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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맥과 와인 사이

친구가 소주잔을 포갠다. 두 잔이 교차하는 지점까지만 소주를 따른다. 그 만큼의 소주를 맥주 잔에 따른다. 소맥을 마는 방식이란다. 간만에 친구를 만났다. 와이프의 직장 이동으로 부산 살던 친구가 주말 부부가 되었다. 그래도 한 달에 두어 번은 용인으로 올라온다. 사흘간 설거지만 했다는 친구가 그 동안의 회포를 풀어놓는다. 오랫동안 소식이 끊겨있던 친구들 이야기가 맛있게 익어가는 삼겹살과 갈매기살 사이로 자연스럽게 베어든다. 서울에 올라오기까지 수 년 동안 하루가 멀다 하고 만나던 친구들이다. 잘 사는 친구도 있고 못 사는 친구도 있다. 행복한 가정을 이어가는 친구도 있고 이혼의 위기를 오가는 친구도 있다. 둘 다 가진 친구를 찾기 어렵다. 그게 그렇게 힘든 일이었던가. 여러 명의 친구들 모습이 10년 전, 20년 전 얼굴로 묘하게 오버랩 된다.




간만에 와인을 마셨다. 1년 간 수고한 스몰 스텝 운영진과 송년회를 겸한 회식 이후의 일이었다. 이런 저런 이유로 3명만 남아 함께 와인을 골랐다. 그러고보니 이렇게 따로 만나 술 한 잔 한 적이 좀체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봐야 고작 1년 반 정도의 시간. 그 짧은 시간에 이렇게 친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여겨진다. 나이 들어 친구를 사귄다는게 불가능한 일인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이들과는 그게 가능할 것 같았다. 이런 묘한 연대감과 친밀함은 도대체 어디서 왔을까? 그건 아마도 생각과 가치관이 비슷해서 일 것이다. 특히나 길헌님은 달마다 있는 행사 참여를 위해 전주에서 올라오곤 했다. 정기모임을 제외하고도 얼마나 많은 행사들이 있었는지 모른다. 그런 그를 서울로 이끈 힘은 대체 무어이었을까?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주는 알 수 없는 에너지 때문은 아니었을까?




10년을 만나도 어제 만난 것 같은 친구가 있다. 1년을 만났는데도 10년을 만난 것 같은 친구도 있다. 함께 한 시간이 친구를 만든다. 비슷한 생각과 가치관이 또 다른 의미의 친구를 만든다. 이 둘 중 어느 한 쪽이 더 가치있다고 말할 수는 없는 법이다. 각각의 이유로 소중한 친구들이다. 진정한 부자를 만드는 세 가지 조건이 있다고 한다. 친밀한 관계, 건강,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 이 세가지라고 한다. 그래도 이 중 한 두가지는 지키고 있는 셈이니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참고로 나는 술을 즐기지 않는다. 워낙에 술을 좋아하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아직도 가능하면 술을 멀리하게 만들곤 한다. 그러나 좋아하는 친구가 말아주는 소맥은 사양하지 않았다. 소주에 비하면 훨씬 비싼 와인을 고르는 데도 주저하지 않았다. '뭣이 중헌지'를 이제는 알았기 때문이다. 연말과 연초를 잇는 소중한 순간 두 종류의 친구를 만났다. 소맥과 와인의 맛처럼 어느 한 쪽의 손을 들어주기 힘든 멋진 시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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