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시동' 관람 후기
영화 '시동'을 보았다. 전혀 기대하지 않고 보았다. 그래서였을까? 뜻밖의 재미가 있었다. 세상 모든 일에 반항적인 주인공 택일이 군산에 있는 조그만 중국집에서 배달 알바를 시작한다. 그곳에서 단발머리를 한 채 짜장면을 만드는 마동석을 만난다. 누가 봐도 맨 밑바닥 삶을 사는 사람들의 고군분투기를 다룬 영화는 중반쯤에서 몇 개의 반전을 만든다. 그게 뭔지는 직접 보는게 좋을 듯 하다. 하지만 마동석이 맡은 거성의 역할은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한 때 조폭의 두목이었다. 군산에 숨어든 그를 한 무리의 깡패들이 직접 찾아온다. 결국 분란을 일으킨 다른 조폭들을 정리한 후 그는 칼침을 맞은 채로 근처의 중국집 주방을 찾는다. 그리고 직접 만든 짜장면을 중간 보스에게 대접하는 것으로 자신의 조폭 생활을 정리한다. 그는 결국 군산의 짜장면 집으로 다시 돌아간 것이다. 그때의 거성은 단발머리 가발이 아닌 주방장 모자를 쓰고 있다. 그야말로 자신의 새로운 인생에 시동(Start up)을 건 것이다.
나 역시 브랜드 전문지에서 글 쓰는 일을 했다. 우여곡절 끝에 회사를 나와 혼자 되었을 때 맨 먼저 한 일은 조그만 화장품 브랜드를 찾은 일이었다. '스킨미소'라는 이름의 이 브랜드가 내게 살 길을 내어 주었다. 바로 그 날로 네 식구가 살아갈 일감을 주었으니까. 그 일이 아니었다면 아내의 요구대로 나 역시 영화 속 택일처럼 편의점 알바로 인생의 2막을 시작했을지 모를 일이다. 그 뿐 아니었다. 이 브랜드의 사장님은 약 1년 가까이 네 다섯 개의 회사에 나를 소개해 주었다. 나 역시 그렇게 주어진 일들에 최선을 다했다. 그 중 한 회사는 지금까지 3년 이상 함께 해오고 있다. 인생의 새로운 '시동'을 걸 수 있는 키를 주신 그 대표님은 지금도 내가 쓴 브런치 글을 페이스북에 공유하면 맨 먼저 '좋아요'를 눌러 주신다. 나는 호시탐탐 그 은혜를 갚을 기회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화장품은 오로지 '스킨미소' 것만을 쓴다. 아마도 이 선택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영화 '시동'을 관통하는메시지는 '어울리는 일' 찾기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툭하면 어울리는 일을 하라며 상대방을 몰아붙인다. 하지만 정작 그 사람은 그 일이 어떤 일인지 알 수가 없다. 배달 일을 하지만, 사채업자 일을 하지만, 중국집 주방 일을 하지만 확신이 없다. 뭔가 이 일이 어울리지 않는데 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거성, 즉 마동석은 결국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일이 조폭이 아니라 중국집 주방장 일임을 깨닫는다. 딸을 일찍 여읜 채 자살을 시도하는 중국집 사장을 살린 이가 그다. 주인공 택일과 함께 군산으로 내려온 빨강머리 여학생이 중국집 딸의 교복을 입고 비로소 학교를 다닌다. 이 동화 같은 영화의 메시지는 너무나도 선명하다. 자신이 원하는 일을 찾으라는 것이다. 남의 시선은 의식하지 말고 자신의 삶을 살라는 메시지다.
어제는 소상공인을 위해 만들어진 기관의 어느 팀장님을 만났다. 그곳에 모인 600여 명의 사장님들을 인터뷰하고 글을 써달라는 요청이었다. 내가 지난 3년 가까이 홀로 해오던 일이었다. 돈이 되지 않고 폼도 나지 않는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요청을 해오는 개인과 기업, 단체의 문의가 줄을 잇고 있다. 글쓰기 과정만 세 개, 개인의 출간을 돕는 컨설팅도 서너 건을 진행 중이다. 스타트업 프립에서도 동일한 과정을 새로이 오픈했다. 최근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개인 사업자를 돕는 브랜딩 워크샵 과정을 새로이 개설했다. 그 프로그램을 가지고 몇 개이 기업은 아예 회사로 들어가 사내 교육을 담당하기로 했다. 그런데 일이 많아도 힘들지가 않다. 늘 해오던 일이기 때문이다. 잘할 수 있는 일이고 즐거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 과정을 통해 나 역시 성장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영화 속 마동석처럼 인생의 후반부에 새로운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나의 경우는 영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비평가의 평점 따위는 깔끔하게 무시하고 이 영화를 보시라. 그리고 내 얘기를 떠올려 주시라. 당신의 인생에도 새로운 시동이 필요하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