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수업을 함께 하는 분 중에 '하소비'란 분이 있다. 물론 닉네임이다. (뭔가를 사는) 소비를 좋아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이 닉네임의 뜻은 '하늘에서 소지섭이 비처럼 내려와'의 약자라고 했다. 아하. 이 분 재미있는데, 라는 생각은 적중했다. 어느 날 수업을 마친 후 누군가가 장갑을 두고 갔다. 파란색 장갑이었다. 하지만 그 주인을 찾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하소비님이 파란색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옷도, 가방도, 노트북 키보드도, 핸드폰 케이스까지 온통 파란색이다. 자신을 표현하는 세 가지 키워드에도 어김없이 파란색이 있었다. 이걸 심리학적으로 분석하고픈 생각은 전혀 없다. 나는 이렇게 취향이 분명한 사람이 좋다. 그건 내가 그러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그러고보니 하소비님은 와이프가 비슷한 부분이 정말 많았다. 뭔가에 끌린다는 것은 이렇게 다 이유가 있는 것 아닐까?
최근 들어 부쩍 취향에 관한 글을 많이 읽었다. 김민철의 '하루의 취향', 요조의 '아무튼, 떡볶이', 유병욱의 '평소의 발견'까지. 이 책의 키워드들을 모두 모아 '평소의 취향. 떡볶이'라는 글 제목을 만들어냈다. 억지만은 아니다. 요즘 아내와 딸은 '엽기 떡볶이'에 빠져 있다. 최근에 오픈한 집 근처의 '신불 떡볶이'도 종종 찾는다. 다이어트 때문에 맛만 보는 형국이지만 엽기 떡볶이의 굵은 당면은 정말 매력적이다. 게다가 이들은? 엽기 떡볶이 양념에 밥까지 말아 먹는다. 맛과 향이 어딘가 익숙하다 했더니 '불닭 볶음면'을 닮았다. 분명 둘 중 어느 한 곳이 카피한 것은 아닐까. 이렇듯 취향의 영역이 비싼 브랜드에서 일상으로 가라앉았다. 사람들이 열광하는 취향은 일상과 평소와 하루의 영역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리고 이 개성과 취향은 인간의 욕망에 자리잡고 있다. 이 욕망을 읽어낸 사람들이 좋은 브랜드를 만들어낸다.
내일부터는 하소비님이 고생 끝에 열매를 맺은 '하루사진전'이 열린다. 하루에 한 장씩 사진과 그림을 올리는 두 개의 스몰 스텝방의 콜라보로 전시회가 준비된 것이다. 나 역시 참여하고 싶으나 장고 끝에 발을 뺐다. 너무나 참여하고 싶었지만 아직 누군가에 보여줄 사진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한 장 이상의 사진을 틈틈히 찍곤 한다. 새로운 아이폰을 장만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스몰 스텝엔 사진방 말고도 자신의 취향을 찾아낼 방들이 너무도 많다. 자신이 선곡한 노래를 소개하는 '하루 한 곡'방도 있고, 매일 차를 마시는 '마음약차' 방도 있다. 매일 자신의 주변과 집 안을 정리하는 '스몰정리스텝'방도 있고, 매일 운동을 하는 '강한남자' 방도 있다. 매일 가계부를 쓰는 '301 가계부'방, 하루 두 쪽을 읽는 '2쪽 읽기방'은 물론이고 매일 수학 문제를 푸는 '매스스텝'방도 있다. 그러고보니 요금같은 개성과 취향, 욕망의 시대에 사람들이 스몰 스텝을 매일 같이 찾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닐지.
취향이 분명한 사람은 '나다운' 사람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것을 '평소'에도 실천한다면 추측을 넘어 확신으로 이어진다. 그것이 '떡볶이' 같은 소소한 것이라면 더욱 더 그렇다. 누군가 타인의 욕망을 쫓지 않고 자신의 개성대로 살아가는 것이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니다. 그러니 그런 사람을 만나면 그렇게 반가운 것은 아닐지. 그렇다고 나답게 살아가는 사람이 독선적인 것은 아니다. 자신의 욕구가 채워진 사람은 타인에게 너그러운 법이다. 나는 그런 사람들이 많은 사회가 좋은 사회라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이 결국 좋은 브랜드를 만들어낸다. 선택의 폭이 넓은 시장이 다름아닌 좋은 브랜드 생태계를 만든다. 나는 하루 일만보를 걸으며 매일 같이 생소한 골목을 투어하며 기록을 남기고 있다. 곳곳에서 뜻하지 않은 개성 넘치는 가게들을 만난다. 이게 다 하소비님처럼 자신의 취향이 뚜렷한 사람이 많기 때문이라 믿는다. 평소의 취향이 떡볶이라면, 당신은 이 사회를 조금 더 풍요롭게 만들고 있다고 자부해도 좋다. 그런 당신을 매우 칭찬한다. 와이프를 닮은 하소비님처럼.
* 개성 넘치는, 취향 가득한 사람들을 한 번에 만나고 싶다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