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은 짧았다. 결정은 빨랐다. 스몰 스텝을 실천하는 사람들, 스몰 스테퍼에 관한 책을 쓰고 싶다고 했을 때의 천그루숲 출판사의 반응이었다.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이 됐다. 지금껏 함께 일한 어느 출판사보다도 자주 만났다. 피드백도 많았다. 사실 내가 이 출판사를 통해 책을 내기로 한 가장 큰 이유는 천그루숲이 저자를 대하는 애티튜드 때문이었다. 몇몇 지인들로부터 저자를 챙기는 이 출판사의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저자들이 함께 한 워크샵이 이상하게 부럽기만 했다. 그래서 언젠가 한 번은 이곳에서 책을 내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히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왔다. 이런 저런 이유로 기존 출판사, 여타의 출판사와의 계약이 속도를 내지 못할 때 천그루숲은 첫 번째 만남에서 이미 출간을 결정할 수 있었다. 올해의 책 출간 일정이 모두 잡혀 있다던 출판사는 해가 가기 전에 책을 내자고 했다. 느긋하게 마음을 먹고 있던 나는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제 출판을 위한 마지막 수정 작업을 눈 앞에 두고 있다.
천그루숲의 일하는 방식은 생각보다 디테일 했다. 세 번 정도는 구성을 모두 바꿔야만 했다. 본문에 대한 집요한 수정 요청은 혀를 내두르게 했다. 하지만 모든 요청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납득이 되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모든 수정 작업에서 저자의 완벽한 동의를 끌어낸다는 점이었다. 저자보다도 열심히 본문을 살피는 눈길이 그대로 느껴졌다.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문맥이 맞지 않는 글을 발견했을 때는 부끄러운 마음마저 들었다. 독자의 입장에서 이해가 힘든 부분은 집요하게 수정을 요청했다. 이만하면 됐지 싶었던 부분들도 다시 한 번 살필 수밖에 없었다. 한땀 한땀 수를 놓듯이 글자를 새겨넣는 그런 기분이었다. 이렇게 촘촘히 수정이 가해졌다는 사실을 독자들은 알지 못할 것이다. 몇 번의 작업을 통해 마법같이 하나의 글을 변화시키는 편집자의 능력에 감탄하던 나였다. 하지만 이번 작업 만큼은 기대 그 이상이었다.
한 권의 책은 원고를 마감하는 데서 결코 끝나지 않는다. 어쩌면 그건 한 권의 책을 만들기 위한 작업의 시작일 뿐일지도 모른다. 좋은 책을 만나고 싶다면 좋은 편집자를 만나야 한다. 편집은 오타를 수정하고 문장을 가다듬는 작업을 넘어서는 영역이다. 어쩌면 새로운 글을 완성하는 작업만큼이나 놀라운 능력을 요하는 정교한 과정이다. 필요없는 부분은 들어내고 중복되는 부분은 과감히 삭제한다. 앞뒤가 맞지 않는 문장의 논리적 구조를 맞추고 때로는 새로운 제안을 통해 전에 없던 문장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 작업이 고될수록 책은 좋아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수백 수천 번 원고를 보아온 저자가 그 작업을 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야말로 원고를 보지 않은 안 본 눈이 필요한 순간이 온다. 그때 필요한 것이 능력 있는 편집자다. 천그루숲과 함께 일하면서 그러한 협업의 묘미를 다시 한 번 배울 수 있었다. 조판을 위해 마지막 표지 확인을 하면서 감사의 마음을 천그루숲에 전한다. 부디 이 출판사의 격을 높이는 좋은 책으로 평가받기를. 더 좋은 책으로 다시 일할 수 있기를. 크리스마스 다음날 거짓말처럼 다가올 이 책을 떨리는 마음을 기다리며 이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