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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밤이 가기 전에

1인 기업가의 주말은 바쁘다. 어쩌면 가장 바쁘다. 대부분의 밀린 일들을 이때 처리하기 때문이다. '월화수목금금금'이 혼자 일하는 사람에게는 현실이 된다. 다행인 것은 누군가의 강요가 아닌 내가 선택한 시간이라는 점이다. 내가 선택한 시간에 내가 결정한 일을 한다. 그런데 이 차이가 의외로 크다. 불평을 하거나 짜증을 낼 대상이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다. 어떤 일의 주도권을 갖는다는 것은 일을 대하는 자세부터 다르게 한다. 영광도 비판도 모두 내 몫이다. 일하는 옷 매무새를 달리 할 수밖에 없다. 나는 어느 새 이렇게 일하는 방식에 익숙해지고 있다. 어제도 그랬다. 많은 일들의 마감이 있었고, 그 와중에 강의 약속까지 있었다. 오늘도 그랬다. 새벽부터 달리기 시작한 일이 오후 8시를 지나고 있다. 주말에 못다 한 일들이 고스란히 월요일로 넘어왔다. 요일의 감각을 느낄 수 없다. 그래도 나는 오늘의 글쓰기를 잊지 않았다.


굳이 이렇게까지 쓸 필요가 있을까, 생각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하루쯤 글쓰기를 잊는다 해서 비난할 사람도 없다.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다. 내가 엄청난 책임감을 갖고 이 글을 쓰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나는 몇 개의 마감을 마치고 키보드를 마주하고 있다. 나와의 약속이기 때문이다. 혼자 일하는 사람에게 생명은 약속을 지키는 일이다. 그 누구와의 약속보다 중요한 것이 나 자신과의 약속이다. 내게 글을 쓴다는 것은 단순히 생각과 지식과 정보를 토해내는 작업만이 아니다. 내가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일이다. 글을 쓰는 동안 나는 다시 깨어난다. 남의 일이 아닌 내 일을 하는 기쁨과 보람을 누린다. 글쓰기는 내 인생의 주도권을 다시 가져오는 의식(Ritual)이다. 이 시간을 통해 나는 일에 떠밀리지 않는 법을 배운다. 내가 약속한 일을 해내는 뿌듯한 만족과 보람을 얻는다. 그러고보니 알겠다. 1인 기업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내 인생의 주인공으로 살아갈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나는 회사를 다니던 십 수년동안 한 번도 내가 주인공인 삶을 살지 못했다. 글쓰기는 비로소 내게 내 인생의 주인공으로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바쁜 와중에도 비를 뚫고 강연을 다녀왔다. 어제의 서울 도심은 마치 전쟁터와도 같았다. 억수같이 비가 내리는 데도 롯데 백화점과 홍대 인근은 사람들로 넘쳐났다. 수능 시험을 마친 아이들과 가족들이 모두 몰려 나온 것일까? 기적처럼 강연을 마치고 다시 돌아온 명동 거리를 혼자 걸었다. 한국 사람보다 외국 사람이 더 많은 곳에서 숨을 고르며 걸었다. 혼자 식사를 하고 다시 거리를 나섰을 때도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다지 외롭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여러 프로젝트로 이어진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씩 떠올렸다. 나는 혼자 일하지만 혼자 일하지 않는다. 나를 돕고 지지하는 사람들, 내가 의지하고 신뢰하는 사람들로 둘러 싸인 채 살아가고 있다. 내 강의를 들은지 1년이 지난 분이 나를 다시 찾는다는 것, 그리고 그 인연들이 또 다른 사람들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 그 일의 주인공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 이것이 축복이 아니면 무엇일까 하고 걸었다. 명동의 거리는 한산했다.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다. 나는 그 거리를 걸으면서도 오늘 쓸 글의 내용을 떠올리고 있었다. 이 밤이 가기 전에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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