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댐 위에서 군무가 펼쳐진다. 흰 색 콘크리트 바닥 위에는 가로 세로로 길게 이어진 선 하나가 보인다. 모든 춤은 이 선을 가로지르며 절도 있게 이어진다. 웅장한 배경 만큼이나 음악도 거대하다. 심플하지만 굵은 선, 섬세하지만 강한 힘, 검은 옷을 입은 댄스 크루들이 다양한 악기를 들고 무대 위를 가득 채운다. 그리고 이윽고 차디찬 얼음 송곳처럼 7명의 멤버들이 군무의 대열을 가로지르며 춤을 추고 노래를 한다. '압도'라는 말 밖에는 더 이상 생각이 나지 않는다. 절로 어깨가 들썩인다. 때로는 묵직하게, 때로는 카랑카랑한 멜로디가 듣는 이를 자극한다. 케이팝이 하나의 장르로 인정받은지도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이를 하나의 음악으로 받아들이기까지는 적잖은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번 만큼은 유명세를 넘어 인정해야겠다. 그들의 음악, 그들의 춤을. 그리고 그들의 영혼까지도.
나는 틀에 짜인 군무보다 자유로운 춤이 좋았다. 다양한 전자 악기로 물든 음악들보다 어쿠스틱한 음악이 좋았다. 기타 한 대에 목소리를 입힌 것으로도 음악은 충분하다 믿었다. 여전히 그런 음악들을 너무도 사랑한다. 제임스 블런트와 스팅, 에이미 맥도날드와 아델, 제이슨 므라즈와 패신저까지... 하지만 오늘 군무의 아름다움을 보았다. 인공적이지만 거대한 케이팝의 매력을 보았다. 나는 아직도 BTS를 잘 알지 못한다. 굳이 그들의 과거까지 알아야 할까 의문도 든다. 하지만 벌써 7년의 시간이 지났다. 그들이 유명해진 것은 몇 해 되지 않는다. 그래도 그들의 자신들의 음악을 만들어왔다. 이번에 나온 신곡 'On'은 그들의 힘과 섬세함을 모두 담아낸 명곡이다. 나는 이제 그들을 예술가로 인정하고자 한다.
케이팝은 마이너다. 장르도 인종도 시장도 철저히 '작은' 음악이다. 하지만 그들은 묵묵히 그들의 길을 걸어왔다. 나름의 방법으로 소통했고 가랑비처럼 서서히 물들어왔다. 이 노래는 그들 여정에 하나의 정점을 찍은 듯한 느낌이다. 예술가의 고뇌를 뜨거운 퍼포먼스에 담았다. 가끔은 뜨겁게 노래하고 싶을 때가 있지 않은가. 때로는 미친 듯이 춤을 추고 싶을 때가 나라고 왜 없겠는가. 하지만 그것을 현실로 옮기는 일은 무모한 일이다. 그 노래를, 그 춤을 BTS라 불리는 여섯명의 뮤지션들이 나를 대신해 보여주는 것이라 믿는다. 성별도 상관이 없다. 나이 따위가 장애가 될리 없다. 보고 듣는 것만으로 힘이 난다. 신이 난다. 이상하게 위로가 된다. 한 폭의 명화처럼, 한 편의 영화처럼, 그저 마음껏 즐기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리스인 조르바가 했던 다음의 말처럼 말이다.
"두목! 당신에게 할 말이 아주 많소. 사람을 당신만큼 사랑해 본 적이 없어요. 하고 싶은 말이 쌓이고 쌓였지만 내 혀로는 안 돼요. 춤으로 보여 드리지. 자, 갑시다!"
_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중에서...