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당신에게 '성공'이란 어떤 의미입니까?

구찌에서 MD로만 4년, 무려 20년 동안 명품 브랜드에서 일해온 한 사람이 있었다. 회계 분야를 제외한 거의 모든 분야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일찌감치 미국와 이태리에서 유학한 덕분이었다. 그런 그녀가 이제는 한국으로 돌아와 40년 간 일궈온 아버지의 사업을 돕고 있는 중이다. 동생이 맡아 키워온 이 회사는 신발의 밑창을 만든다. 이 분야에선 사실상 독보적인 브랜드다. 그러는 동안 부산의 신발 산업은 줄곧 내리막길을 치달아 왔다. 생존 자체가 기적에 가까웠다. 그녀는 아버지와 동생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고 있는 중이다. 런칭 역시 한국이 아닌 미국에서 시작할 예정이다. 그러면서 한 편으로는 내게 책 한 권의 집필을 의뢰해왔다. 40년 된 이 브랜드의 역사를 한 권의 책으로 정리해달라는 요청이었다. 사실상 아버지를 향한 헌정의 의미였다. 선한 의도만큼이나 그 과정도 즐거웠다. 저점을 찍고 조금씩 살아나고 있는 우리나라의 신발 산업은 물론, 명품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팔리는 지의 과정을 이렇게 자세히 들을 기회가 언제 또 다시 있을까? 인터뷰가 계속될수록 이 브랜드를 향한 나의 호감과 호기심은 커져만 갔다. 결국 브랜드란 그 뒤에 그림자처럼 존재하는 사람이 만들고 있기 때문이었다.


당신에게 '성공'이란 무엇입니까?


70년 인생을 살고 자식들로부터 책 한 권을 헌정받는 기분은 과연 어떤 것일까? 그녀의 아버지는 지금도 수영을 하고 틈틈히 동영상 프로그램인 프리미어를 배우러 다닌다. 언젠가 그에게 '성공'이란 무엇인지를 조용히 물어본 적이 있었다. 주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 것, 원할 때면 언제든 여행을 다닐 수 있는 것, 자식들로부터 여전히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라 했다. 좋은 날도 있었고 고통의 날도 있었다. 70여 명에 이르는 직원들을 모두 보내고 두 세명의 남은 직원과 함께 입안이 모두 헐도록 뛰어다닌 날도 있었다. 어렵게 일궈놓은 공장이 새까맣게 타버린 일도 있었다. 중국의 저가 공세에 밀린 신발 산업의 몰락이 하루 이틀 된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는 그 와중도 나폴레온 힐과 같은 성공한 저서의 본가인 미국을 찾아 배움의 열정을 불살랐다. 돈이 목적이었다면 진즉에 접었을 사업이었다. 아들에게 사업을 물려준 이유도 그가 너무도 신발을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아들에게 줄 수 있는 조언도 '견디라'는 메시지가 전부였다. 그러던 와중에 이제는 딸까지 자신의 업을 이어받아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어 보겠다고 나선다. 이 과정을 지켜보는 나는 묘한 부러움을 숨길 수 없었다. 어제는 그녀가 문득 이런 말을 던졌다.


"돈이 성공의 목적인 분들은 정작 성공하고 나면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더군요. 그런데도 저희 아버지는 투자처를 고민하고 계세요. 새로운 일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한 분이시죠."


그 많은 신발 업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이 말을 전하는 그녀의 눈빛에는 아버지를 향한 존경과 사랑의 마음이 흘러 넘치고 있었다. 나는 이런 사람들을 적쟎게 알고 있다. 우리의 안중에 없는 작은 성공을 이룬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절대 우리가 알 수 없는 분야에서 독점에 가까운 지위를 누리며 그야 말로 부자가 된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문제는 그들이 수십 억 정도의 자산에 다다른 이후에는 목표를 상실해버린다는 점에 있었다. 그들은 자신의 업을 브랜드로 승화시키려 애쓰지 않는다. 아주 작은 사업을 하나 해도 브랜드에 목숨 거는 이태리 사람들과 비교되는 대목 중 하나다. 80년 대의 이태리 역시 장인들이 수작업으로 제품을 만드는 유럽의 생산 공장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금은 프랑스와 자웅을 겨루는 명품 브랜드의 본가가 되었다. 몰락한? 부산의 신발 산업과 비교해보면 눈에 띄는 대목이다. 그 많은 신발 업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한때의 성공에 취해 문어발식 확장과 묻지마 투자를 하는 동안 브랜드를 만들어낸 기업은 손을 셀 수 있을 만큼 적었다. 성공 자체도 어렵지만 성공 이후가 더 문제였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떨까? 10억, 100억의 자산을 가지면 그 이후에는 무얼 할까? 우리 중 누구도 이 문제를 진지하게 배우지 못했다. 어떻게 나답게 살아야할지를 미처 배우지 못한 것처럼.


우리는 왜 평생 돈의 노예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우리에겐 아직도 성공의 기준이 모호하다. 부자가 되고 싶어하지만 왜 그래야 하는지 모른다. 일단 부자가 되고 나면 고민해보겠다는 말은 내게 익숙한 대답이다. 일단 성공하고 나면 브랜딩을 고민해보겠다는 말과 같은 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왜 평생 돈의 노예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부자들의 눈으로 보면 200만 원의 월급과 1000만 원의 월급의 차이는 거기서 거기일 뿐이다. 아무리 연봉이 높아도 자유가 없는 하루의 삶은 똑같기 때문이다. 진짜 부자들은 '뭣이 중헌지'를 알았다. 그래서 딸을 미국으로, 이태리로 유학 보낼 수 있었다. 불 탄 공장이 채 복구되기도 전에 미국 현지 답사를 위한 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다. 명절이 다가오면 친척들이 귀향하기 쉽도록 일일히 기차표를 예매해 미리 보내오던 그녀의 아버지였다. 그런 아버지를 닮은 두 자녀는 이제 또 한 번의 새로운 도전을 눈 앞에 두고 있다. 그 여정이 내심 기대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그건 이 세 명의 사업가들이 일궈나가는 3부작의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 사람은 Founder로, 한 사람은 Builder로, 또 다른 한 사람은 Frontier로 각자의 이야기를 아직도 만들어가고 있다. 나는 그들의 삶을 올겨 쓰며 성공과 부자의 조건을 다시 정의할 수 있었다. 돈으로는 결코 배울 수 없는 아름답고 멋진 지혜였다.








* 작지만 가치 있는, 진짜 성공한 브랜드들의 이야기를 더 만나보고 싶다면... :)


매거진의 이전글 어떻게 '골목식당'이 변하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