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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참치 전문점의 '컨셉'을 도출하는 법

참치집 맞은 편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문제는 가게가 있는 동네와 단지를 가로지르는 펜스도 함께 생겼다는 점이었다. 일식 경력 20년, 참치 전문점만 10년을 해온 그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손님이 빠르게 줄었다. 점심 메뉴를 시작했다. 보통 참치 전문점은 오후에 문을 열어 새벽까지 장사를 한다. 하지만 9,900원 초밥 메뉴를 시작하며 장사 시간이 훨씬 앞당겨졌다. 그러자 손님도 달라졌다. 4,50대 남성 고객이 주였던 이전과 비교해 여성 손님이 부쩍 늘었다. 하지만 매출의 성격만 달라졌을 뿐 폭발적인 변화는 없었다. 그 사이 그의 가게 있는 동네엔 참치 전문점이 예닐곱 개로 늘었다. 그는 지금 이 장사를 지속할지에 대한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가장 큰 경쟁력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자기 자신이라고 했다. 군대를 다녀온 후 대학도 가지 않고 뛰어든 장사였다. 음식만큼은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이 치열한 시장에서 그것만으로는 승부가 어렵다는 것을 그도 알고 있었다.



모델로 삼고 있는 식당을 물었다. 별다른 망설임 없이 식당 이름 하나가 튀어나왔다. 용인에 있는 '고기리 막국수'였다. 이유가 뭐냐고 물으니 '철학'이 있어서라도 했다. 음식에 대한 고집, 자부심... 그걸 구체적으로 어떻게 알 수 있는지를 다시 물었다. 그러자 이곳 막국수집은 성수기인 여름이 아닌 가을에도 장사가 잘 된다고 했다. 이유인즉슨 이랬다. 메밀은 가을에 난다. 햇메밀이 나는 철도 가을인 것이다. 그래서 가을에는 헷메밀로 만든 막국수를 판다고 했다. 쌀도 햅쌀이 가장 맛있듯, 햇메밀로 만든 막국수가 가장 맛있다며 광고를 한다는 것이다. 이 전략은 시장에서도 통했다. 평일에도 이곳 막국수집은 웨이팅 시간만 1시간을 넘긴다. 평범한 막국수 메뉴가 특별해지는 순간이었다. 막국수답지 않은 고급스런 상차림도 주목할만 하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평범한 참치 전문점 사장님 입에서 유일한 경쟁력으로 '철학'을 꼽았다는 사실이 더 신기해보였다. 그가 말하는 철학이란 무엇일까? 그가 가진 철학은 또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고객들에게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말이 많지 않은 그의 침묵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경기도 수원에 위치한 '서영진 참치'는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참치 전문점이다. 이 가게의 주 고객은 4,50대의 남자 직장인들이다. 그들이 참치 전문점을 찾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모처럼 찾아온 귀한 손님을 접대하고 싶을 때, 친한 친구를 간만에 만났을 때, 중요한 계약을 앞두고 있을 때, 그렇다고 일식집을 찾기엔 부담스러울 때, 그 때 사람들은 참치 전문점을 찾는다. 우리는 이곳에서부터 문제의 해결을 위한 아이디어를 고민했다. 사람들이 참치 전문점을 찾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들이 가장 가려워하는 니즈의 본질은 어디에 있는가, 그들이 참치 전문점에서 가장 신나고 행복한 순간은 어디일까... 그렇게 고민을 이어가다보니 '계약'이라는 키워드를 도출할 수 있었다. 이곳 서영진 참치에서 가장 신나는 순간은 어렵사리 따온 계약에 사인을 하는 순간이리라. 그 순간에 특별히 준비한 참치 부위를 내놓으면 어떨까, 계약이 성사될 때마다 참치 모양의 스티커를 식당의 벽에 붙여 보면 어떨까, 메뉴판을 계약서처럼 디자인해보면 어떨까, 종업원이 양복을 입고 서빙하면 어떨까, 복권도 당첨이 많이 된 곳을 사람들이 굳이 찾아가는 것처럼 계약이 성사되는 참치 전문점으로 소문이 난다면 이곳만의 경쟁력을 갖출 수 있진 않을까?



브랜드란 차별화된 문제 해결의 방법을 제시하는 일련의 과정이다. 이를 좀 더 용이하게 위해 분명한 컨셉을 도출하고 그에 맞는 마케팅과 홍보 전략을 전개하기 마련이다. 제주를 품은 이니스프리는 청정 화장품으로 자리매김했다. 제주산 녹차와 화산송이를 광고 전면에 내세우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서영진 참치를 차별화할 컨셉은 어떻게 도출할 수 있을까? 가게와 주인이 가진 특장점, 사람들이 간절히 바라는 그 무엇의 교집합에서 무엇을 뽑아낼 수 있을까? 가벼운 브레인 스토밍으로 시작한 아이디어는 그후로도 한참을 이어졌다. '계약'이 컨셉이 되는 참치 전문점, 계약이 성사되면 특수 부위가 서비스되는 참치 전문점, 그렇게 만일 소문이 이어진다면 굳이 계약을 하기 위한 미팅 자리가 아니라도 사람들이 기대하는 마음으로 이 가게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이것은 아이디어에 불과하다. 그리고 대부분의 아이디어들이 그렇듯 다음 날이면 시들해지거나, 여러가지 현실의 문제에 부딪혀 실제로 실행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굳이 참치 주인과 이런 얘기를 길게 나눈 데에는 이유가 있다. 그가 그렇게 중요시하는 음식에 대한 철학은 상상 속의 것이어선 안된다는 점이었다. 사람들의 눈에 선명히 보여야 한다. 손에 잡히는 것이어야 한다. 사람들의 입을 통해 스토리의 형태로 전해질 수 있어야 한다. 그가 모델로 삼은 고기리 막국수처럼, 그 흔하디 흔한 막국수와는 다른 스토리를 장착할 수 있어야만 한다. 그것이 배달하는 참치 전문점만 예닐곱 곳에 달하는 이 치열한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돌파구일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아이디어의 시작은 '자신'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고객'의 니즈에 가닿을 수 있어야 한다. 만들면 팔리는 시대는 오래 전에 지나갔다. 비주얼이 되었건 스토리가 되었건, 그가 가지고 있는 음식에 대한 자부심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들려줄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 상상 속의 철학은 그저 한낱 음식점 주인의 고집으로만 남을 수도 있다. 이 가게의 앞으로의 선택이 내심 기다려지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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