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그들은 왜 '휴직'을 선택했을까?

처음 사람책 모임을 갔을 때만 해도 오붓한 느낌이 있었다. 하지만 다섯 번째인가 혹은 여섯 번째인가, 다시 찾아간 모임의 현장은 시장통을 방불케 했다. 무리를 넘어 군중을 만난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스무평이 채 안 될 것 같은 좁은 공간에 60여 명의 사람이 모여들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책상을 모두 들어내고 의자를 세팅했는데도 여전히 공간은 부족했다. 모임을 알게 된 경로도 다양했다. 남자친구나 남편을 데려온 사람, 행사 진행자인 나코리님의 인맥을 통해서 들어온 사람, 스몰 스텝의 기존 멤버도 많았지만 다른 모임에서 온 사람도 적지 않았다. 나는 궁금했다. 왜 이들은 평일날 저녁, 회사를 마치자마자 약수역 인근의 이 먼 길을 들불처럼 돌아돌아 찾아오는 것일까. 나는 호기심 가득한 눈길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분명 이들이 이곳을 찾은 데는 내가 모르는 어떤 이유가 있을 것만 같았다.



이날의 강연 주제는 '멀티 페르소나'였다. 휴직을 하고 다양한 사이드잡을 경험한 세 명의 연사가 각자의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었다. 아이가 태어나자 주저 없이 퇴사를 결심한 남자, 회사의 눈치를 무릎쓰고 자신의 삶을 찾아나선 남자, 휴직을 하면서 한 권의 책을 쓴 여자, 이름도 성별도 달랐지만 한 가지 공통 분모를 이야기하자면 그들을 둘러싼 에너지였을 것이다. 휴직이 가능한 회사를 다닌다는 것 자체가 특권일 수도 있을 터였다. 장기간 근무 경험이 있어야 할 것이고 회사의 복지 시스템이 갖춰져야만 가능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환경에서도 감히 휴직을 결심하는 이들은 소수일 수 밖에 없다. 어느 강연자의 말대로 휴직은 회사 내에서 아웃사이더가 되는 가장 확실한 길이 될 수도 있을 터였다. 하지만 이들은 회사의 조연이 아닌 주연의 삶을 살고 싶어 하는 이들이었다. 사람들은 아마도 페로몬 같은 그 '용기'에 이끌려 이곳을 찾았을 것이다. 강연의 내용보다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들이 바로 그런 용기를 '실천'했다는데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내 옆자리에는 누구나 알 법한 대기업에서 21년을 일한 분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는 최근까지 마을 버스를 몰았다고 했다. 우리나라 대중 교통 시스템은 마을 버스를 거쳐 시내 버스, 시내 버스를 거쳐 광역 버스를 모는 형태로 단계가 구분 지어져 있다. 어느 날 내가 타는 마을 버스 기사의 통화 내용을 통해 자세한 월급까지 알고 있는 나였다.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궁금해서 옆자리 참여자에게 슬쩍 물어 보았다. 그는 대기업에서의 삶을 '견딜 수 없어서' 나왔다고 했다. 그 말이 비수처럼 날아와 내 가슴에 꽂혔다. 주변에 약을 먹는 동료들이 적지 않다고 했다. 나는 나도 모르게 그런 사람들 중 하나가 나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었다. 괜찮은 듯 태연하게, 오늘도 지하철에 오르는 이들 중 많은 이들이 같은 마음을 것이다. 먹고 살기 위해, 처자식이 있어서, 달리 방법을 몰라 오늘도 수많은 직장인들이 '이런게 사는 거'라며 술잔을 기울이고 상한 영혼을 달래가며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다. 과연 이들의 삶에, 우리의 삶에 제 3의 대안은 없는 것일까?



그 날 만난 퇴직자들은 휴직을 했다. 용기 있는 선택이였다. 휴직한 후 그들은 제주도 여행을 했다. 태양광 사업을 했다. 마라톤을 했다. 책을 썼다. 하지만 그들 중 몇몇은 그러한 선택이 만들어낸 변화는 '크게 없다'고 했다. 솔직함이 오히려 매력있는 강연이었다. 거창하게 무언가를 가르치려 들지 않아 오히려 마음 편했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그날의 연사들처럼 휴직을 탄탄히 보내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휴직을 잠깐의 쉼표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너무 아까운 선택이 아닐까. 회사로 다시 출근하는 첫 날의 새벽 길을 떠올리며 한숨 짓는 연사를 보며 그런 의문이 쉴새 없이 들었다. 그 기간 동안 가장 자기다운 삶을 만나고, 구체적인 사이드 프로젝트를 실행해보고, 언젠가는 나와야만 하는 퇴사를 위한 프로젝트를 좀 구체적으로 계획하고 실행할 방법은 과연 없는 것일까? 이들처럼 휴직을 휴직답게 보내는 사람들이 모여 머리를 맞댄다면 훨씬 더 멋진 프로젝트들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퇴사 3년 차의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누군가는 회사를 사랑해 뼈를 묻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처럼 회사 안이 아닌 밖이 어울리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회사 안인지, 밖인지가 아니다. 가장 '자기다운'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자신이 주인인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회사 안에서도 소모품처럼 일하지 않는다. 회사 밖에서도 결코 낙오되지 않는다. 나 역시 회사를 나와 수없이 많은 사람과 기회들을 만났다. 세 권의 책을 쓰고 네 번째 책을 준비 중이다. 나를 찾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다. 내 이름을 걸고 일하는 지금이 그렇게도 행복하다. 이유는 한 가지다. 가장 나다운 삶을 찾아가고 있어서다. 그러니 휴직을 한다면 나다운 사람을 고민해보자. 오늘 나를 움직이고 살아있게 하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내가 행복한 오늘은 어떻게 만들어갈 수 있는가, 타인에게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삶을 살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하는가. 부디 당신의 휴직이 그러한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최고의 시간이 될 수 있기를. 굳이 휴직이 아니더라도 그 질문에 자신있게 답할 수 있기를.

매거진의 이전글 와이프가 찌개를 태운 까닭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