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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라는 인간, 합격입니다!

‘이 생에 운전 한번 안 해볼 수도 있겠구나’ 생각한 적이 있다.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고, 외출을 하더라도 지하철 탈 때 책 읽는 시간이 있는 게 좋고, 멀리라도 가게 되면 데리러 오고 데려다 주는 친구들이 있었다. 낯선 상황과 환경에 반응이나 적응이 느리다 보니 “너는 운전하면 안되는 성격이야.”라는 말도 들었다. 나는 수긍했다. 그래도 사람들이 물을 때가 있다. 차가 없느냐, 왜 안사냐, 면허가 없다, 왜 안 따냐. 


“어릴 적에 오토바이 사고가 난 적이 있어서 운전이 무서워.”

이건 면허를 따지 않겠다는 나의 의지가 지어낸 경험 기반 스토리다.


“차가 있어야 면허를 따지. 아빠차 나 주고 새로 사. 면허 따게.”

엄마가 우리 딸 짐 싸들고 다니는 게 안쓰럽다 하실 때는 이렇게 말한다.


“주변에 항상 운전해 주는 친구들이 있어서 필요성을 별로 못 느껴.”

이건 공주병일까. 지나고 보니 정말 대접받고 살았다.


“아, 저는 차를 사고 유지할 생활 수준이 안돼요.”

이건 현실을 직시한 최신판이다.


최근 쿠킹클래스나 출판 등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서 짐의 무게가 삶의 고됨으로 다가왔다. 운전의 필요성이 와닿아도 내 머릿속엔 ‘면허를 따도 차 살 형편이 안되니 차가 생기면 면허를 따겠다’는 공식이 여전했다. 그때 나를 자주 돌아보게끔 깊은 대화의 물꼬를 잘 트는 지인의 조언이 나를 ‘인간 합격’시켰다. 지방에 업무를 보러 갈 때 그분 차를 타고 이동하곤 했는데, 사업하려는 사람은 차가 있어야 된다며 시간이 돈이다, 기동력이 좋아야 한다 등 자가 운전의 유익한 면의 설명이 오갔다. 여느 때와 비슷한 상황이었으니 나는 변두리 히스토리를 가볍게 던졌다. 지인은 사색하듯 잔잔한 표정을 지으신 뒤 이런 말씀을 하셨다.


“차가 있고 없고는 절댓값 차이가 크지만, 면허가 있으면 경차든 벤츠든 네 사람씩 타는 건 똑같다. 준비하고 있어야 차가 오든 사람이 오든 기회가 생긴다. 2020년 김상민은 면허 딴다!” 


새해 과제를 통보받은 것이다. 2020년 1월 1일, 검색을 통해 학원을 알아보고 문의하니 답신이 와 바로 일정을 잡았다.  2020년 1월 3일, 학과 의무 교육을  받으며 쉬는 시간, 차량 이동하는 동안 공부한 뒤 오후에 필기시험을 봤다. 2020년 1월 10일, 장내 기능교육을 진행했다. 반백년 만에 조수 지정석에서 운전석이라니, 시동 거는 것부터 떨리던 순간도 잠시, 4시간 교육 후 기능시험 합격.


2020년 1월 22-23일, 설 연휴 전에 새해 선물처럼 면허를 따리라, 다짐하고 이틀 동안 주행교육을 받은 뒤 시험을 봤다. 일사불란하게 진행되는 것 같아 많이 들떴고, 초보자의 긴장과 태도를 가지는 게 당연한 데도 편안하기 위해  애쓰며 주행시험을 보다 150m 좌회전인데 사거리 신호대기에서 정지해 있다 바로 좌회전했다. “어디 가요 직진해야지!” 소리에 좌회전 하다말고 직진까지 했다. 경로이탈에 중앙선 침범. “실격입니다” 기계여자의 목소리에 상처받아 ‘인간 실격’이라도 된 듯 좌절했다.


3일 뒤인 2020년 1월 28일 새벽부터 대기해 주행시험을 봤다. 떨리는 게 당연하지, 긴장했구나, 천천히 잘 해보자, 그렇게 운전면허를 땄다. “합격입니다” 기계음이 들리자마자 신경이 파르르 떨리며 온몸의 긴장이 풀렸다.  실격이라는 말에 슬퍼하고, 합격이라는 말에 기뻐하며 나는 실격과 합격 사이에서 인간의 로맨스를 맛본다.




* 이 글은 '쓰닮쓰담'에 참여 중인 김상님이 쓰신 글입니다. 자신의 경험(E)에 인간 합격(M)이라는 메시지를 잘 녹여낸 글이라 고치지 않고 그대로 소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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