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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재님, 이제 스위치를 켜세요!

어느 날 중년의 한 남자가 나를 찾아왔다. 함께 식사를 하고 차를 마셨다. 누구나 알 법한 대기업에서 일하던 그가 이제는 코칭을 배우고 책을 쓰고 있다고 했다. 여기까지는 평범한 만남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었다. 많은 강연을 경험했지만 명함을 받아가는 사람은 언제나 극소수였다. 그들 중에서 정말로 다시 만나는 사람은 1%도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 1%의 사람들이 결국 어떤 식으로든 변화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었다. 나 같은 무명 작가를 찾아와 조언을 구하는 사람이라면 틀림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왔을 것이다. 그는 실제로 점을 찍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 점이 이어질 때가 올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 시기가 언제일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쓰닮쓰담'이라는 글쓰기 모임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1기 모임은 자신의 글을 써와서 함께 읽고 합평을 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와 12주, 6번의 글쓰기 모임을 함께 했다. 2기는 8만원의 환급 프로그램이었다. 그는 당일 일본행 비행기표를 예매한 상태에서도 글쓰기 모임에 참석할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이 모임에도 개근을 한 것은 물론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그의 글이 점점 재미와 감동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화룡 점정은 그의 마지막 글이었다. 그는 스스로 선택한 원서 한 권을 직접 번역하고 있는 중이다. 그날의 일본행은 그 원저자를 직접 만나기 위한 여행이기도 했다. 나는 비로소 직감할 수 있었다. 그의 삶에 스위치가 켜지기 시작했다는 것을.



이 글의 특징은 양파 껍질처럼 벗기면 벗길수록 새로운 이야기들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일본을 싫어하는 딸의 조언을 듣고 아빠는 일본행 출장을 간다. 하지만 거기서 자신을 환대하는 일본인 친구를 만나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한다. 굳이 계산을 자처하는 일본인 테츠지 상의 말 한 마디에는 딸의 마음을 읽은 일본인의 츤데레 같은 유머가 그대로 녹아 있었다. 8년 전 중풍을 맞은 그의 삶에 어떤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 가뜩이나 양국 간의 관계가 얼어붙은 지금, 멀리서 날아온 한 한국인을 맞이하는 거친 인상의 한 남자, 그리고 그를 통해 자기 삶의 스위치를 켜 가는 중년 남자의 변화. 글에는 감동과 유머는 물론 생생함과 디테일까지 그대로 녹아 있었다. 얼굴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사진을 찍기 위해 불편한 팔로 굳이 사진을 찍어주려는 테츠지 상의 마음, 그 따뜻함이 한 중년 남자의 삶에 한 줄기 비처럼 스위치를 켜고 있다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었을까?



글쓰기 모임 이전의 그는 '망설이는' 사람이었다. 뭔가 주저주저 하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가방 하나를 달랑 메고 일본으로 떠나는 그의 모습에서 나는 그의 삶의 온도가 이전과는 달라졌다는 사실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런 그의 에너지는 글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었다. 그는 최근에 적지 않은 연봉을 제시받고도 그 일을 거절했다고 했다. 이전처럼 오직 돈을 위해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하는 삶을 살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의 삶을 움직이는 진짜 힘은 무엇일까? 최근 그의 아내는 이제 본격적으로 돈을 벌었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했다고 했다. 그런 아내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여보, 난 그냥 돈을 벌라고만 하면 힘을 낼 수가 없는 사람인 것 같아. 내가 그동안 투자해서  공부한 것들을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 그 결과를 많은 돈으로 보여주었으면 좋겠어. 당신이 이렇게 말해주어야 더 힘을 낼 수가 있을 것 같아."


그를 움직이는 힘은 무엇일까? 아마도 테츠지 상의 모습에서 큰 감동을 얻은 것은, 그를 움직일 힘의 원천을 비로소 발견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는 따뜻한 사람이다. 남을 돕고 세우는 일에서 힘을 얻는 사람이다. 그는 삶의 절반을 세상이 원하는 일, 가족이 원하는 일, 상사나 동료의 인정을 받는 일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이제는 그 자신을 위한 삶을 살 때가 되었다. 그런 새로운 삶을 찾기 위한 노력을 그는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가 원하는 삶의 가치도 이제는 명확해졌다. 이제 그는 새로운 사진을 찍을 시간이이다. 테츠지 상이 중풍으로 굳은 손을 들어 어렵사리 플래시를 켜는 장면이 선명히 떠오른다. 그렇게 찍은 사진은 밝게 빛나는 환한 그의 표정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자신도 미처 몰랐던, 진짜 그의 모습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의 삶은 앞으로도 더욱 크고 환하게 빛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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