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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사람, 박요철

하루 만 보를 걸었다. 시간으로는 대략 한 시간 정도. 집을 나설 때도 굳이 몇 코스를 걸어가서 버스에 오르고, 올 때도 마찬가지로 미리 버스를 내려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만 보를 채우고 나니 더 깊이 잠들 수 있었다. 단잠을 잘 수 있었다. 조물주가 사람을 지었다면 우리를 어떻게 디자인했을까? 처음부터 차를 타고 다니게끔 설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이 걷지 않는다는 것은, 어쩌면 이 기본을 무너뜨리는 어리석은 일인지 모른다. 많은 문제들은 바로 거기서부터 시작되지 않았을까. 아무튼 나는 걸었고, 하정우만큼은 아니어도 걷는 사람이 되려고 한다. 다이어트를 하기 위해 굳이 별난 식품을 찾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건강 역시 유난스럽게 새로이 무얼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걷는 것의 유익은 단잠에 그치지 않는다. 걷다 보면 생각을 하게 되고, 음악을 듣게 되고, 이상하게도 더 긍정적이 된다. 차를 타면 자신만의 공간을 갖게 되듯이 걷게 되면 비로소 나만의 시간을 갖게 된다. 걷다 보면 비로소 깨닫게 된다. 얼마나 많은 타인의 소음에 시달려 왔는지. 무심코 잊고 있었던 나만의 생각을 정리하게 된다. 내가 질문하고 내가 답하게 된다. 걷는 동안은 스마트폰에 매달릴 일도 없고, 그래서 기사를 볼 일도 없고 동영상을 볼 일도 없다. 타인의 목소리가 아닌 바로 나 자신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게 된다. 지루함을 달래기 위한 음악 듣기가 숨죽이고 있던 내 감성을 깨우고, 즐겨 듣던 팟캐스트를 통해 내가 어떤 정보와 지식에 목말라 했는지를 비로소 깨닫게 된다. 걷는 시간은, 결국 내 안의 작은 소리를 발견해가는 과정이다.



우리는 걷지 않았다. 고로 내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를 움직이는 힘이 무엇인지, 내 안의 가장 큰 욕구가 무엇인지를 미처 알 수 없었다. 버스에 오르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스마트폰을 켜는 일이다. 집에 돌아와 잠들기 전에 하는 일도 대개는 비슷한 루틴을 따른다. 이 모두가 타인의 목소리에 압도당하는 경험 아닌가. 그것이 정보이든 재미이든 말이다. 하지만 걷게 되면 비로소 나의 생각에 귀기울이게 된다. 내가 원하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된다. 걸으면 건강해진다. 하지만 이건 우리가 걸어야 하는 이유의 아주 부분에 불과할지 모른다. 도시의 소음 속에서, 타인이 만들어낸 생각에 압도되지 않기 위해서, 나는 앞으로도 집 앞 버스 정류장 몇 코스에 앞에서 벨을 누르는 수고를 굳이 해보려 한다. 처음 산책을 시작했던 몇 년 전보다 더 먼 곳에서,  걷는 사람 박요철이 되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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