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100일이었다. 아무래도 힘이 들었다. 한 달은 너무 짧았다. 그렇게 '황홀한 글감옥' 시즌 4의 수감 기간은 60일로 정해졌다. 특별한 계산이 있었던 건 아니다. 21일, 혹은 66일이면 하나의 습관이 자리잡는다는 말에도 끌리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어차피 우리는 앞으로도 매일 글을 써갈 테니까. 한 줄이라도 괜찮으니까. 그렇게 글쓰기가 우리 삶의 일부가 되기 바랬다. 그래서 제안한 것이 5000원의 수감료이다. 그 누구도 아닌 우리 자신을 위해서, 60일 간의 글쓰기 여정이 끝나면 서로를 위해 선물을 해주기로 했다. 그 덕분일까? 100여 명의 사람이 이 글감옥에 기꺼이 수감되어 주었고, 60여 명의 사람은 수감료까지 내가며 이 여정에 참여해주었다. 무려 5명의 완주자가 나왔다. 대단한 숫자다. 해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두 달간 매일 글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그래서 우리는 달라졌을까? 몇 가지 분명한 것은 글쓰기가 조금은 쉬워졌다는 것이다. 비로소 일상에서 글감을 찾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함께 쓰는 즐거움이 글쓰기의 가장 큰 동력임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글쓰기는 마치 우리 몸의 근육과도 같다. 잘 쓰지 않으면 퇴화하게 마련이다. 자주 쓰니 쉬워졌다. 노트북의 빈 화면과 반짝이는 커서가 두렵고 낯설지 않게 되었다. 무엇이든 익숙해지면 쉬워지는 법이다. 글실력이 엄청나게 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글쓰기가 쉬워졌다는 것은 엄청난 변화다. 무엇이든 첫 마음 먹기가 힘든 법이다. 그 다음은 어떻게든 해내는 것이 인간이다. 60일 간 글을 쓰다보면 글이 써지는 시간과 장소에 자연스럽게 눈을 뜨게 된다. 나의 경우는 새벽 시간이다. 다른 시간에 비할 바 아니다. 그 누구의 방해도 없는 새벽 4시의 혹은 5시의 작은 방은 글쓰기 최적의 시간이자 장소다. 아마 글감옥 수감자들은 이 말이 뜻하는 바를 조금은 알지 않을까?
글감을 찾는 일도 상대적으로 쉬워졌다. 사실 우리의 글 실력이 늘지 않는 이유는 쌓아둔 글감이 없기 때문이다. 땔감이 없으면 불을 피울 수 없다. 아무리 좋은 난로가 있다 해도 기름이 없으면 허사이다. 그런데 매일 글을 쓰지 않는 사람은 이 글감의 중요성을 의외로 잘 알지 못한다. 이삼일, 삼사일 정도는 글감 없이도 글을 쓸 수 있다. 하지만 닷새가 지나고 열흘을 넘게 글을 써보라. 당장 무엇을 써야할 지가 막막해지는 날이 올 것이다. 하지만 매일 글을 쓰는 사람은 비로소 일상의 소재들에, 만나는 사람들에, 특별한 경험들에 눈 뜨게 된다. 글을 쓰기 위해서라도 주변을 둘러 보게 된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오히려 기뻐하게 된다. 전에 없던 새로운 곳을 가보면 사진부터 찍기 바쁘다. 내일 쓸 글의 소재를 발견했다는 기쁨과 안도감 때문이다. 새 신발을 산 사람에게는 타인의 신발만 보인다. 스마트폰을 장만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사람들의 핸드폰만 보이게 마련이다. 그렇게 우리들의 마음의 글창고에 글감이 쌓이기 시작한다. 글창고의 풍성함이 글쓰기의 실력이다.
함께 쓰는 즐거움을 비로소 깨닫게 된다. 수감자는 100여 명이지만 매일 글을 쓰는 사람의 수는 스무 명 정도이다. 사실 그 정도만 되어도 모든 글을 읽기란 사실상 어려운 일이다. 좋아요와 댓글을 다는 일도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하지만 글쓰기의 리스트를 보는 것만으로도 묘하게 자극이 되었다. 깜빡하고 넘어가려다가도 아차 싶어 노트북을 찾는다. 글쓰기 리스트에 내 이름을 올리기 위해서다. 하루쯤 빠진다고 해서 누가 확인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다름아닌 나 자신과의 약속이다. 약속을 지키는 일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고 내가 쓴 글의 주소를 bitly로 압축해서 단톡방 화면에 올린다. 그래야만 하루 일을 끝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미뤄둔 숙제를 한 것 같은 뿌듯함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거나, 혹은 시작하곤 한다. 삶이 풍성해지고 윤택해진다는 말은 바로 이런 때를 두고 말하는 것은 아닐까?
오늘 새벽에도 새로운 글을 쓴다. 잠들기 전에는 항상 이런 고민을 하며 잠자리에 들곤 한다. '내일 뭐 쓰지?'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지?' '누가 무슨 말을 했던가?'... 그 고민의 결과를 한줄 한줄 풀어놓는다. 그렇게 쓰다보면 어느 새 짧은 글 하나가 뚝뚝하고 완성되곤 한다. 나의 경우는 124일째, 슬기로운 수감 생활의 노하우를 하나씩 발견해간다. 그리고 스스로 이런 질문을 던진다. 나는 왜 이렇게 매일 글을 쓰고 있는가? 이유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쓰고 나면 느낀다. 글을 쓰는 시간 만큼은 가장 나답다는 사실을 매번 새롭게 깨닫곤 한다. 시간은 흘러가지만 낵 쓴 글들은 그 시간들을 잡아 작은 우물 하나를 만든다. 자기 성찰과 깨달음을 위한 우물이다. 이런 우물이 많아질 수록 내 삶은 더 풍성해진다. 글을 쓰는 일은 혼자만을 위한 작업이 아니다. 일기가 아닌 대부분의 글은 타인에게 보이기 위한 글이다. 사람들은 내 우물을 찾아 그 물을 마신다. 새벽에 길어온 신선한 경험이자 깨달음의 생수이다. 조금 늦게 일어난 사람도, 조금 게으른 사람도 함께 누릴 수 있는 깨끗한 글의 우물이다. 60일 간의 여정은 어쩌면 그런 저마다의 우물을 하나씩 만들어가는 가슴 뿌듯한 작업 아닐까? 그래서 나는 오늘도 새벽에 일어나 한 편의 글을 쓴다. 그것은 쓰지 않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행복한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