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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듀 2019, 와인을 샀다

토요일 아침 9시 집을 나선다. '쓰닮쓰담' 3기 주말반 세 번째 수업이 있는 날이다. 2시간 반의 수업을 마치고 인근 기사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다. 숨은 맛집이다. 뜨끈한 청국장으로 속을 데우고 '영화 인문학' 수업을 받는다. 글 쓰는 사람들이 함께 모이니 두 시간이 순삭이다. 수업을 정리하고는 바로 운영진 모임이다. 한 해 동안 수고한 분들과 함께 저녁을 먹는다. 5시에 시작된 수다는 길헌님이 전주로 내려가는 버스 시간 30분 전에야 끝이 났다. 아침의 차가운 공기는 온데 간데 없다. 집으로 돌아오니 밤 11시를 넘어 있었다. 여유로울 수도, 무료할 수도 있을 토요일이 이렇게 분주하게 바뀐 건 다 사람들 때문이다. 스몰 스텝이라는 이름으로 모인, 무시무시한 에너지로 가득한 바로 이 사람들 때문이다.



시든 꽃 같은 삶이었다. 나이 마흔 중반을 넘겨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이유 없는 사랑을 받았다. 그런 해의 정점이 2019년이었다. 스몰 스텝 모임에 나온 사람들은 입을 모아 이야기한다. 무언가 에너지를 받아가는 거 같다고. 영문을 알 수 없지만 그것은 사실이다. 좋은 데 어떻게 설명할 길이 없다. 뚜렷한 목표 달성을 위해 모인 모임도 아니다. 하나같이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모이면 어디서 솟아났는지 모를 에너지에 우리도 모르게 휩싸인다. 마치 데모하는 시위대의 한 가운데 선 느낌이다. 이상한 자신감과 뜨거움이 저도 모르게 솟아난다. 그 절정은 지난 21일 있었던 송년회가 피크였다. 그날도 토요일 오후 1시에 집을 나서 밤 9시까지 모임을 계속했다. 실제 모임은 오후 4시부터 5시간 계속되었다. 그 시간이 짧다는 피드백에 우리 운영진은 기겁을 했다. 즐거운 비명이었다.



함께 저녁을 먹고 와인을 샀다. 나는 커피맛처럼 와인맛도 모른다. 그러나 주인의 선택에 맡긴 와인 맛은 우리들 입맛에 딱이었다. 나는 그 이유를 안다. 좋은 사람과 함께 마시기 때문이다. 아무런 조건이나 댓가도 없이 지난 1년 간 우리는 수고 아닌 수고를 했다. 그 소중한 헌신에 감사할 따름이다. 새해에는 어떻게든 열매를 맺어 보답하고 싶다. 더 크고 대단한 모임을 기대하는 건 아니다. 더 끈끈하고 실속 있는 모임으로 성장해가길 바랄 뿐이다. 시든 꽃은 물을 주면 살아난다. 지친 사람은 오직 사람으로만 다시 세울 수 있다. 도구나 소모품으로서의 쓰임새가 아닌, 비슷한 관심사와 가치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모이면 폭발이 일어난다. 말이 통하는 사람들과 만난다는 것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축복이다. 그 기쁨을 맛본 사람이라면 헤어나올 수 없다. 축복의 늪이다. 내게 스몰 스텝은 그런 모임이었다. 다시 한 번 함께 한 이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당신들이 시들어가는 사람 하나를 살렸다. 이제는 나도 그렇게 사람을 살리고 싶다. 그래서 와인을 샀다. 달콤하고 부드럽고 여운으로 가득한 맛이었다.









*이토록 멋진 사람들을 책으로 다시 만나고 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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