선 그런 겉멋을 부린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시종 일관 진지했다. 고객을 이해하려는 열심이 가득했다. 군대를 제대하자마자 바로 뛰어든 외식업, 그 오랜 경험이 이같은 교훈을 그에게 주었을 것이다. 철저히 고객을 이해하라. 그들의 마음을 읽어라. 밥상 편지라는 이름조차 예사로이 들리지 않은 건 그 때문이었다. 밥상이라는 말과 편지라는 말이 생뚱맞은 조합처럼 느껴진 건 잠깐이었다. 모든 것을 4,50대의 니즈에 맞춘다면 옳은 선택이었다. 시대의 정서가 살아있는 말이었다. 요즘 세대는 '편지'라는 말이 가진 아날로그적 감성을 떠올리기 쉽지 않을 것이다. 한땀 한땀 정성들여 쓴 손글씨를 말하면 멋진 캘리그라피를 먼저 떠올리지 않을지. 하지만 이 식당에 타겟으로 하는 아주머니들의 정서는 선명하다. 그 시대의 감성이 충만한 네이밍이었다.
하지만 그 감성이 그저 이름에만 머물렀다면 무척이나 단조로웠을 것이다. 실제로 이 식당에서는 편지를 쓰는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소중한 사람에게 엽서를 보내는 이벤트다. 얼마나 참여하는지보다 중요한 것은 식당 전체에 흐르는 일관된 메시지다. 타겟 고객이 명확하니 컨셉이 선명해진다. 컨셉이 선명해지니 이벤트의 내용까지 분명해진다. 4,50대 고객들의 정서적 만족을 충만하게 채우는 것, 이 식당의 목표는 그 한 가지에 맞춰져 있었다. 메뉴의 구성 역시 멋 보다는 푸짐함이었다. 5인이 와서 4인상을 요구하는 베짱?은 이 세대만의 특징이다. 고각의 단품 메뉴에 열광하는 20대 고객들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하지만 밥상편지는 넉넉한 자리 배치만큼이나 상차림도 풍요로워 보였다. 그래서 메뉴명도 '한상차람'이다. 못 먹고 못 입던 시대를 묵묵히 지나온 세대, 먹는 것에서만큼은 풍성함에 목마른 세대, 나는 고객의 니즈를 정확히 읽어내는 이 젊은 사장님의 내공이 하루 이틀에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브랜딩의 핵심은 문제 해결이다. 사람들의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것이다. 이 원칙은 어디에도 통용된다. 심지어 한끼 식사를 해결하는 식당에서도 적용된다. 4,50대의 여성 고객들이 원하는 것이 '맛'만은 아닐 것이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정서적 허기'를 달래는 것이다. 한 마디 쉬운 말로 수다를 떨 수 있는 곳이다. 집안에서 겪었을 온갖 상념과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것이다. 그러니 집밥과는 달라야 한다. 한 턱 내는 푸짐함이 생명인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저 허기를 달래기 위해서라면 언제나 외로이 해결했을 찬 밥 한 공기로도 충분할지 모른다. 하지만 좋아하는 사람과 웃고 떠들 수 있는 여유, 한 턱의 기쁨, 거기에 더해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춤까지 허용되는 공간이라면, 3층에 위치한 입지가 대수일까. 그들은 이 곳 식당을 기꺼이 찾아올 것이다. 아니 이미 찾아오고 있었다. 오픈한지 이제 1년, 식당이 매출은 꾸준히 오르고 있다고 했다. 자리를 잡은 식당 특유의 여유로움이 느껴진 건 바로 그 때문이었다.
식당은 많다. 하지만 마음의 허기까지 달래주는 식당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허기를 달래고 배를 채우는 것이 전부라면 이런 고민은 아마도 사치스러운 것이리라. 하지만 식당 역시 마음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수경재배를 통해 나오는 야채의 양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싱싱하게 자라는 야채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싱싱함을 강조하는 메시지는 충분히 전달될 것이다. 연주회를 하는 날은 한 달에 한 번 정도나 될까 말까. 그래도 소문은 다시 사람을 부르는 법이다. 이곳 인천 송도에서 연주회를 하는 식당은 아마 이곳 뿐일 것이다. 그 유일함이, 유니크함이 이 식당이 가진 가장 큰 무기인 것이다. 많은 이들이 식당을 준비할 때 메뉴와 입지를 고민한다. 문제는 '그것만' 고민한다는 것이다. 누구나 던질 수 있는 질문은 같은 답을 도출하기 마련이다. 작은 식당에도 브랜딩이 필요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고객을 이해하고, 그들의 니즈를 파악하고, 그에 걸맞는 컨셉을 도출한 후, 일관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 이것이 브랜딩의 알파요 오메가이자 모든 것이다. 가치를 전달하는 과정이다. 문제를 해결해주는 방법이다. 차별화가 시작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차별화가 어려운 것은 이 과정을 송두리째 무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첫 출발의 미세한 차이가 큰 차이를 만들어낸다. 한정식집 '밥상편지'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 식당은 그렇게 조금씩 브랜드가 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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