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일요일 아침 8시, 나인블럭 팔당점에서

반사적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새벽 6시 1분. 어젯밤은 전혀 기대도 하지 않았던 '겨울왕국 2'를 보느라 조금 늦게 잠자리에 들었었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도 한몫 했다. 간만에 주말에 여유를 부렸다. 하지만 오늘 아침도 약속이 있다. 아침 8시 개장 시간에 맞춰 '나인 블럭' 팔당점에서 스몰 스텝 운영진과 만나기로 한 것이다. 부리나케 집을 나서느라 새벽의 스몰 스텝은 모두 건너 뛰었다(물론 오후에 모두 마무리했지만). 새벽 공기가 생각보다 찼다. 히트텍 챙겨입기를 잘했다 칭찬하면서 중간 기착지인 선릉역으로 향한다. 다행히 모두 제 시간에 움직이고 있다는 소식들이 속속 들어온다. 신기한 일이다. 이게 뭐라고 평화로운 일요일 아침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렇게 이른 시간에, 이렇게 멀리서 만나야 할 일을 알 수가 없다. 재미있는 사람들이다. 물론 나도 포함해서 그렇다.



네비를 잘못 잡는 바람에 일찍 출발한 우리 팀이 20분 가량 늦게 도착했다. 그래도 8시 개장인 나인블럭엔 오직 우리만 와 있었다. 먼저 와있던 코리님과 함께 지하 1층에 자리를 잡는다. 그러나 총 3개 층의 이 건물엔 지상과 지하의 차이가 큰 의미가 없다. 모두 동일한 뷰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탁 트인 북한강을 앞에 두고 다섯 명의 운영진이 쪼르르 모여 앉았다. 아직은 난방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지 무릎 아래가 조금은 시린 아침이다. 일단 모이긴 모였지만 특별한 이유는 역시나 따로 없었다. 차 안에서 시작된 수다가 나인블럭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최근에 축하할 일을 맞은 멤버 한 분이 커피를 쏜다(나중에 점심까지 쏘았다). 그렇게 세 시간을 내리 떠들고 나니 주위가 후끈하다. 어느 새 커플 혹은 가족 단위로 자리를 잡은 사람들로 실내가 빼곡해 진다. 화장실을 다녀 올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주변의 경치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새벽의 경치와는 또 다른 모양새다.



나를 알아가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그 중 하나가 자신과 통하는 사람들을 하나 둘 알아가는 것이다. 기존의 지연, 혈연, 학연을 벗어나 취미와 관심사로 만난 사람들이라면 더욱 특별하다. 만날 때마다 에너지를 얻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다. 그런 면에서 스몰 스텝의 운영진들은 더할 수 없이 어마어마한 에너지 덩어리들이다. 스마트폰 충전하듯 만나면 뿌듯해진다. 필리핀에서 한 달을 살고 온 코리님에게서 새로운 비즈니스의 기회를 배우고, 최근 건물주가 된 멤버를 통해서 부의 스몰 스텝을 위한 살아 있는 참 지식을 배운다. 거기에 공간의 힘이 더해지자 이러한 에너지는 더욱 거침없이 우리를 흥분케 한다. 내가 최근 들어 골목길을 투어하는 이유도 그런 공간을 찾아 나서기 위함이다. 내게 어울리는 골목, 내게 어울리는 카페, 내게 어울리는 식당과 공간을 찾아 골목을 투어한다. 들어서는 것만으로도 충만해지는 그런 곳을 몇 알고 있다. 그런 공간을 찾아 가족을 데려올 것이고, 친구를 데려올 것이고, 스몰 스텝의 멤버들과 시간을 함께 할 것이다.



함께 점심을 먹고 다시 중간 기착지인 선릉역으로 왔다. 나는 바로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선릉을 중간에 둔 채 골목길을 걸었다. 그것으로는 부족해 대치동을 지나 한티역까지 걸었다. 스니커즈를 신은 발 아래가 묵직해진다. 그제서야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스마트폰의 만보계가 9,000보를 가리키고 있었다. 사람을 만나고 특별한 장소를 만났다. 골목을 걸었고 음악을 들었다. 평소 같으면 느지막히 일어나 살아 있지도, 그렇다고 죽은 것도 아닌 좀비처럼 주말을 보냈을 것이다. 회사를 다닐 때는 더더욱 그랬다. 월요일이 다가온다는 불안감과, 그렇다고 딱히 할 것도 없는 주말 아닌 주말을 보냈다. 그러나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거침없이 수다를 떨고(사실 이날은 멤버들로 부터 최근의 나의 행보에 대한 야단 아닌 야단을 맞았다), 다시 혼자가 되어 골목길을 걸으며 나만의 에너지를 충전했다. 그리고 이렇게 살아가는 것을 사랑하게 되었다.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것, 필요하다면 언제든 혼자가 될 수 있다는 것, 이 모든 것을 한 번에 경험한 멋진 주말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닐니리 만보'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