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매일 생활 한복을 입는다. 소주를 좋아한다. UI, UX 디자이너다. 이 정도가 서연주라는 디자이너에 대해 알고 있는 거의 모든 정보였다. 하지만 매력은 숨길 수 없이 흘러나오는 법이다. '사람책'의 짧은 강연에 대한 반응이 너무도 좋았다. 그래서 이번엔 긴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그녀가 한 손에 붕대를 감고 강연장에 나타났다. 언제나처럼 꽃무늬 가득한 한복을 입은 채 사뭇 긴장한 모습으로 무대?에 섰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까지 만나보지 못했던 화려한 PT를 보았다. 화면 속 글자와 그림과 동영상이 마치 살아 있는 사람들처럼 춤을 추었다. 한 사람의 진솔한 변화의 이야기를 들었다. 재미있는 뮤지컬 한 편을 보고 난 느낌이었다. 토요일 오후의 한 시간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나는 그렇게 또 한 사람의 브랜드를 만났다. 주말 오후를 통째로 투자해도 아깝지 않은 그런 강연이었다.
뒷풀이 장소에선 어느 경찰 간부를 만났다. 춤을 좋아한다고 했다. 마지막 남은 승진 시험에 또 한 번 도전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쉽게 말해 좋아하는 일과 인정받는 일 가운데서 갈등하고 있었다. 나는 춤과 승진 시험 뒤에 숨은 욕구에 주목하자고 했다. 이제는 남을 위해서가 아닌 자신의 욕구에 충실한 삶을 살아보자고 제안했다. 몇 잔의 술 때문인지, 대화 때문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의 표정이 밝아졌다. 30대와 40대의 삶이 이렇게 한 공간에서 묘하게 교차하고 있었다. 이날의 강연과 뒷풀이가 내게 준 메시지는 너무도 선명했다. 가장 자기답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얼굴에서 빛이 나는구나. 누군가에게 한 시간 이상 얘기할 수 있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로구나. 강연자인 연주씨는 자신의 인생이 스몰 스텝을 만나기 전과 만난 후로 완전히 달라졌다고 했다. 나는 속으로 이렇게 외쳤다. 나도 그랬다니까요!!! 그렇게 몇 번이나 외치고 싶은 걸 자제하느라 애를 써야만 했다.
그녀는 디자이너다. 하지만 컴퓨터를 전공한 논리적 뇌 구조의 그녀는 드로잉에 능하지 못하다. 그래서 밑그림이 있는 민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자신의 미적 감각을 매일 입는 한복을 통해 표현하기 시작했다. UI와 UX에 관한 해외의 정보를 모아 소개하는 페이스북 그룹을 만들었다. 좋아하는 춤을 배웠고 필요하다면 과감하게 경력을 바꾸기도 했다. 한 마디로 자신을 움직이는 욕구를 따라 자신을 끊임없이 시험했다. 그 중 하나가 다름아닌 영어 공부다. 성봉영어를 통해 그녀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기로 했다. 원서로 된 디자인 관련 책을 읽고 세계문화의 중심지인 미국을 여행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그녀는 지난 한 해 100강에 이르는 성봉영어의 모든 강의를 들었다. 토요일 오전 9시에 모이는 토요원서미식회를 열심히 참석했다. 자신이 그리는 단 하나의 점과 선에도 의미를 부여하는 그녀는, 이렇게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을 끊임없이, 충실히, 열심히 걸어오고 있었다.
사진 속 그녀가 환하게 웃고 있다. 원래도 아름다운 사람이지만 더 아름다워 보이는데는 이런 이유가 있었다. 그저 시키는 대로 일하기에도 급급한 디자이너들이 이리도 많은 세상에, 그녀는 한 1픽셀의 움직임에도 Why를 물어야만 하는 성정을 지녔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디서 힘을 얻는지, 무엇을 할 때 가장 충만해지는지 아는 사람을 만나면 얼굴에서 빛이 난다. 그런 사람들은 하나같이 자신이 어떤 순간에 가장 자기다워지는지를 명확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일상과 삶을 지키는 루틴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함께 모이면 얼마나 파워풀할까. 원자들이 부딪혀 만들어내는 에너지가 원자폭탄을 만든다. 스몰 스텝도 그와 다르지 않다. 다만 이 폭탄은 사람을 죽이지 않고 살린다는 차이점이 있을 뿐이다. 내가 그랬다. 연주님도 그랬다. 그리고 이제는 그 주인공이 이 글을 읽는 당신이었으면 좋겠다.
* 이렇게나 멋진, 더 많은 스몰 스테퍼들을 만나보고 싶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